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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Feb 20. 2020

눈 오는 날 단상


간밤에 눈이 소복이 내렸다. 입춘이 지났는데, 지난겨울 눈 구경을 제대로 한번 못 보고 겨울이 지나는구나 하고 못내 아쉬웠는데, 겨울 끝자락  선물처럼 눈이 왔다.


                                 아파트에 내린 눈                        


" 여보 일어나  봐, 눈이  많이 와서 예뻐"  일찍 잠이 깬 남편이  부른다. 나이 든 어른들이 눈을 처음 본 사람처럼 호들갑이니  참 우습다.  사람 마음은  왔다 갔다 하나 보다.  사물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다워 보이고 가까이 보면 시들하다 했던가, 눈이 많이  올 때는 그냥 오나 보다 했는데  겨우내 눈을 못 보고 넘어가려나  생각하다가  포근하게 내린 눈을 보니  반갑다.

                                             동백나무에도 소복이 눈이 내려앉고


 겨울이면 당연히 볼 수 있는 눈을 못 보고 한 해가 가는구나 싶어  많이 섭섭했었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삶에 무게만큼 생각이 두터워진다.   한해 한해   자꾸만 흘러가는  세월이 소중하고  애달파진다.  


             아파트 화단 철쭉나무 위  소복한 눈                                                      


나는 겨울 온천지가 하얀 눈이 내린 설원을 좋아한다.   그 속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을 듯 신비스럽다.   예전 내가 동양화를 그릴 때  눈 내린 설원을 좋아한다고 선생님에게 말하니 이름도 설원으로 지어 주었다.  내 블로그 이름도 설원이다.  그림도 설경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눈 내린 자연의 설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그윽하다.  집 거실도 설경 그림이 걸려있다.  설경 속에는   내밀한  이야기들을 숨겨놓은 나만의 공간이다.


                                                  거실에 걸려 있는  설경


오늘 서울 시댁에 가 있던  셋째 딸네 가족이 군산에 내려온다고 연락이 왔다.  딸네 가족은 코로나 19에 발이 묶였다.  지금쯤 중국 중경에  들어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시간인데,  많이 답답하고 힘들 것 같다.   마음이 추워 찾아오는 자식을 따뜻하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해주고  싶어 진다.   시장에 다녀와야 할 듯하여  창밖을 바라보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눈발이 그칠 기미가  없다.  


겨울이 온듯하다.   지금은 봄이 오는 길목, 겨울을 제대로 느낀다.  계절이 뒷걸음을 치고 있다. 계절에는 순환의 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삶에도  질서가 이어질 때  마음에 충만함이 함께한다.   나는 옷을 두툼하게 입고 눈길을 뚫고 겨울 속으로 들어간다.  날이 매웁게 춥고 눈보라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안경을 벗었다 썼다  얼굴에 새 찬 눈보라를 맞으며  시장 속으로 걸어간다.


겨울 다운  겨울 맛을 느끼며,   무언지 모를  산뜻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겨울을 제대로 느끼고 싶었던  기다림이 찾아온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일은 처음인듯하다. 나이 탓일까?  글을 쓰고 생각하는 마음에 공간이  넓어진 이유라는 생각도  해본다.


나는 살다가 때때로 마음에 고민이 헤일처럼 일어나는 순간이 오면  오늘의 기억을 꺼내여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독여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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