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추운 날씨 때문인지 외출하기 싫어진다.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머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말을 걸어준다. 그들의 삶 속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사색 할 수가 있어 좋다.
북클럽에서 추천받은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라는 책은 숨겨진 이야기가 많을 듯 제목부터 멋지다. 외로운 바닷가 마을에서 한없는 고요와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작가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김정운 작가는 심리학자이자 여러 가지 문제 연구 소장이자 화가이다. 명지대 교수를 하다가 일본 교토가 단기 미술 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했고 몇 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여수에 살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가끔 배를 타고 나가 눈먼 고기도 잡는다.
작가가 동력 수상 레저가 구 조종 면허를 따고 오리가슴이란 이름을 작명하고 타고 다니는 배
오리가슴이란 오르가슴의 한국식 표현이라 한다. 육체적 오르가슴만 있는게 아니라 정신적, 지적 오르가슴도 있다고 한다. 작가는 오리 가슴을 자기 그림 낙관에 빠짐없이 찍는다. 즐겁게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는 작가의 의지의 확인이라고 말하며. 본인의 배 그림을 그리듯 그렇게 즐겁게 살겠다고 한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용기와 의지가 확실한 사람이다.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책, 자기만의 '슈필 라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참으로 보람 있는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김 정운 작가는 여수 만만 이란 글을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책을 내게 되면서 구체화되는 자기만의 '슈필 라움을 형성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슈필라 움' 이란 말은 우리말로 여유 공간이다.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놀이공간이라 뜻하기도 하며 그러나 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 공간을 뜻한다. 물리적 공간을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
"특히 요즘 남자들에게 물리적 여유 공간이 부재하기 때문에 영역을 지키려 한다. 밀집된 공간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남자들에게 존재가 확인되는 유일한 공간은 운전석이다. 내 앞의 공간을 빼앗기는 것은 '내 존재' 가 부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하고 적개심이 가득 차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
아! 그렇구나,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앞지르기 같은 일이 별 큰일도 아닌데 폭력이 일어나는 사실을, 그 속에 숨어 있는 커다란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과 불행한 아픈 결과는 까지는 일어나질 않았으면 바란다. 조금은 참아내고 양보하고 지고 사는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여유 공간, 자율적인 공간을 꿈꾸고 갖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상 쉽지만은 않다. 지금은 결혼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홀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기만의 '슈필라움' 둥지를 만들고 자기가 원하는 취향에 맞는 물건을 들이고 그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기도 하는 게 요즈음 삶의 형태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고, 자유롭게 혼자 사는 삶을 즐긴다.
바다가 보이는 작가의 멋진 작업실
나도 다도를 하면서 자연의 여유 공간에서 텃밭을 가꾸고 야생 화가 있는 곳에서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날들이 있었다. 달과 별을 보며 온 우주의 신비를 느끼는 전원생활을 동경했지만 남편의 만류로 내 생각을 접어야 했다. 전원생활도 나이가 중년쯤은 적절하지만 너무 늦은 나이에는 불편함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 병원과 편의 시설이 가까워야 생활이 불편하지가 않다. 아무리 혼자만 꿈꾸면 뭐 하랴, 남편의 반대는, 만들면 허물어지는 모래성일 뿐이다.
김 정운 작가에게 여수는 아는 이 한 명 없는 곳이었다. 머물던 숙소의 사장님 인연으로 박 화가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곳을 찾아간 작가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꿈꾸던 작가의 작업실이 그대로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네 농산물 저장창고를 아주 오래전 구입해 화실로 만든 아주 멋진 곳이었다. 한눈에 반하고 만다.
섬이 휘돌아 나가는 산책길 아리랑을 노래 부르며 걷는다
작가는 자기가 꿈꾸던 공간이라는 생각에 팔라고 떼를 써 보지만 "집이야 언제고 사고팔 수 있지만 화가의 아 틀리는 그렇게 쉽게 팔고 사는 것이 아니라며" 에둘러 가당치 않은 핀잔을 받는다. 맞는 말이다. 화가 나 다른 예술가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은 그 사람만의 인생의 가치와 철학과 삶이 녹아 있는 장소다. 모든 예술 하는 사람들은 간절히 자기의 '슈필 라움'을 꿈꾼다.
작가의 선택지는 여수 남쪽의 섬들뿐이었다. 어느 날 여수 남쪽 바닷가 허름한 미역 창고를 사고, 가족과 친구들 반대를 하지만, 고독한 결단으로 자기만의 작업실을 만든다. ' 미력 창고' (美力創考) '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 사고를 한다'라는 뜻의 이름을 만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교환가치와 사용 가치라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다. 작가는 교환가치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인생을 잘못 살고 삶의 내용이 없는 거라고 간단히 결론내고 그곳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 낸다.
작가의 작업실 미력 창고 그림
섬의 미역 창고에 작업실을 짓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원하는 일을 일생을 통해 한 번쯤 해본다는 것은 훗날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근사한 일이다. 어차피 인간들은 자기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으로 골인 지점을 향해 뛰고 있는 마라톤 인생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흔들리지 않는 용기와 삶의 가치관에 응원을 하고 싶다.
여수에서 배로 40분 거리, 하루에 세 번씩 배가 오고 가는데, 미역 창고 작업실에는 항상 혼자 들어온다. 어느 날 은 지독한 외로움에 눈물지으며 내가 왜 이러고 살지, 자신에게 반문하면서도 굳세게 잘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이면 친구들을 불러 옛 우정도 나누고, 작가 옆에는 항상 외로움을 함께 해주는 애완견도 있다.
작업실 들어가는 배 안에 혼자 비스 텀이 앉아 있다. 아 ... 나는 외롭다
작가는 책을 사기 위해 여행을 한다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추구하는 지적욕구가 넓기 때문일 것이다. 무지하게 높게 만들어놓은 책장, 지금도 책이 많지만 그 나머지 책장에 책을 채우면서 늙어 가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 쌓여있는 책만 보아도 가슴이 뛴다는 책 마니아, 여수 남쪽 끝섬 미역 창고 작업실은 하염없이 시간이 정지되고 유체 이탈처럼 ' 또 다른 나' 가 공중부양하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 말 하는 작가는 때때로 과거로의 생각 여행을 하며 할머니 생각, 친구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시간적 여유로움이 있어서 일 것이다.
땅끝 마지막 가로등 밤이면 어김없이 가로등이 켜진다. 엉엉 울고 싶은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도무지 어찌할 줄 몰라 물 빠진 갯벌에 갇힌 작은 어선들처럼
가로등이 켜져 있는 밤 풍경 사진만 보아도 쓸쓸하고 허허로운 외로움이 밀려오는 순간들이다. 세상 이치라는 것이 좋은 것 반이면 힘든 것 반이다. 여수의 남쪽 섬, 작가의 미역 창고 '슈필라움' 작업실 바닷가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행복을 노래한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낚시하고 배 타고 일상을 왜 나는 이 섬에서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찾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자주 웃고 잠 푹 자는 게 진짜 성공이다. " 라고 말하는 작가는. 시선은 마음이고 시선이 생각과 관심을 보여준다고 한다. 사람이 시선을 어디에 두고 방향 설정을 하고 삶을 사느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작가는 외롭지만 주도적으로 넓은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멋진 삶을 살아 낸다. 나는 책을 읽고 난후 '슈필라움' 과 삶의 방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