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취향 데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호랑이 나는 원숭이 서로 각자 다른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by 이숙자

아직도 끝나지 않는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기저기 문화센터도 쉬고 사람이 모이는 공공시설은 모두가 문을 닫았다. 더욱이 나이 드신 어른 들은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낼 곳이 없다. 복지관도 노인정도 문을 닫은지 오래되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하련만 날이 춥고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외출을 피하고 집에만 있어야 한다. 겨울은 집안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TV 하고만 논다.


나는 TV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다. TV 드라마 연속극 프로도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가끔이면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재미있는 프로를 한번 볼까" 하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 보지만 남편은 별 흥미 없어라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프로는 따로 있다. 리모컨을 돌려주며 "당신 좋아하는 프로 보세요" 라며 리모컨을 넘겨준다. 그렇다고 남편은 자기 보고 싶은 프로만 본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양보도 한다. 나는 사실 TV 보는 시간이 아깝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별 다른 취미가 없는 남편은 오로지 TV 만이 유일한 친구처럼 가까이한다. 남편이 리모컨 주인이다. 가끔 보고 싶은 프로가 있어도 남편을 위해 내가 양보한다. 남편은 식물을 기르는 일과 거실에서 조용히 자기 만의 시간을 즐긴다. 어느 때부터 인지 우리 부부는 집에서 생활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다. 그렇게 하자고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의 공간이 나누어졌다.


남편의 공간은 거실과 잠을 자는 안방이다. 내 공간은 내가 자는 방과 서재와 다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내 공간이 더 많다. 딸들이 결혼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을 나누어 살게 되었다. 성격이 깔끔한 남편은 자기 공간에 들여놓는 물건은 본인 마음대로 놓고 살아간다. 내가 놓고 싶은 물건은 남편이 사절을 한다. 남편이 사용하는 공간의 물건은 아주 딱 각이 잡혀 있다.


어느 날 내가 물어보았다.


"당신은 헌병대 출신이라 당신 물건은 각이 잡히도록 정리를 하는 거에요"?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 성격이지" 정말 성격이란 말도 맞다. 아이들 키울 때 회사에서 남편 퇴근하는 시간이면 널려 있던 아이들 장난감도 보이지 않게 정리를 해 놓아야 했었다. 정말이지 깔끔한 성격이다. 예전에는 너무 깔끔한 성격 때문에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지금은 적응이 되어 그런기 보다 하고 살아간다.


세상에서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남편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게 서로 편하다. 젊어서는 이해가 안 된 부분도 나이가 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수용하게 된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생각도 유연해진다.


우리는 한 집안에서 살고 있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자기 취향대로 살아간다. 각자의 생활을 존중해 주고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구속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를 원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 지라도 서로 구속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은 서로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살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서로 생각이 맞지 않아 충돌이 있었고 힘들었던 시간도 많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은 모든 걸 타협하고 익숙해서 편하다. 나는 가끔 생각을 한다. 이 토록 평화로운 시간이 언제까지 흘러갈까? 그 생각하면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지금 같이 한 공간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하다.


인간이 절실히 추구했던 이상도 꿈도 결국 나이 들면 별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가족들 평안하고, 부부 또한 건강하고 남에게 불편 주지 않고 사는데 걱정 없으면 더 바랄 것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날마다 소박하게 살고 있는 지금, 마음이 더 바랄 것 없이 평온하다. 나이가 들면 마음을 비워내는 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욕심을 부린 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도...



낮에는 서재에서 놀다가 밤이 오면 자연스럽게 나도 거실 TV 앞으로 간다. 하루 종일 자기 만의 공간에서 놀지라도 밤에는 다르다. 밤이라는 시간은 묘하게 혼자만 있으면 쓸쓸하다. 남편곁에 앉아 잠깐 뉴스를 보고 난 다음 거의 '세계 태마 여행' 프로와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를 시청한다. 예전 남편과 딸과 함께 여행했던 곳이 나오면 추억을 소환해서 그날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눈다. 부부란 추억을 공유하는 삶의 동반자다.


가만히 앉아서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햏 하는 것처럼 보고 있으며 재미있고 즐겁다. 가보지 못한 나라들 풍경과 사람들 사는 모습과 문화를 보면 놀랍고 신기하다. 부유한 삶이 아니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이 있고 친절하다. 나라가 다른 사람일 망정 정을 나누고 여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문화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지 보고만 있어도 그 속에 동화되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취향이 다르다. 예전에는 자기 취향에 맞추려 충돌도 가끔 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주며 서로 인정하며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혼 54년 차, 오랜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에야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취향이 다르지만 한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마음이 가득하다. 혼자 보다 둘이 사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믿음을 가 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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