남편 생신날

오늘은 남편 생신 날이다

by 이숙자

추석이 끝나고 일주일 되는 날이 남편 생신 날이다. 생신이지만 음식을 가리는 남편을 위해 차려야 하는 아침상은 간편하다. 미역국도 싫어하신다. 그렇지만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않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게 서글프고 허전하다.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 의 전통이 아닌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생일이면 물어보는 인사가


"아침, 생일 미역국 먹었어?" 생일이 되면 그 말부터 물어본다. 그래서 생일날 꼭 먹어야 하는 것이 미역국이다. 우리는 왜 생일날 이면 꼭 미역국을 먹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우리 부부는 다른 날은 아침밥을 잘 먹지 않고 밥 대신 과일과 간편하게 빵을 먹거나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고 만다. 그러나 오늘 만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남편 나이 팔십이 넘었으니 보통 나이는 아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 야지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앞으로 생신 날이 오늘처럼 몇 번이 지나 갈지 생각하면 마음이 싸아해 지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아침 인사로 "굿모닝" 하면서 내 방에서 나온다.

남편도 "굿모닝"이라고 답 한다. 각각 다른 방에서 자고 나오면서 아침마다 우리 부부의 인사법이다.

남편은 나보다 일찍 일어나신다.


남편은 날마다 베란다 화초들과 인사하고 행여 잎이 마르지 않을까 싶어 분부기로 물을 뿌려 주며 화초들을 돌본다. 화초에게 물 뿌려 주는 소리가 내 방 안으로 까지 들려온다. 나는 일어나기 싫어 꾸물거리다가 일어난다. 아침에 바쁘게 동당거리지 않고 자유로운 시간이 좋다.


아침이면 남편의 일상은 화초를 돌보는 일로 시작한다. 우리 부부는 암묵적으로 서로 집안일을 분담해오고 있다. 남편은 집안일을 찾아 하고 있다. 일거리가 있어야 심심하지 않고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먹을 물이 없으면 물을 끓이는 것도 남편 담당이다. 청소기 돌리는 일까지, 집안 모든 점검은 남편 몫이다.


사람은 모두 자유롭게 본인 의지대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 가지는 고유한 삶의 방법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기 싫어한다. 인간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다. 사람이 둘만 모여도 그 방법이 적용된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먼저 의사 결정을 하려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져 주어야 관계가 잘 유지한다.


남편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이제는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다. 아침 상은 내 마음대로 차린다. 아침에 새로 지은 따끈한 하얀 밥에 미역국을 먹어야 생일을 보내는 것 같다. 어젯밤 담가 놓은 찹쌀로 고슬 고슬 밥을 짓고 누룽지도 긁어드리고 생선 하나 구워 밑반찬으로 소박한 아침 상을 차렸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남편 생신이면 온 가족이 다 모이고 생일상도 거하게 차렸다. 생일상을 차리는 것이 우리 집 큰 행사였다. 지금 생각해도 사는 게 많이 간소화되고 만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집에서 손님을 초대해서 밥 먹는 일이 없어졌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사람을 만나려면 밖에서 만난다.


밥을 먹으며 가족 중에 곁에 있는 내가 맨 먼저 "생신 축하드려요" 하고서 밥 숟가락을 든다. 많은 음식보다 좋아하는 음식 한두 가지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 한 끼면 족하다. 팔순이 넘는 남편과 같이 먹는 생일이 새삼스럽다. 남남인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고 반세기를 넘게 살아왔으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이제 더 바랄 것이 무어 있겠는가. 그저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며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치면 그만이지 싶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소중하고 절실하다. 멀리 있는 자녀들에게 차례로 축하 전화가 온다. 남편은 전화를 받으면서 흐뭇해하신다.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으니 자녀들에게 인사받는 것도 당연하다. 내년에도 다시 아무 일없이 오늘처럼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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