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화분을 들이고 남편의 한마디 "가을은 국화지" 그 말에 놀란다
남편은 어제부터 베란다 식물 몇 개가 상태가 좋지 않아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만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할까? 더운 여름 에어컨 실외기와 함께 베란다는 찜통이었다. 그 더위를 못 견디고 식물 몇 개 상태가 좋지 않다. 별 다른 취미가 없는 남편은 집에서 기르는 식물들과 교감을 하며 즐긴다. 아침에 일어나면 행여 시들은 잎은 없는지, 나무 상태는 어떤지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마다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라고 어느 시인은 말한다. 그 말에 나는 동의한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 마음에 닿지 않으면 마음이 시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편은 별로 사람과 노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자기 할 일만 찾아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나이 탓도 있어서 그럴 것이다.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지극히 말 수도 적은 사람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많은 철학자들은 수도 없이 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살고 있지만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내 알음의 지식 학문이 짧아서 그러겠지 생각해 본다.
세상에 태어나 나라는 이름으로 살 수 있으니 그 안에서 성실히 내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남편을 바라보며 가끔 생각이 많아진다. 알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알지 못하는 그 만의 세계가 있는 독특한 사람이다. 결혼해서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55년 차인 남편, 그러나 아직도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자기 마음의 표현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제는 공원 산책을 다녀온 후 말없이 어디를 휑하니 가신다. 어디를 간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어디 가세요?" 물어보았지만 아마 알아듣지 못했나 보다.
한참 후에 돌아온 남편은 손에 화초 몇 개를 사 들고 오셨다. 조금 있으니 커다란 국화 화분이 배달 온다. 나는 놀라 이게 무슨 일이에요? 물으니 " 응. 가을 이잖아. 가을은 국화지." 참 살다가 별일이다. 남편에게 그런 낭만이 있다니, 50년이 넘게 같이 살아왔지만 꽃 한 송이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하는 것 같다.
다른 데는 돈을 아끼며 소비를 잘 하지 않는 분이다. 그러나 화분을 사고 꽃나무를 사는 데는 아낌없이 지출을 한다. 나는 맨날 잘 죽어 버리는 화초 값이 아까워 잔소리를 할까 하다가 멈칫하며 참는다. 잔소리를 한들 무엇하랴 이미 사 와서 화분 갈이를 하고 있는데. 남편의 취미를 존중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 그만한 지출은 허용해야 한다. 괜히 싫은 소리 하고 기분 나쁘게 하면 뭐 할 건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조금은 사람 사는 지혜를 알아가는 일이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마찰을 피하는 것도 마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한 방법이다. 각자의 좋아하는 일은 응원을 해 줄 때 서로의 기운을 얻는다. 부부로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서 화분에 있는 식물 몇 나무가 시들어 가고 상태가 좋지 않다. 아무리 물을 주고 정성을 다 해보지만 식물도 어느 곳이 아픈지 시들어 가고, 시들고 늙어가는 식물은 보기가 싫다. 모든 생물은 늙고 병들고 소멸되고, 그게 우주의 법 측이며 생의 순리다. 어릴 때는 예쁜 모습이 해가 지날 수록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매일 식물을 바라보고 자라는 모습을 즐기는 남편은 시들은 식물은 보지를 못한다. 과감히 뽑아내고 다른 식물로 대체를 한다. 그럴 때 동생은 가져다가 잘 살려내는 걸 보면 신기하다. 식물을 보면서 우리의 삶과 대비를 해 본다.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식물들도 그들만의 삶의 조건이 있다.
남편은 어제 오후 내내 화분을 가지고 분갈이를 하고 청소를 하고 한 나절을 보낸다. 남편에게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일이 있을 때 마음 안에 기쁨이 있다. 남편이 수고하고 키우는 식물들을 나는 수고로움도 없이 보며 즐기고 있으니 나도 할말은 없다. 오히려 고맙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 한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노년이 되어서야 부부의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고 세심히 살펴야 하는 것은 늦게야 알게 되었다.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처한 삶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사는 것이 긴장을 풀게 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다.
남편이 사 온 국화는 꽃이 피려고 망울망울 맺혀 있는 꽃송이가 마치 어린애들 모습 같다. 꽃이 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얼마쯤 피어있나 확인을 한다. 매일 사는 일이 시시 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안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수많은 작은 생각들이 내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준다. 올 가을을 국화다.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꽃도 다 아프면서 피어나고 내가 살아가는 삶도 아프면서 성장한다. 올 가을 남편이 사 온 국화를 바라보면서 한 계절 잘 살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