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서리가 내려앉을 고춧잎을 따다가 말린다
남편과 같이 은파 교회에서 조금 내려가니 날마다 보는 어르신 전동차가 길거리에 있다. 맨날 보던 전동차도 길거리에서 보니 반갑다. 어디 계시나 하고 전화를 하려는데 바로 옆 산아래서 어르신이 "여기야" 하고 부른다. 항상 보는 사람도 다른 곳에서 만나니 또 반가웠다.
남편도 차를 주차하고 밭이 그늘진 걸 보고 고추밭으로 들어온다. 아가씨도 아닌데 햇볕에 얼굴이 탄다고 햇볕을 싫어한다. 나이 든 남편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아마도 얼굴에 난 검버섯 때문이다. 때론 그 모습이 웃음이 나온다.
텃밭은 우리가 가끔 산책 다니는 은파 호수 길 옆에 있었다. 작은 텃밭이라 해서 아주 작은 밭인 줄 알았는데 밭은 제법 넓다. 그곳에는 고구마. 고추. 파. 당근. 가지 도라지까지 여러 작물이 밭에 옹기종기 모여 정답게 자라고 있었다. 세상에 이 밭을 혼자 다 가꾸신다니, 남편 어르신은 전혀 도와주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렇게 농사 지어 가끔 자녀들에게 택배를 보내고 자녀들 밥상에 오르게 한다. 참 대단한 분이시다. 절약이 몸에 습관이 되셔서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어른이다.
84세나 된 어르신은 나와 같이 시니어에서 붓글씨도 쓰시고 복지관에서 장구도 배운다. 귀가 좀 안 들릴 뿐 건강하시다. 나는 어르신 덕분에 가끔 가지도 상추도 호박잎도 얻어먹는다. 텃밭에 있는 야채들을 바라보니 친근하다. 나와 날마다 거의 만나는 분의 정성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김장 배추와 무도 심어 놓아 잘 자라고 있다.
따온 고춧잎 씻어 놓은 고춧잎
삶은 고춧잎 말리기
아침부터 커다란 냄비에 소금 한 줌 넣고 끓는 물에 고춧잎을 넣어 살짝 삶아서 씻은 다음 물기를 꼭 짜서 채반에 펴서 말린다. 요즈음은 가을 햇살이 좋아 며칠이면 바삭하게 마른다. 말린 고춧잎은 양파 망에 담마 그늘 진 곳에 걸어두고 가을 무를 말려 겨울이면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김치 담듯 담으면 꼬들꼬들 맛있다.
양이 많으면 고춧잎 김치를 담으려 했는데 김치는 큰집에 있는 고춧잎을 따다가 담아야 할 듯하다. 말리는 걸 많이 말려서 겨울이 오면 볶아도 먹고 무 말랭이랑 무쳐 먹고. 무도 많이 나오면 무 말랭이를 만들어야겠다. 가을 햇살에 고춧잎을 삶아 말리니 엄마 마음이 된다.
지금은 돈만 들고 슈퍼나 시장을 가면 무엇이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는 부지런히 먹거리를 장만해 놓고 겨울을 보내고 살아왔다. 나도 나이 든 세대라서 그런지 엄마들이 살아왔던 삶을 보고 배워 습관처럼 가을이 되면 무엇이든 말린다. 매일 집밥을 많이 먹고살고 있는 일상은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늘 머리에 신경을 쓰며 부지런히 먹거리를 준비한다.
하늘은 맑고 햇살은 포근한 가을은 무엇을 말리든 말리기 좋은 날씨다. 작은 것이라도 먹는 걸 말려 놓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모든 물가가 오르고 비싸다. 되도록 소비를 줄이고 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힘든 시절을 살아오면서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어른의 삶을 보며 지혜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