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삼시 세끼 집밥 차리는 것 불편하지 않으세요?

매일 집밥을 먹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by 이숙자

남편은 거의 집에서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집 돌이다. 원래 밖에서 먹는 음식을 즐겨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위가 좋지 않아 가리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그런 이유도 있다. 당연히 외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하루 세끼 밥상을 차려야 한다. 밥상 차리는 일이 어렵지는 않지만 가리는 음식이 너무 많아 식사 때만 되면 늘 무얼 해 드려야 하나 신경이 쓰인다.

집밥을 위한 남편 밥상


나도 때때로 밖에 나가 우아하게 분위기 잡고 앉아 칼질도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다.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부엌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희망 사항 일뿐이다. 어쩌다 딸과 손자가 오면 예외일 때도 있다. 2년이 넘는 시간 코로나가 오면서 외식을 안 하게 되고 이제는 아주 습관이 되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 뜨개방에 다닐 때다. 동네 뜨개방이라는 곳은 말 그대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 뜨개도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활 정보도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먹을 것이 빠지지 않는다. 금세 점심 떼가 되면 밥도 같이 나누어 먹으며 정도 나누는 곳이다.


그럴 때면 " 차 선생님 식사 같이 하시게요." 하고 옆에서 권한다. 뜨개방 사람들에게 항상 차를 대접하니 그곳에서 나는 차 선생으로 불린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다. "남편 밥 드려야 해요"라고 말하면,


"지금도 남편 삼시 세끼 밥을 차려야 해요?" 하고 묻는다. 나는 그 말이 달갑지는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소중한 일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남편 건강을 챙기는 일이다. 물론 남편 나이가 젊거나 요리에 관심이 있어 본인이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우리 집 남편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이 팔 순이 넘은 지금까지 아내가 해준 밥을 먹고 사신 분인데 갑자기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어쩌다 혼자 드실 때도 있긴 있다.


가끔 가다 나도 밥 차리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다. 그 생각을 하다가 나는 화들짝 놀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남편이 안 계시면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하고 어설플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남편이 곁에 있음에 오히려 감사하고 고맙다. 살면서 힘들다 생각되는 일도 즐긴다는 마음을 가지면 힘든 것이 사라진다.

한편으로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예전 우리 나이면은 자식들에게 보호를 받고 살았던 때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우리가 나이 들었다고, 건강이 안 좋다고 보호해줄 자식은 없다. 그런 경우 거의가 요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요양원이란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다. 생을 마감하기 위해 들어가는 곳, 생각만 해도 우울해진다. 그러니 남편과 하루 밥 새끼 챙겨 먹는 일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나에게는 일 년이면 두 번씩 친구의 전원주택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며칠씩 쉬고 오지만 나는 남편 밥 때문에 하루만 보내고 온다. 그럴 때는 항상 옆에서 "남편 밥은 혼자 드시라고 해라, 지금까지 세끼 밥 차리고 사니?라고 말을 하지만 나는 별로 대응을 않는다. 내가 없으면 틀림없이 부실한 식사를 하실 거다. 나이 든 노인의 삶은 하루가 다르다. 잘 드셔야 한다.


남편은 성향이 내향적이다. 원래 직장을 다닐 때도 직장 일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들어온다. 별다른 취향이 없이 말 그대로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별로 좋아하는 취향도 없다. 아, 한 가지는 있다. 젊어서는 친구들과 가끔 등산은 다니면서 본인의 삶을 즐겼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점차 친구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같이 놀 사람이 줄어든다. 나이 들어가면서 오는 현상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어쩔 도리가 없다. 오로지 내가 친구다.

완전히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남편, 나는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공부도 하고 취미도 찾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오랫동안 차 생활을 할 때도 운전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항상 행사장에 짐을 싣고 같이 다니며 즐기기도 하면서 내 곁에서 응원을 해 주었던 남편이다.


내가 마음대로 활동했던 것도 남편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오로지 가족을 위한 삶을 온 힘을 다해서 살아냈다. 남편 나이 팔십이 넘은 지금, 함께 할 날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나는 남편의 삶을 외롭지 않게 채워주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후회 없이 잘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싶다.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살도록 응원해 준 남편이 있어 나는 지금 저장해 놓은 놀이를 꺼내여 잘 놀고 있다.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시며 글을 쓰며 노년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음도 남편의 이해와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살면서 때때로 불편한 일이 있어도 참는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내가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 여보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성공했다고 생각하세요?

과연 남편 본인의 인생이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 그게 궁금했다.

남편이 말을 한다. "나는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지는 않아. 자녀들 독립해서 잘 살아가고 두 부부가 마음 편하고 살고 있으면 되지 무얼 바래"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그 말을 듣고 수긍이 된다. 부족한 것도 있고 네 세울 것도 없지만,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만큼 우리에게 가족이란 틀이 단단하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부끄럽지 않게 잘 살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지 싶은 마음에 감사할 뿐이다. 가족 모두가 서로 소중함을 알고 사는 것이 으뜸이라고 말하는 남편, 우리는 과연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은 성공한 삶인가요? 성공이란 의미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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