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딸네 가족과 가을 즐기기
지난 금요일, 셋째 딸이 군산에 내려온다고 전화로 남편에게 알린다. 추석에도, 남편 생신에도 내려오지 못해 서운 했어나 보다. 딸네 가족은 군산 오는 것을 마치 여행 오는 것처럼 즐긴다. 사람은 가끔 사는 곳에서 벗어나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군산에 오면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친구들 만나려 다니고 세상 마음 편한 곳이 친정이다.
딸은 아들 대학을 멀리 떠나보내느라 마음도 울적했을 텐데 잠깐이라도 마음을 쉬고 싶었을 것이다. 쉬고 싶을 때 찾아가는 친정 부모가 건제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자식이 내려온다고 하면 마음부터 바빠진다. 딸네 가족은 손님이나 마찬가지다. 찬정에 오는 딸을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다. 맨날 바쁘게 사는 딸에게 김치라도 해 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아직은 반찬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공원 산책을 끝내고 시장에 가서 김치 담글 재료를 샀다. 다른 때보다는 아주 적게. 아직도 야채 값이 비싼 무, 오이 부추. 깻잎, 파를 사 가지고 집에 와서 다듬고 부지런히 김치 담글 준비를 한다. 내일 올 줄 알았던 딸은 금요일에 온다는 전화가 왔다. 딸이 도착하기 전 김치를 담가 놓고 딸네 가족이 오면 같이 좋은 곳도 가고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고 쉬면서 놀아야 한다. 딸이 있을 때 음식을 만들고 엄마가 일을 하면 마음이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딸이 가지고 갈 김치를 담가 놓는다. 그래야 다음 날은 마음 놓고 놀 수 있다. 김치 담고 반찬을 만드는 일이 몸은 힘들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흡족하다. 딸은 내가 힘들까 봐 김치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해 놓으면 좋아하고 가져간다. 특히 사위가 내가 해 주는 반찬을 맛있다고 좋아하니 더 해 주고 싶다.
다음 날은 시골에 있는 카페에 가서 지인도 만나고 차 한잔 하면서 가을을 느끼려고 외출을 했다. 시골길 풍경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드 넓은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고 하늘은 푸르고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길가에 코스모스도 드문드문 피어 가을 정취를 더 느끼게 해 준다. 사람이 드문 시골길은 마음부터 평온하다.
나이 든 우리는 카페를 잘 다니지 않아 어느 곳이 좋은지 잘 모른다. 유난히 카페를 좋아하는 세쨋딸은 군산의 분위기 있는 카페를 잘 알고 있다. 딸네 가족과 함께하는 카페 나들이는 젊음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산뚯하다. 카페에서 마시는 차 값이 비싸도 흔쾌히 지갑을 연다. 넓고 쾌적하고 멋진 공간에서 마시는 차 맛은 다르다. 삶에서 힘들었던 마음 한 자락을 치유받는 느낌이다.
지난 주말에 찾아간 카페는 옥산에서 회현으로 넘어가는 도로변에 '모예의 정원'이라는 카페였다. 이곳의 대표 이옥진 씨는 워낙 예술을 좋아해서 어느 지인이 예술을 사모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을날 찾아간 '모예의 정원'은 가을 햇살과 함께 마음을 쉬면서 사색하기 알맞은 곳이었다.
본래 부군이 식품회사를 운영해오다 코로나로 건물 일부를 축소하고 많은 사람의 권유로 2년을 망설이다가 리모델링해서 지금의 카페로 개장을 했다고 한다. 내부가 80평의 넓은 카페는 시원스럽고 특히 밖의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잔의 차는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마음의 고단함을 충전하기에 충분히 멋진 공간이다. 이곳은 카페 내부보다 더 멋진 외부 3000평에 달하는 '모예의 정원'이 압권이다.
나는 마치 어느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정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산책하는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휠링이 되는 시간이다. 수령이 오래된 각종 멋진 나무들은 평균 수령이 50년은 족히 넘는 나무들이다. 넓은 공간의 연녹색 잔디는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꽃무릇도 있다. 지금은 지고 있는 모습이지만, 사계절마다 특이한 복수초, 노루귀, 야생화와 천년 초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꽃들이 피어나면서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커다란 돌들은 또 다른 볼거리들이다. 이곳저곳 운치 있게 꾸며 놓은 오두막 분위기의 차 마시는 공간은 한참 연예하는 연인들이 차 마시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 놓아 그 또한 색다른 분위기다. 두 곳의 장독대 또한 포근하고 따뜻하다. 조상 대대로 우리 밥상을 책임졌던 먹거리의 보고 장독대는 바라만 보아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따뜻한 풍경이 정스럽다.
한쪽에는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감나무에는 보기도 예쁜 빨간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가을은 모든 게 풍성한 계절이다. 나는 작은 오두막에 앉아 쉬다가 어디에서 툭, 소리가 나길래 동네 구경 나간 남편 발자국 소리인가 일어나 보았더니 산아래 밤나무에서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나도 몰래 발거음을 옮겨 보았더니 이건 웬일인가 그곳에는 밤나무 한 그루가 있고 밤나무 아래에 밤이 여기저기 하나씩 보인다. 밤은 먹을 때 보다 떨어진 밤을 주울 때가 더 재미있다.
떨어진 밤송이를 막대기로 까면서 1킬로 가까이 주었다. 아무것도 담을 그릇이 없어 입고 있는 셔츠 앞 자락에 담아 가지고와 가방에 넣었다. 아! 오늘은 가을을 제대로 느끼는 날이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사람 마음을 충만하게 해 준다. 사람 사는 일은 가끔은 쉼을 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마음에 충전을 하고 힘들고 어려움을 견뎌 낸다. 아니 살아낸다. 혼자가 아닌 삶을 같이 할 사람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딸과 사위 손자는 부모만 사는 집에 와서 아빠 생신 때 못했던 효도로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기쁨을 선물한다. 사는 것이 뭐 별것 있나 이만하면 사는 맛이지, 저녁에 쪄서 먹는 밤맛은 특별했다. 유난히 포근포근한 밤맛은 가을 맛이었다. 아니 사랑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