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은, 청암산 군산호수 산책을 한다

매년 우리 부부의 어버이날은 고향 군산 호수 산책하는 날

by 이숙자

매년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우리 부부는 남편의 고향을 찾는다. 청암산 품에 안긴 군산호수 수변로를 산책하는 일정이 우리 부부의 정해진 코스다.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마음이 괜히 쓸쓸하다. 멀리 있는 자식들 내려오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어버이날은 자식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다.


푸르름이 가득한 5월의 군산호수 수변로는 보존 가치가 다양한 습지 식물 환경으로 야생 동물의 중요한 서식지이기도 한 곳이다. 봄 햇살을 받은 녹음이 우거진 울창한 수풀의 그윽한 향기가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지며 역시 자연은 사람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 같다.


군산 호수 입구 표지


호수 옆 수변길을 걷고 있으면 간간이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소리조차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고. 청암산 군산 호수는 사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물을 한다. 둘레 길 초입은 갈대밭으로 은빛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걷이가 끝나는 농촌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가지고 동네잔치인 축제가 열린다. 축제에 오면 농산물을 싸게 사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이 즐겁다.


이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다. 남편의 어릴 적 추억이 곳곳에 숨어 있는 곳이다. 그런 연유에서 그런지 남편은 이곳에 오면 목소리가 커진다. 평소에는 말이 많지 않은 남편이지만 고향이란 곳은 남편의 속 마음을 열게 하는 곳이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남편에게는 마음에 고향 같은 곳이다.

남편은 군산 호수만 오면 데크가 있는 그 자리에 서서 옛날을 회상한다.


군산 호수는 1939년에 호수를 만들어 상수원으로 사용했던 상수원 보호구역이었다. 그 이전에는 마을과 밭이 있어 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라 한다. 호수 건너 남편의 집 시댁이 그곳에서 살았고 남편은 뒷동산에 소를 메어 놓고 새우 잡이를 하면서 놀았다고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 추억을 못 잊어 이곳에만 오면 항상 데크 앞에 서서 호수 건너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산길에 들어서면 커다란 산 수국도 피어있고 신록과 함께 걷는 길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조금 걸어가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거진 대나무 숲이 장관이다. 담양의 죽녹원을 가지 않아도 대나무 숲이 환상적이다. 나는 이곳에 올 적마다 대 나무 숲을 걷는 것이 즐겁다. 바람이 부는 날은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사각사각 숲의 요정이 노래를 부르는 것만 같다.



남편은 혼자 걸어가고 있다. 막내딸이 군산에 왔다 간지 얼마 되지 않고 둘째 딸 셋째 딸은 지금 경주에서 행사 중이다. 행사가 끝나면 우리가 서울로 올라가 만나기로 해서 어버이날은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침부터 사위와 딸들 손자들에게 어버이날 인사는 다 받았기 때문에 섭섭함은 없다.


언제부터 어버이날 유래가 이어져 왔는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어머니 날의 유래는 1956년부터 있었던 어머니 날로부터 시작되었고, 1973년부터 통합을 해 어버이날로 바꾸어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어버이날만 되면 온통 부모님을 찾아보고 고마움을 전하는 날이 되었다. 예전에는 이유도 모르는 채 내려오는 풍습대로 어버이 날을 기념해 왔다. 이 날은 어쩌면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 아닐지.


청암산 산 수국가 산책 길

다른 때는 수변 산책로를 절반 정도만 걷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라서 무리가 없는데 오늘은 남편이 그냥 수변로를 한 바퀴 돌자고 한다. 공기도 상쾌하고 날씨가 너무 좋아 더 걷고 싶은 유혹에 넘어간다. 적은 나이가 아닌 우리 부부는 내년이면 수변로 완주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오늘 한번 시도해 보자고 용기를 내 본다.


호수 수변도로를 돌고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금방 후회가 된다. 두 시간이 넘어가면서 걸어가는 발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오르막 길은 힘이 들어 남편이 뒤에서 밀어주고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남편은 초등학교 후배들을 만나더니 이야기를 하면서 앞장서서 가기 시작하고 나는 발걸음이 느려져 자꾸 뒤 떨어진다. 불러도 들리지 않는지 그냥 앞으로 씽씽 가고 있다.


호수를 낀 수변도로는 꼬불 꼬불 너무 길다. 힘이 들기 시작하고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호수 반대쪽 길은 사람도 별로 보이지 않고 어쩌다 드문 드문 부부끼리 산책을 한다. 나는 너무 지쳐 자꾸 발걸음이 옮기는 것이 어렵다. 휴대폰을 꺼내여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더 "가시지 말고 기다리라고, 지금 휴대폰 약도 떨어져 더는 연락을 못해요." 기다리라고 말하고 전화는 띠리리 하고 꺼진다. 휴대폰 꺼지고 마치 고립된 느낌이다.


가도 가도 남편은 보이지 않고 나는 걸으면서 혼자 생각에 잠긴다. 그래, 결국 인생이란 혼자인 거야, 아무리 동행자인 남편도 어느 날인가는 같이 갈 수 없는 길이 있고 헤어져야 한다. 나는 항상 남편에게 너무 의지를 하고 살고 있지 않는지, 이제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담담해져야 하는 일이다. 혼자 생각하면서 터벅터벅 길을 걷는다.


아직 낮 시간이니까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을 하겠지 하면서 복잡한 생각은 접고 묵묵히 걷는다. 다리가 아프고 목도 마르다. 이렇게 많이 걸을 줄을 몰랐다. 금방 조금만 걷다가 큰집에 가서 형님네 부부랑 점심을 먹으려는 계획이었다. 오전 9시부터 걷기 시작해서 오후 1시가 가까이 4시간 정도 걷고 있는 중이다.


예전 젊었을 때는 4시간 5시간은 거뜬히 걸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나이란 숨길 수 없나 보다.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제방까지 얼마 남았어요.?" 물어보면 대답이 각기 다르다. 1시간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 다른 사람은 30분 남았다고 하는 사람, 마음을 비우고 걷는다. 또 얼마를 걷다가 물어보니 " 제방까지 다 왔어요. 2~3분이면 도착해요." 그 말을 듣고 살았구나 싶다.


제방에 도착하니 남편은 화가 나서 야단이다. " 아니 전화는 왜 가지고 다니냐, 전화를 백번은 했고만." 말도 아닌 소리를 한다. 내가 전화 약 떨어진다고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청력이 안 좋은 남편은 그 말을 못 알아들어나 보다. 자기 말만 하고 난 힘들어 죽겠는데, 나도 화가 난다. 내 말을 못 알아들은 남편은 다른 쪽에서 나를 기다렸나 보다. 애가 많이 타고 걱정은 했나 보다.


오늘 고생한 생각에 다시는 수변도로 한 바퀴 산책은 끝이다. 4시간 걷기는 무리다.


여하튼 생략하고 큰집에서 기다리는 시숙을 만나려 우리는 달려갔다. 5분 정도 결려 큰집에 가서 시숙님 모시고 동네 유명한 맛집 메밀 막국수 집에 도착하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줄을 서야 했다. 어버이날이라고 모두 가족들끼리 바람도 쏘이고 메밀 막국수 먹으려 왔나 보다. 코로나로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과 만남으로 모두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예전 일상의 모습이 반갑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다.


기다리다 배가 고파 막국수 한 그릇을 먹고 큰집에 다시 와서 차 한잔 하면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남편은 내가 큰집에 혼자 온 줄 알고 시숙에게도 전화를 수 없이 했나 보다. 청암산 수변로는 큰집과도 연결된 곳이다. 나는 이곳 길을 잘 모른다. 고생한 나에게 뭐라 위로의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


하지만 뭐라 해도 같이 할 사람 있고 남편이 곁에 있어 감사하다. 큰집 텃밭 가장자리에 있는 뽕나무에서 뽕잎을 따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뽕잎도 늦게 따면 좋지 않다. 이번 어버이 날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 같다. 집에 도착해서 막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오는데 전화가 온다. 셋째 딸에게서 온 전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면서 남편 이야기를 딸에게 일러바쳤다.


"아!! 글쎄 아빠가 나를 놓고 혼자 앞에 가시어 내가 정말 무섭고 혼자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곳 숲 속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간간히 혼자인 남자를 마주치면 등이 오싹 해 지기도 했었다. 요즈음 별 이상한 사람도 많으니 어떤 때는 사람이 무섭다.


"아빠는 참, 왜 엄마를 혼자 놓고 가시고 그런데" 편들어 주는 딸 그 말 한마디에 힘듬이 다 풀어진다.

어제 하루, 참 잊히지 않는 어버이 날을 보냈다. 다음 해도 이 토록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그건 가늠하기가 어렵다. 어제 고생은 했지만 모든 것은 살아 있을 때 느끼고 즐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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