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 이틀째다. 딸들과 길상사를 찾았다. 평소 법정 스님의 말씀을 좋아해 스님의 책은 나오는 데로 내 책장에 꽂혀있다. 법정 스님은 항상 길상사 마당에 대중들을 모아 놓고 맑고 향기로운 말씀을 많이 들려주시던 곳이다. 스님의 향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은 곳이다.
서울에 오면 가끔 찾아왔던 길상사는 조용하고 운치가 있어 좋아 하지만 특별한 마음으로 오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살면서 마음이 팍팍해지고 외로울 땐 스님 책을 꺼내여 읽는다.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며, 삶에 지표가 되는 많은 가르침이 마음 안으로 와서 자리한다.
길상사는 역사가 매우 짧으면서도 불교사상 전례 없는 특이한 과정을 거쳐 절이 되었다. 원래 이곳은 장안의 세력가와 정치인들이 드나들던 대원각이란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는데, 그 주인이던 김영환 여사가 10년에 걸쳐 간청 끝에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여 지은 절이다.
김영환 여사는 애인이었던 백석 선생님이 마음 놓고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다. 북으로 간 애인은 영영 만날 수가 없었다.
길상사 경내 예쁜 문
애인을 만날 수 없게 되자 법정 스님에게 이곳을 청정 도량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말씀 따라 수행을 하고 마음을 쉬어 가게 만든 장소이다. 김영환 여사의 러브 스트리. 한 남자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 순애보 적인 사랑도 감동이다. 그분은 죽어서도 자기 유골을 화장해 길상사 마당에 뿌려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곳 어딘가에 그분의 숨결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길상사는 여느 절 보다 더 조용하고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법정 스님 말씀이 많이 머무른 곳이어서 일까? 스님 말씀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빠와 딸 진영각 올라가는 길
한 생각을 어떻게 내는가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세상의 끔찍한 범죄도 한순간 생각을 어둡게 갖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세상을 밝히는 선행도 한순간 마음을 밝게 지녔기 때문에 좋은 빛을 발하게 됩니다. 마음은 먼 데서 찾아지지 않습니다. 바로 내 안에 늘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밖에서 찾고, 다른 대상에서 찾기 때문에 그 마음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법정 스님 산문 일 회 일기 책 p 77
정말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사람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 항상 정신을 가다듬고 순간순간 마음을 들여다보며 정성을 다해 살아 내야 하는 것이 삶에 태도 일 것이다. 오늘이 가면 오늘이 다시 오지 않는 우리는 일회 일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하루하루가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딸들은 예쁜 곳을 찾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여행은 좋은 사람과 느끼며 공감하고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나누는 시간은 행복 자체다. 함께 살았던 가족도 나이가 들고 서로 가정을 가지면서 만나는 시간이 제한되었기에 같이 지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한 사람의 큰 불심이 도심 속에 마음 수행을 할 수 있는 맑은 도량을 만들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무엇으로 살다가 인생을 마칠 것인가? 항상 생각하는 화두다. 날마다 똑같은 일상은 의미를 만들지 못하고 살고 있다.
사찰 안은 군데군데 작은 처소들이 스님들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곳이다. 법정 스님이 묵으셨던 곳을 올라가는 길섶도 예쁘고, 대나무 들과 야생화들 산속에서는 매미 소리가 한 여름을 알리는 정취를 더 해준다.
소소한 작은 시간들이 쌓여 우리 인생의 역사가 되고 추억이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족과 만나는 시간들이 더 애틋해 온다.
법정 스님이 머무셨던 정갈한 진영각
산 중턱 고즈넉한 곳에 법정 스님이 머무셨던 진영각이 아주 정갈하고 말끔하다. 툇마루 끝 옆에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가 비망록과 함께 놓여 있다. 불일암에서도 보았던 의자, 스님이 여름이면 후박나무 아래 앉아 쉬시던 의자를 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울컥해 온다.
나는 차 생활을 하면서 법정 스님의 소박한 삶에 감동이 되어 스님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말씀들이 생각나고 스님의 향기로운 삶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스님의 행복론은 아주 단순하다. 맑을 물을 길어다 차 마시는 일과 스승이 되는 책 몇 권, 스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채마밭이 행복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
스님이 만드시고 앉아 계시던 의자
언제나 소박한 삶과 무소유를 말씀하셨던 스님! 스님을 향한 마음에 비망 록에 몇 자 적었다.
" 스님,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제가 스님을 존경했습니다. 항상 제 기억 속에는 스님 말씀이 각인이 되어 삶에 지표가 되기도 했거든요, 사람들에게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시고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글을 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하늘에 닿을는지, 미소를 띠고 계시려나,
진영각 담장옆 법정 스님의 영정을 모셔놓은 곳
진영각 툇마루가 정갈하다. 한참을 남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정말 마음이 고요해지며 맑아지는 느낌이다. 법정 스님의 숨결을 느껴서 그럴까?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서 보내 셨을까? 궁금하다. 진영각 담장 옆에 아주 소박하게 '법정 스님 유골 모신 곳'이라 작은 글씨로 쓰여있다. 깜짝 놀랐다. 정말이겠지,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한 줌의 흙이 되셨구나.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유난히 꽃과 자연을 사랑하셨던 스님. 강원도 사시던 곳에 봄이면 각종 꽃을 사다 심고 작약도 몇십 그루 심어 꽃을 보고 즐기셨다. 법정스님의 숨결이 길상사에 머물고 계신다. 이곳은 여기저기 운치 있는 곳이 많다. 오늘 내가 좋아했던 스님의 향기를 길상사에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