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음으로 찰밥을 찝니다

마음 시린 사람 있으면 찰밥으로 정을 나눕니다

by 이숙자
엄마 엄마,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려온다. 특히 세상에 없는 엄마는 더 그렇다. 살아계실 때는 모른다. 곁에 계신다는 든든한 마음만 있지 막상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곁에 안 계실 때 느끼는 허전함은 말로 표현이 어렵다. 엄마라는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울컥해 온다. 딸 친구가 엄마 돌아가시고 슬퍼하는 모습이 엄마 돌아가신 후 나와 같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어간다. 나는 왜 살아 계실 때는 엄마사랑의 절절함을 몰랐을까?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내 딸들도 마찬가지 일 것 같다.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한게 보이지 않던 것이 멀리 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람 관계도 똑같다.


얼마 전 딸 친구 엄마가 돌아가셨다. 평소에 몸이 좋지 않아 힘들었지만 갑자기 돌아가시라 생각은 못했었다. 딸 친구는 다른 지방에서 사시는 부모님을 모셔와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호수만 다른 곳에 살게 하셨다. 몸이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 곁에서 정성껏 돌보며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딸 친구는 날마다 사는 일은 훗날 엄마와 추억 쌓기 놀이였다. 우리와 수업을 하면서도 온통 엄마와의 일상을 글로 썼다. 지난해는 엄마를 소재로 한 에세이 책도 출간해서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애들 마냥 많이 좋아했다. 딸 친구는 엄마가 세상을 빨리 떠나 실 줄 몰랐다. 힘든 가운데 엄마의 일상을 글을 써서 책으로 선물해 드린 것은 잘한 일이다. 책을 받고 좋아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딸과는 절친이지만 나와 같이 그림일기 모임도 하고 글 쓰기도 같이 하는 사이다. 딸과 절친이라서 그런지 딸 친구를 만나면 언제나 허물이 없고 딸 같이 편하다. 딸 친구는 엄마가 떠나시고 상심이 커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작가 강연도 다른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안에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며칠 전 작가 강연이 있어 딸 친구를 만났다. 사람이 정말 다른 모습이다. 얼굴에 슬픔이 가득 고여 있다. 내가 "잘 지냈어"?라고 물으니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나는 살짝 안고 등을 토닥토닥해 주며 " 이제 그만 슬퍼하고 씩씩하게 살아 그래야 엄마도 좋아하셔" 하면서 마음을 달래 주었지만 엄마 잃은 슬픔이 어디 쉽게 가셔질 수 있을까... 한 동안 세월이 흐른 후,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엄마라는 이름은 삶에서 정신적인 큰 영향을 주는 존재다. 엄마가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한 없이 허전하고 눈물이 나온다. 엄마는 내 존재의 뿌리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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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밥 이웃과 나눔을 하기 위해 많이 쪘다 시루에다 찐 찰밥


찰밥을 마음먹고 많이 졌다 여러 사람과 나눔을 하기 위해서


나는 가끔 마음이 시리면 찰밥을 쪄서 먹고 나눔을 한다. 찰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기 좋은 음식이다. 찰밥을 먹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 잃은 딸 친구를 보면서 엄마 마음으로 찰밥이나 쪄서 주려고 했다. 지난번 딸 친구에게 찰밥을 해 주었는데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나에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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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분해서 이웃과 나눔을 한다 딸 친구 찰밥을 쪄서 주고 주변 이웃과도 나늠을 한다


찰밥을 소분해서 이 집 저 집 나누어 준다



우리 집은 찹쌀이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찰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나 마음 시린 사람이 있으면 찰쌀을 담가 찰밥을 해서 따뜻한 마음을 전한다. 이번에는 넉넉히 찰밥을 쪘다. 아파트 위 아랫집도 나누어 주고.


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밖이라고 집에 들어가면서 가져가겠다고 한다. 딸 친구에게는 넉넉히 찰밥을 주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내가 해준 찰밥을 먹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밥이란 어쩌면 생명이다. 요즈음 밥 못 먹는 사람은 없지만 남이 정으로 건네준 찰 밥은 마음이 따뜻해졌을 것 같다.


찰밥은 찌려면 번거롭다. 남편 말 " 당신은 찰밥은 잘 쪄" 하고 칭찬을 한다. 평소에 칭찬에 엄청 인색한 양반이다. 내가 해준 찰밥을 먹고 맛있다 칭찬해 주니 내가 자꾸 찰밥을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찰밥 하는 걸 좋아한다. 몇 집 찰 밥을 보내준 사람들이 카톡에 인증 숏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찰밥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서 내가 기쁨이 배가 된다. 역시 주는 것은 기쁘다. 앞으로 기쁜 일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코로나가 오면서 주변 사람들과 외식도 조심스럽다. 예전보다 정이 멀어지는 것 같다. 사람이 정들려면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 사는 게 힘들고 삭막한데 코로나까지 사람과의 정을 멀리 하게 한다. 세상은 자꾸 변해 가고 사람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나는 이러다 자칫 하면 '찰밥 찌는 할머니'라는 닉네임이 붙지 않을까 싶다. 예전 다도 할 때도 사람이 모이는 곳, 밥 사 먹기 곤란할 때, 찰밥을 찌고 묵은지 김치찜을 만들어 가서 나누어 먹었다. 가끔이면 지난날이 그립다. 지나간 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추억일 뿐이다. 오늘은 오늘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 그런데 할머니 소리는 좀 그렇다. 다른 이름을 붙여야지^^ 좀 더 멋진 이름. 나이 값으로 작은 선이라도 베풀어야 하늘나라에 가면 옥황상제에게 칭찬 좀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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