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지금은 폐역이 된 임피역을 가기 위해 집에서 출발했다. 임피역은 임피면에 위치하고 있는 간이역으로 군산에서 동쪽으로 익산시와 경계에 자리한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다. 차를 타고 달리는 창밖 풍경은 며칠 전과 다른 모습이다. 누렇게 익은 벼들들은 어느새 추수가 다 끝난 빈들이다.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어김없이 가고 계절은 바뀐다. 추수가 끝난 빈들은 침묵뿐 쓸쓸하다.
결혼해 살면서 군산 이야 기는 가끔씩 남편에게 들었다. 남편은 군산에서 낳고 자란 군산 토박이다. 80년이 넘는 세월을 군산에서만 살아오고 군산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다. 어려서부터 군산의 아픈 역사를 눈으로 보고 견디며 살아온 산 증인이다.
전주에서 낳고 자란 나는 군산의 오랜 역사는 세세하게 모른다. 글을 쓰면서 뒤늦게 군산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졌다. 세상사는 일에 관심과 자연을 바라보며 관찰하는 일이 많아졌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시큰해 온다. 가을 햇살은 유난히 포실하고 맑은 날이다. 한가롭게 시골길을 달려 폐역인 임피역에 도착했다. 사람이 하나도 없고 역 앞에 놓인 의자에는 마을 어른들 서너 명이 햇살을 즐기며 앉아 계신다. 사람이 없으니 한가롭고 고적해서 좋다. 우리 차가 멈추자 어른들 시선은 우리를 향한다. 말은 없지만 '뭐 볼 것 있다고 이곳을 오나' 그런 느낌이 든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임피역 하늘도 맑고 조용한 임피역 옆모습
앞을 바로 보니 작고 아담한 역이 있다. 임피역 뒤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기 좋다. 은행나무에 위에 새집도 정겹다. 아무도 찾는 사람조차 없으니 더욱 고적하고 마음도 한가롭다. 역 안에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옛날 차표를 사고 기차를 기다리던 사람, 보따리를 들고 사람과 인사하는 사람, '채 만식'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모형 해 놓았다 한다. '채만식' 작가의 고향이 임피인 것도 처음 알았다.
임피역 이야기
"임피역은 1912년 군산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 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하여 군산선을 건설하였는데 임피역은 호남지역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수송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간 간이역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의 역사는 1910대 후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징되며, 1936년 개축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다. 서양의 간이역과 일본식 가옥을 결합시킨 일본 역사는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에 등록 문화재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고 안내문에 쓰여 있다. 역이 멈춘 시기는 2008년 5월에 여객취급이 중지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임피역은 일제 강점기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가 있는 곳이다. 농민들은 농사지은 쌀을 다 빼앗기고 깻묵과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고 하니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슬픈 사연이 켜켜이 쌓인 곳이다. 또 임피역에는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던 젊은 이들과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아들 딸들을 기다리던 눈물이 서려 있는 기막힌 곳이기도 하다.
광복 후 비로소 임피역은 지역 주민의 품으로 돌아왔고 군산의 경공업을 발전하면서 공장에 출근하는 농촌 사람들이 통근 열차로 이용했고 임피나 그 주변 시골 사람들은 군산에서 생선과 젓갈을 구입해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팔았다. 한편 중고등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임피역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 군산으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그때는 돈이 없어 매표원 모르게 도둑 차를 많이 타고 다녔다고 남편은 말한다. 그때는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었다.임피역은 서민들 삶의 애환이 쌓인 곳이다.
역 옆에는 폐기차가 놓여 있다. 기차 안은 전시관으로 꾸며 놓아 옛날 추억을 불러온다. 임피역의 연혁이랄지 또는 기차를 타고 다니던 손님의 모습까지 정말 예전 모습 그대로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옛날 과거 속으로 들어가 본다. 말 그대로 임피역의 80년 세월을 고스란히 재현 해 놓은 귀한 자료가 있는 곳이다.
임피역 옆에 전시해놓은 폐기차 기차 안의 영상물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한가롭게 남편과 벤치에 앉아 과거로의 시간을 되돌려 본다. 광장 옆에는 이 고장의 탁류 소설가 '채만식' 작가 작품 속 이야기를 형상화 해 놓은 막걸리 마시는 사람들 모형도 친근하다. 그 옆에는 거꾸로 가는 시계도 있고 또 임피면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었던 오포도 있다.
임피역에는 시골에서 나는 여러 가지 농산물을 광주리에 이고 군산 새벽시장으로 팔러 다니던 어머니들의 땀 방울이 어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지금은 멈추어 건물만 남았지만 지난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히 이곳저곳 들러 보며 사진 찍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아마 많은 사람은 모르는 곳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따라 가을 햇살이 곱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녀들은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이제 부부만 남아 마음이 여유롭고 한가하게 둘만의 시간을 즐긴다. 아직 운전을 해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 감사하다. 살아가는 것은 생각하면 별일 아니다. 마음에 짐을 내려놓으니 평화롭다. 날마다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