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날 성묘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추석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말이 있다. 날씨도 좋고 오곡이 무르익어 더없이 풍요롭고 좋은 계절이다. 더욱이 올 추석은 코로나로 2년 동안 묶어있던 거리두기가 풀리고 가족 모두가 모여 추석을 맞이 할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큰집 형님이 요양병원에 계셔 걱정이 된다.
추석 전날 큰집 조카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2년 동안 멈추었던 만남을 기대를 하면서 큰집에 미리 가서 제사 음식 준비를 도와주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작은 어머니, 이번 추석은 아버님이 제사를 안 하신다고 하시네요."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몇십 년을 지내던 제사를 하루아침에 멈추려 하다니.
그 말을 듣고 조금은 놀라서 멍한 체 앉아 있었다. 이건 생각해 보지 못한 놀라운 일이다. 오랫동안 남편 형제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사를 잘 지내고 전통을 잘 이어왔다. 종교가 없는 시댁 형제는 제사가 마치 종교의식처럼 신성시할 정도로 유난했다. 제사는 이 집안의 자긍심이었다. 시댁의 가족들은 우애가 남다르게 좋은 사람들이다.
시댁은 오랫동안 명절이나 제사에 형제들이 모여 정을 나누고 차례를 잘 지내 왔었다. 2년 동안 코로나로 거리두기로 인해 제사에 참석을 못하는 우리는 명절이 쓸쓸했었다. 오랜동안 습관이 되어서 그랬었다. 우리 집 며느리 들은 제사 음식 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 며느리 셋이 나누어 음식을 준비하면서 수다를 떠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불만이 있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깊었다.
가끔 우리는 이 집 남자들 장가 한번 잘 갔다고. 하면서 우리는 공감하면서 셋이 서로 응원한다.
명절이 오면 삼 형제의 자녀들도 모이고 사촌들 까지도 우의가 돈독하다. 거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제사를 모시는 몫으로 큰댁에 재산을 다른 형제보다 거의 다 물려주셨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50년 전 일이다. 시아버님 말씀을 따라 다른 의견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바로 있는 일이라서 나는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형이 아버지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데 대해 한마디도 불만을 말한 사람이 없으니 시숙은 복이 많은 분이다. 좋은 동생들이다.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도 만나면 불편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조상을 잘 섬기는 큰댁에 대한 존경도 있었을 것이다.
시댁 제사는 우리 집안의 가족들 정을 더 두텁게 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 사는 일은 영원한 건 없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풀려 제사를 지낼 거란 기대를 했는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큰집 형님은 연세도 많으셔 몸이 아프다. 지금은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그런 연유에서 그런지 큰집 시숙은 올 추석을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을 하셨다고 조카며느리가 말한다.
물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집안의 큰 역할을 하시던 형님이 몸이 아프게 되니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람이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의욕이 없을 것이다. 며느리가 대신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한갓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제 제사를 어떤 방법으로 지낼지. 아님 제사를 지내지 않을지 우리도 알 수 없다. 시숙님과 남편과 시동생이 의견을 모아 결정할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가족들 환경도 변했다. 예전과는 달라져야 하는 건 맞다. 시댁은 제사를 너무 잘 차려왔다.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야 하지만 소박한 차림으로 제사를 이어가기를 바라본다. 제사란 음식을 많이 만들어 힘든 생각이 들면 안 된다. 돌아가신 분을 추억하고 우리 서로의 정을 나누면서 조상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도 나이 들어 언제 세상과 이별을 하게 될지 모르는 노인세대다.
제사 안 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파 성묘조차 오지 않겠다던 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산소에 가서 간단히 과일이라도 놓고 성묘를 하자고 한다. 그렇게 하자고 우리 부부는 대답을 하고 나서 나는 마음이 바쁘다. 추석날 아침인데 마트로 달려갔다. 마트는 문이 닫혀있고 동네 정육점에 가서 맛있는 소고기를 사고 과일 가게에 다행히 무가 있어 샀다. 다른 날 비싸서 망설였던 무도 서슴없이 사 왔다.
새로 밥을 짓고 무을 썰어 소고기 국을 끓이고 시아버님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사고 시어머님 좋아하시는 환타도 준비했다. 도시락을 싸듯 집에 있는 전과 나물 김치 반찬들도 예쁘게 찬합에 담았다. 한 시간 남짓 준비를 해서 조상님들 산소로 달려갔다.
산소는 우리 집에서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큰집에서 올라가면 바로 5분 남짓인데, 큰집을 지나서 다른 길로 산소에 오른다. 마음이 착잡하다. 산 위에 올라 큰집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다. 다른 날 추석에는 큰집에서 제사를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산소에 와서 성묘를 했다. 내가 결혼하고 지금까지 그래 왔다.
산아래 보이는 빨간 지붕이 큰집이다
형님 한 분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는 날이다. 형님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곧바로 전주에서 도착한 시동생네와 산소 앞에서 다 자리를 깔고 가지고 간 음식을 펴 놓는다. 밥도 제사 밥이라고 새 밥을 해서 여섯 그릇, 국도 여섯 그릇 떠 놓았다. 과일에 나물 생선 전 간단히 놓으니 제사상이 되었다. 우리 부부와 작은집 부부는 절을 하고 조상님을 추억했다. 항상 온 가족이 다 모여 성묘해 오던 추석이 지만 이번은 다른 명절과 달리 쓸쓸하다.
세월은 가고 우리의 삶은 영원한 것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지 변화하는 세상을 지켜볼 뿐이다. 그때그때 현명하게 대처하고 살아야 할 듯하다. 만약에 큰집에서 제시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준비해서 산소에 와서 간단하게 지내면 된다. 사는 일은 조금 양보하고 손해 보고 살면 마음이 편하다. 내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이 변하듯 제사 풍습도 달라지고 있다. 자칫 불만을 말하면 의가 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좋은 마음으로 의 좋게 살아왔던 형제의 정을 다치지 않도록 참고 삶의 마무리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월이 퇴색되지 않도록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하고 떠나야 한다. 여태껏 행복했던 삶에 감사한다. 우리는 그동안 수고했던 형님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후회 없는 마무리,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