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지" "내일 병원에서 10시에 만나요."두 사람은 곧바로 대답을 하고 약속을 했다.
시동생에게 전화오기 전 큰집 조카한테도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아버지 혼자 어머니 간병을 감당하시기 힘들어 병원으로 모셨어요. 알고 계시라고 전화드렸어요." 남편 형제들은 유난히 정이 깊고 서로를 위하는 사이가 좋은 형제들이다.
조카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싹 가라앉는다. 결국 때가 온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고 만다. 얼마 전부터 형님은 혼자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셨다. 몸이 급속도로 많이 아프신지는 일 년 전쯤 된다. 살림에서도 완전히 손을 놓고 부엌에도 들어가는 것도 멈추었다.
살림을 하던 여인이 살림을 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는 일이 끝나는 것 같은 느낌 그런 것이다. 살림도 깨끗이 잘하고 음식 솜씨 또한 좋으신 분인데 살림을 놓으시다니 많은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큰집 부엌은 그냥 부엌이 아니다. 오랜 세월 제사 음식을 만들고 명절 음식을 만들어 온 가족의 삶의 애환을 나누던 곳이다. 그 안에 추억과 기쁨이 온전이 쌓여 온 곳이 큰집 부엌이다.
사람은 나이가 먹으면 몸이 조금씩은 다 아프다. 기계도 오래 쓰면 노화가 오듯이 사람 몸도 만찬 가지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어도 나이란 건강을 장담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건강이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음을 다시 느낀다. 젊어서는 언제까지 건강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의 몸은 살면서 어떤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마냥 기쁠 수도 마냥 슬플 수도 없는 일이다.
지난주 큰댁에 갔을 때는 사람도 알아보면서 괜찮았는데 시간이 자꾸 갈수록 몸이 좋지 않아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밥도 다른 사람이 먹여 줘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 참 사람이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착잡해진다.
잊고 싶은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가족과도 다 이별하도록 되어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가족이 아프고 달라진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 온다. 사람은 앞으로 다가 올 일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생로 병사는 누구라도 막을 수 없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신만의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닐지.
약속한 병원에서 남편과 형제들이 만났다. 보호자가 있어야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숙이랑 함께 만났다.
안내 데스크에서 코로나 진단키드를 개인이 사 가지고 와서 검사를 한 뒤 결과를 보고 면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코로나 검사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병원 바로 옆 약국에서 진단키드를 사 왔다. 별다른 것도 아닌 면봉에 간단한 플라스틱 조그마한 병 같은 것이다. 그런데 꽤 비싸다. 우리는 다섯 명이 검사를 하고 한 줄 음성이 나오고 나서 형님을 면회하려 환자가 있는 병실로 올라갔다.
면회는 병실이 아닌 복도에서 환자는 간이침대에 뉘어 놓고 가림막으로 가리고 면회를 시킨다. 아마도 다른 환자와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을 몰라 철저하게 하는 것 같다. 다른 환자를 위해서 철저히 외부와 차단을 시킨다. 아직도 코로나의 위험은 떠나지를 않고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환자가 있는 8층 복도, 더운 여름인데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 형님은 아무 표정이 없다. 누가 왔는지,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눈은 뜨고 있지만 초점이 없다. 그러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형님, 우리 알아보셔? 하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인다. 의사 표현도 못하고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사람 같지가 않다.
말도 없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형님을 바라보는 우리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태껏 담담하시던 시숙님이 마누라 보고 한마디 하는 말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그저 잠자듯 깨어나지 말아, 편히 가야지." 하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시숙님이 눈물을 보이니 우리도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온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이 마음 안에 교차를 한다.
면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는 순간도 시숙님은 마누라 생각에 눈물을 훔치신다. 모두가 마음이 숙연해지고 말이 없다. 점심을 먹고 헤어지면서 "한번 집으로 와" 하시고 돌아서는 시숙님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쓸쓸해 보이는지, 마음이 영 좋지가 않다.
부부의 연을 맺고 몇십 년을 자식 낳아 기르며 삶을 이루며 살아왔는데 지금 마음이 얼마나 회환에 젖을까 싶은 생각이다. 오랜 세월 시숙을 보고 살아왔지만 처음 보는 모습이다. 가슴이 북 바치고 서러우신가 보다. 형님 살아온 인생을 다 아는 나도 목이 멘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다.
우리는 어쩌면 길가에 피어있는 한 송이 풀꽃과 같은 존재 같은 것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닌 길가의 한 송이 풀꽃,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잊히고 마는 존재다. 그 처럼 생각해야 자유롭다. 너무 거창하게 의미 부여를 말자. 우리 인생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살다가 가면 되는 거다. 너무 무겁게 생각을 말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다. 누구나 가야 하는 길 그것은 죽음이다. "메멘토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순간순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