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꽃 무릇이 불타오른다
입추가 지난가을의 문턱이지만 더위는 아직도 여름이다. 아마도 여름을 그냥 보내기 아쉬운 가보다. 마침 주말이라서 며칠이면 지고 말 꽃 무릇을 보기 위해 남편과 동생이랑 함께 선운사로 출발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은 오묘하다. 꽃들도 피는 시기가 있어 그 순간을 놓치면 절정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삶이란 순간 멈춤을 하면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끔가다 삶이 지치면 기운을 얻는 곳, 나만의 카렌시아를 찾는다. 쉼 없이 달리기만 하면 몸도 마음도 아플 수 있다. 그 장소가 여행이어도 좋고 내가 안식을 얻는 곳이면 어디 곳이던 좋다. 나에게 주어지는 그날그날들을 즐기고 싶다. 나이 듦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옛날 절에 불공 들이려 온 아가씨를 연모한 스님이 사모의 정을 못 잊어 생을 마감한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을 지닌 꽃무릇. 아마도 그 그리움의 크기만큼 눈물을 멈출 수 없어 피를 토하듯 붉은 꽃이 펴냈다. 한이 서린 꽃이라서 그럴까? 온통 붉은 꽃이 핏빛으로 피어있다. 꽃의 전설만큼 꽃을 바라보는 마음도 애달프다. 자연의 신비 앞에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꽃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눈으로 바라보는 이 모든 현상이 찬란하면서 눈물겹다.
꽃 무릇 꽃은 추석을 전후에서 절정인 꽃을 볼 수 있다. 올 추석은 조금 빨라서 추석이 일주일 지난 오늘쯤 꽃이 한참 일 것 같아 남편과 동생 셋이서 꽃구경을 나섰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예쁜 모습의 꽃이 지고 말 것 같았다. 우리의 일상은 용기를 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순간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는 일들은 내 삶이 풍요롭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계절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아쉽고 쓸쓸함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어찌 그리 잘들 아는지, 몇 년 만에 찾아온 선운사는 온통 자동차와 사람들 물결이다. 버스도 많이 주차해 있다. 겨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뜨거운 공기가 훅하고 온몸을 감싼다. 더워도 너무 덥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꽃구경 온날 불평하면 꽃이 서럽다.
차에서 내려 몇 걸음 걸어가니 온통 꽃무릇 꽃이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꽃천지다. 전국에서 사진을 찍으려 모인 사진가들, 등산객들, 나들이 객들 온통 사람 물결, 꽃물결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들을 모두 눈에 넣고 추억을 남긴다. 나이 든 어른들을 자녀들이 손을 잡고 걸으며 꽃들을 보면서 즐기고 있다. 이런 모습이 얼마만인가? 참 보기가 좋다. 사람 사는 세상 같아 마음은 벌써 하늘의 구름이 된다.
선운사 꽃 무릇들
선운사 사찰 요사체
이 아름다운 풍경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여기 '꽃 무릇 사랑' 시를 옮겨 본다.
꽃 무릇 사랑 신두업
초 가을 선운사 자락
붉은 융단 펼쳐 놓고 수즙은 듯
미소로 손짓하는 꽃무릇
이승에서 못다 이룬 애달픈 사랑
꽃으로 환생하여 그대를 품고 지고
끈 섶에 홍등 걸고 속눈썹 치세운 채
기다림으로 지새우는 꽃 무릇 사랑
목탁소리 범종소리 도솔천 물소리도
천지를 아우르며 부질없다 이르건만
주홍빛 연정에 스러져 구천을 맴돌아도
사모하는 그 마음 지울 수 없어라
서리서리 구근에 서린 그리움
천년 고찰 부처님 전 탱화로 불 밝혀
극락왕생 인연의 끈 맺어 달라고
백팔 염주 걸리며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