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이 없는 남편은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거실 소파에 앉아 폰으로 뉴스를 본다. 이것저것 궁금하신 것이 많은가 보다. 나는 아침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오니 남편은 "뉴욕 지금 몇 시지?"라고 물어본다. 나는 의아해서 "왜, 무슨 일이 있어요?" 물으니 뉴욕의 아파트에서 불이 나서 사람이 19명이나 사망했다고 놀라면서 걱정을 한다.
큰 딸이 뉴욕에 살고 있다. 딸은 1990년에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도 했다. 남편은 딸이 어느 동네 사는지도 잘 모르신다. 나이 드신 분이라 그런지 그런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아니 알려 주어도 얼마 지나면 잃어버리고 만다. 나는 남편말을 듣고 깜짝 놀라 폰으로 뉴욕 시간을 검색해 보니 뉴욕은 지금 오후 6시 15분이다. 남편에게 시간을 알려 주니 빨리 전화해보라고 서두르신다.
우리부부는 딸네 가족과 한 달이면 서너 번씩 영상통화를 하면서 손자 손녀와 화면으로 만난다. 딸네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손자 소녀가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산다. 메신저에 들어가 딸 전화를 누르니 받지 않는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컴퓨터를 켜놓지 않으면 영상 통화가 연결이 안 된다. 만약에 안 받을 경우 어찌할 줄을 모르고 불안하다. 어쩌다 출장을 갈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다시 사위 전화로 연결을 하니 딸과 손녀가 받는다. 먼저 손녀는 우리를 보면은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그 말이 얼마나 정겹고 반가운지 모른다. 지난 2 동안 코로나가 발발하고 학교를 못 가는 시간에 한글을 배우고 한국말도 배웠다. 학교에 가지 않는 무료한 시간에 엄마에게 한글을 가리켜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딸이 전해 준 손녀의 말이 더 감동을 주었다.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면 나이 들어 어려우니까 우리가 한글을 배워야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말을 할 수 있잖아?" 그 말을 듣고 아직 어린애로만 생각했는데 속 깊은 손녀가 기특해서 울컥했다. 우리와 전화할 때마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하니 답답했나 보다.
지금은 손녀와 손자가 우리말로 인사를 받고 있으니 그일 하나는 반가운 일이다. 남편은 먼저 손녀 이름을 불러 준다. 카일리, 부르면 반갑다는 말도 한국말로 한다. 우리는 한국말 간단한 영어를 섞어가며 애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손자 손녀는 3개 국어를 해야 한다. 아빠는 이탈리안 사람이게 때문에 영어와 이태리 말을 섞어 대화를 한다.
"소영아. 지금 뉴욕 아파트에 불이 나서 사람이 많이 사망했다고 뉴스에 나온다 괜찮니?" 하면서 궁금 한 걸 남편은 딸에게 물어본다. " 아빠 우라 괜찮아요, 불난 아파트는 우리 사는 곳과는 거리가 좀 멀어요. 브롱크스 이스트라는 곳이에요" "응, 그렇구나, 다행이다. 아침 뉴스 보고 깜짝 놀라서 전화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안도하는 모습이다.
딸은 센츄럴 파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어 불이 난 곳과는 거리가 좀 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삶이란 항상 일상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항상 긴장을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곳이 뉴욕이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살고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 뉴욕에 오미크론 확진자가 많다고 하는데" " 걱정하지 마세요. 애들도 방학해서 학교 가지 않고 나도 집에서 3일은 재택근무하고 직장 갈 때는 집에서 차로 출근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빠 엄마 몸조심하고 잘 지내세요" 12살짜리 손자 손녀도 화이자 백신 접종을 두 번 맞았다고 소식을 전해 준다.
딸과 몇 마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손자와 사위는 샤워 중이라고 얼굴을 못 보았지만 가족의 안위를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 일은 아니지만 뉴욕 브롱크스 아파트에 불이 나서 사망한 사람과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가족들을 얼마나 황망하고 가슴이 아플까, 더욱이 어린이 9명 포함 19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다." 참 아프고 슬픈 일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 본다.
딸이 뉴욕 살고 있어 한국 뉴스에 뉴욕 이야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란다. 코로나가 발발했던 2년 동안 우리 부부는 가슴을 조리고 살아야 했다. 뉴욕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친척도 없는 딸네 가족은 코로나가 오면서 마치 섬에 유배된 사람처럼 집 안에 갇혀 살아 가고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어린 손자 소녀가 잘 견뎌냈다.
그 가운데 좋은 것 하나는 이제 12살 된 쌍둥이 손자 손녀는 무료한 시간에 한국말을 배우고 지금은 전화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반가워요, 보고 싶어요.라는 한국말은 잘한다. 한글도 이제는 간단한 문장은 쓸 줄 안다. 집안에서 외롭게 지내는 시간이었지만 자기들의 뿌리인 한국을 알게 된 것 하나는 반가운 일이다.
뉴욕이란 곳이 많은 위험도 있는 곳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꿈을 실현하고 도전할 수 있는 멋진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딸이 뉴욕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지금은 때때로 가까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너무 멀어 가 볼 수도 없고,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우리는 나이 들어가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날이 오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신경이 쓰인다. 눈앞에 안보이니 멀게만 느껴진다.
가족은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 멀리 살고 있는 딸네 가족이 그립고 마음만 애 달프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서로 달려갈 수 없는 멀고 먼 곳,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