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숙자 Nov 25. 2019

아직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

                                                                                                                                                                                                                                                                                                                                                                                                                                                                                                                       

부산 결혼식 다녀온 일


엊그제 일요일, 큰집 조카딸의 아들 결혼으로 부산을 가게 된 날이다.  전날부터 입지 않던 정장을  찾아놓고 신발까지 준비하고 수선을  떨었다.  나이 들어지면서  결혼식 참석도 줄어들고 행사장 다닐 일도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정장을 입는 일이 많지가 않다.   한참 옷장 속에 숨겨 있던 옷을 꺼내어  드라이클리닝 해다 놓고  와이셔츠까지 다림질하며  수선을 떨며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니, 색다른 나들이처럼 설렘이 온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조카딸은 여섯 살 꼬맹이였는데  어느덧 세월 흘러  며느리를 맞는다.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하긴 나도 딸 넷을  다 결혼까지 마쳤으니 할 말은 없다.  많은 날들이 화살처럼 지나갔다.   아직도 남편 형제들  셋이 다 살아계셔  집안 행사나 생일 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할 뿐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정장을 말끔히 입고 나서는 남편의 뒷모습은 지금도  중년의 멋진 모습이다.  살이 찌지 않는 외모에다 항상  깔끔함이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인다.  언제 나이 팔십이 넘어갔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가을이 느껴지는 단풍이 아름답다


아침 8시 반에 출발해서 전주에 살고 있는 혼주를 태우기 위해 버스가 달린다.  가로수 길거리는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보기가 아름답다.  가을은  노년의 상징이나 되듯이 생의 마지막을 아름다움으로 불태우고 끝을  마무리하는가 보다.  우리 사람도  생을 어찌하면 아름답게 마무리를 할까  가끔이면 화두처럼 생각해 보는 일이지만 정답은 없는듯하다.   그저  자녀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건강에 신경 써야지 싶은 생각이  늘 마음에 자리한다.


버스가 전주에 도착해 사람을 태우려 잠깐  정차 한 사이 남편은 답답한지 버스에 내려 바람을  맞으러 내려갔다. 기다리던  사람이 타고 조금 후 버스에 오르는 남편 손에 곱게 물든  은행잎 한 개와 빨갛게 색이 고운 남천 나뭇잎 두 가지를 가지고 올라오신다.  나는 그 모습이 반가워  



" 어머나, 은행잎이랑 남천 단풍이 너무 예쁘게 물들었네요, "  아직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지나 보다.  단풍을 손에 들고 들어오는 소년 같은  순수한 감정이  살아있는 남편 모습이 반가웠다.



사람은 모두 젊어 한때는 낭만과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이 살아 유연한 마음이 었지만,  결혼을 하고 생활전선 속에서  삶에 파도를 견디며  살다 보면은 풋풋했던 젊음의 낭만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들이다.  평소에 별말이 없고 표현을 안 하는 남편의 심중을 어떤 때는 헤아리기가 어렵다.   오늘 다시 보니 마음속에 아직은 숨겨져 있는 낭만과 순수함이 남아 있음이 나를 놀라게 했다. 기쁜 일이다.


버스에는  형제자매와 아주 가까운 친족 몇 분, 친구 몇 사람,  많지 않은 인원이다.  결혼식 문화도 많이 바꾸어졌다.  예전엔 많은 친척들이 집안일에 참석했던 일도, 알고 있는 지인들도, 가깝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  바쁘고 힘든 상황에서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친척들조차 사촌 이상이 아니면 아니 사촌이라도 가까운 마음이 없으면 경사에 참여를 않는다.  앞으로는  만나고 사는 사람 범위가 형제 정도이지 않을까, 내심 변해가는 세태가 쓸쓸하고 삭막하기만  하다.



군산에서 아침 8시 반 출발 오후 2시 30분에 부산에 도착,   무려  6시간이나 버스를 탔다.   잠깐  혼주와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한 시간만 정차했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결혼식은 서 부산에 있는 웨딩홀인데  일요일,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다.  누가 안내를 안 해주면 찾기 조차 어렵다.



몇 분 동안 형식적인 절차를 마치고 결혼식은  끝난다.   3시에 결혼을 시작해 30분 정도 걸렸다. 다른 결혼과 다르게 신랑 아버지의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격려의 말이 흐뭇하고 인상에 남았다.  남이었던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특별한 감정과 각오와 이해와 사랑이 곁들여지는 대단한 일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까운  사이의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말 잘하는 사람이 주도를 한다.   남편과 나는 주로 듣는 성향이다.  평소에 남편과 나는 성향적으로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만 했는데  이런 부분이 맞은 부분이 있구나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디 가서라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면  뻘쭘하고 허전한데  아, 이런 때 남편이 곁에 있어  고맙구나 새삼스럽고 소중하게 생각이 든다.  


                               지는 해가 예뻐 찍은 사진인데 버스 안이라서 각도가 좋지 않다


결혼식 끝나고 식사하고 바로 5시에 부산에서 출발을 했다.  요즈음은 해가 짧아 6시만 되면 캄캄하다.  도심을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걸리면서 달리는 버스에서 해가 지는 순간의 모습을 보게 되니 지는 해가 아름답다. 모든 소멸되는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 말이 공감이 간다. 버스 안에서도 조용하다. 예전에는 술 마시고 노래하는  사람들 있었는데 지금은 술도 마시지 않는다.



군산에 도착하니 밤 10시다.  버스를 11시간 정도 탔다. 다리가 먹먹하다. 집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편하다. 오랜 시간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버스를 타는 일이 더 고단하다. 꼭 비행기 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 버스 탄 시간이  미국 뉴욕 가는 시간과 별로 차이가 없다.  힘은 들었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난 뒤의  뿌듯함이  있다. 조카 혼주가 준비한 음식이 많아 넉넉히 나누어 주는 모습도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집에 돌아와 정리하면서 남편이 주워온 단풍 든 잎들을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  노년에는 바라보는 단풍도 아름답다.  그걸 버리는 것은 남편의 마음을 버리는  듯한 느낌에 가방에 넣어 집에 와서 컵에 물 넣고 담아 놓았더니  남편은 식탁 위에  꽃과 함께 꽂아 놓는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 좋네요,  가을이 우리 식탁 위에 앉아 있네요"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나이 들어  외로워지는  남편 마음에 기운을 살려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