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 속, 삶의 흔적들

내 책상 서랍 안에 담겨 있는 삶의 추억의 조각들

by 이숙자

글을 쓰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니 나이 탓도 있을 것 같다. 겨울의 추운 날씨와 코로나로 밖에 나가는 일이 줄어들면서 나의 하루는 서재에서 책 읽고 글 쓰고 그밖에 잡다한 일도 거의 서재에서 이루어진다. 나만의 공간 속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들이 즐겁고 마음이 평화롭다.


서재에는 방 크기와 맞지 않는 커다란 책상이 있는데 책상에는 서랍이 여섯 개가 있다. 그 서랍 안에는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요즈음 책상은 내 생활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가구가 되었다. 일상에서 같이 생활해야 하는 어쩌면 친구와 같은 공간이다. 나는 서재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내 시간을 즐긴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안방에 앉아서 쓰는 작은 고급진 책상이 있었고 손잡이 장식도 금빛나는 쇠였던 기억이 난다. 책상은 내 놀이터였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한 가지 분명히 잊히지 않은 것은 책상 오른쪽 아래 빈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호롱불을 넣어 놓고 바라보면 아늑하고 참 보기가 좋았다. 가끔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그걸 모르고 놀았는지 생각하면 아슬아슬하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결혼을 하고 난 후 책상과 마주 할 일이 없었다. 아이들 낳아 기르고 살림을 하느라 책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차츰 자라고 학교에 다니면서 책상을 마련했었지만 내가 사용하는 책상은 아니었다. 딸들이 공부하도록 마련해 준 책상이었다. 내가 젊은 때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살림하는 주부가 자기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이 아니었던 때다.


오롯이 나만 쓸 수 있는 내 책상을 집에 들인 것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고 난 후였다. 그러니까 그게 30년 전쯤 일이다. 딸 셋은 내 곁을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아파트에 이사 온 후 이년 뒤에는 막내딸마저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남편과 둘만 남은 집은 쓸쓸하고 집이 텅 빈 것 같은 적막함이었다.


딸들이 내 곁을 떠나고 난 후 허전한 마음에 방황하던 나에게 찾아온 다도 공부는 삶의 방향을 찾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차 마시고 공부하는데 집중할 수 있어 내 외로움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되었다. 공부하는 시간들이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인생 홀로서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우선 책상이 필요했다. 책상을 사기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려도 내가 생각하는 크기의 책상은 살 수없어 아예 목공소에 책상을 맞추었다. 처음에 책상이 들어오고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책상은 내 놀이터가 되었다. 서럽도 여섯 개나 생겼다. 책상을 들여오고 붓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며 나만의 세상을 만나는 설레는 나날이었다.


다도를 하면서 공부도 책상에서 했고 야생화 자수를 놓으면서도 책상은 마치 나의 작업장이며 공부를 하는 사무실이 되었다. 책상이 놓인 서재는 나의 모든 놀이 공간이었다. 사람은 어느 순간은 인생을 홀로 걸어가야 하는 삶의 주체가 되어 끝없는 걸어가야 하는 여정의 길이다.


책상과 마주하는 시간들은 자연히 서랍에 내 삶의 흔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 서랍은 다도 공부할 때 중요한 자료를 모아놓고 어떤 서랍은 뜨개질할 때 도구와 샘플 재료. 그림 도구만 있는 서랍, 여행 다닐 때 가져온 안내서 음악을 들었던 시디 플레이 내가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의 조각들이 책상서럽에 들어있다.


서랍 속 물건들


가끔 필요할 때 자료를 찾기 위해 서랍은 열 때면 이상하리 만치 마음이 애달퍼 온다. 서랍 안 나의 소소한 물건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추억의 조각들이 켜켜이 쌓여 있어 하나씩 들쳐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일까? 그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나와 함께해온 익숙한 물건들은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들이다.


나는 여행을 가면 언제나 그곳의 설명이나 기념이 되는 팸플릿은 꼭 가져온다. 여행지에 대한 설명을 읽고 그곳을 이해하는 것은 여행지에서 가지고 온 안내서 만한 것도 없다. 눈으로만 보는 여행지가 아닌 그 안에 숨겨진 역사를 알게 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책상 서랍에 담겨 있는 물건들이 언제까지 내 곁에 있어 나와 함께 할지 나도 가늠하기 어렵다. 가끔은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정리도 해왔지만 남아있는 것은 내가 필요한 물건들이다. 나는 거의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책상에서 그림은 그리거나 책도 읽고 필요한 물건은 그때그때 서랍을 열고 찾아서 사용을 하면서 서랍 속 물건들이 참 친근하다.


나와 오랜 시간같이 해온 추억들이 쌓인 물건을 볼라치면 내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은 받는다. 한편으로 그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애틋해진다. 나에게는 살아온 인생이면서 추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필요 없는 쓰레기처럼 생각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릿해 온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이처럼 작은 물건에도 많은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으니 참 모를 일이다.


요즈음에 와서야 서랍을 열고 필요한 물건을 찾을 때 느끼는 감정이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그 물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애잔하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글을 쓰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서 그럴까? 마치 내 지나간 날들을 만나는 듯 마음이 아려온다.


책상 서랍 안에 있는 물건들은 아마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친구처럼 같이 할 것이다. 때때로 서랍 속 물건들이 내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뜨개질할 때 필요했던 도구들 그림 그릴 때 필요했던 여러 채본들도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러 안내 팸플릿도, 그 모든 것들이 책상 서랍 속에 담겨있다. 나는 그 물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살아나 마음이 흐뭇하고 반갑다. 내 삶의 흔적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 흔적들은 내 삶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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