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 자락, 오랜 친구와 만남

by 이숙자


며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 천안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 년에 두 번은 오래된 친구들과 천안 친구네 전원주택에서 모임을 한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 끈끈한 정으로 살아왔던 인연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혜여졌다가 다시 모인 지 10년이 넘었다. 지금은 모두가 황혼으로 자유로운 몸이다.


처음에는 열명이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일곱 명만 남았다. 나이가 거의 80십이 넘은 사람이다 보니 세상과 이별을 하거나 아니면 요양 병원에 계신다. 세월이기는 장사 없다고 나이 들고 세월 가면 다 맞이하게 되는 현상이다. 일 년에 두 번을 만난다고 해도 몇 번을 만나고 헤여 질지 몰라 만나면 늘 애달픈 마음에 반갑다. 살아온 속내를 다 알기에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이다.


그 중에 부자 친구가 있다. 부자라는 말은 돈이 많이 있어서 부자 일 수도 있고 마음이 넓고 배품을 잘해서 부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친구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 인지 모른다.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소리 없이 많이 돕기도 한다. 어떻게 그렇게 베풀 수 있을까? 나는 친구이지만 가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어쩌면 그럴까?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하다. 옷을 사 입거나 다른 곳에는 전혀 사치를 하지 않는 검소한 친구다.


오늘 가고 있는 집이 그 친구 집이다. 천안이라 하지만 행정 구역은 세종시에 속해 있다. 그곳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가끔 친구가 쉬었다 가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또는 아는 지인들이 와서 쉬고 가는 집이다. 살림을 하고 있지 않아 밥해 먹으려면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텃밭에는 야채도 있고 산자락 아래 있어 가을이면 밤도 주을 수 있고 공기도 좋다. 아늑한 시골이라서 주변에는 인가조차 없는 한적한 곳이다.


천안 가는 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으니 혼자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때론 혼자 인 시간도 괜찮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황금빛 들판에는 아직도 벼를 베지 않은 곳이 많다. 황금 들녘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배가 부르다. 저 많은 농사를 지으려 농부들은 여름 동안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잠시 생각에 젖는다.


천안에 모이는 분들은 남원, 전주, 서울에서 천안으로 모인다. 전주 남원에서는 벌써 천안 터미널에 세 사람이 도착해서 나를 기다린다. 우리는 마트에서 이틀 동안 먹을 반찬거리를 사 가지고 택시를 타고 친구네 전원주택으로 간다. 사람들은 만나면 무얼 먹을까, 생각하고 시장을 본다. 점심시간이 넘어간다. 이곳까지 오느라 아침부터 동당 거렸을 그분들을 생각해서 부지런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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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중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다. 당연히 주방은 내 몫이다. 주방에 들어가 정신없이 밥 준비를 한다.


외식을 하려 해도 거리가 있는 밖으로 나가야 하고 불편하다. 밥은 밥솥에서 하고 야채 씻어 고기 구워 먹는 일은 금방 쉬운 일이다. 준비된 밑반찬에 된장국만 끓이면 한 끼 맛있게 먹는 밥상이 된다. 솔직히 나는 주방에 들어가 음식 하는 것이 두렵지가 않다. 조금 귀찮지만 집밥을 해 먹어야 정겹다.


밥해 주면 맛있다고 칭찬을 하니 그 맛에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린다. 칭찬에는 고래도 춤을 춘다는 말이 있다. 정말 애들처럼 칭찬에 약하니 웃음이 난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음식은 내가 만든다. 아직은 음식 할 수 있어 재미있고 기쁜 마음이다. 나이가 모두 팔십이 넘었으니 몇 번이나 만나겠는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강이 허락되니 그것 또한 감사할 뿐이다.


점심을 먹고 앞마당에 있는 텃밭으로 가서 김장 무를 심어놓은 걸 속아다가 시래기 삶고 금방 무김치 담을 준비를 해서 무 김치를 담아 친구네도 주고 여러 사람이 먹으니 맛있다. 저녁 메뉴는 시래기를 넣고 게 찌개를 하고 갈치 굽고 사 가지고 간 시금치나물 무치고 상추 겉절이 하고 밭에서 무 뽑아 생채를 하고 밥상이 아주 푸짐하다. 거기에 남원에서 온 도토리 묵은 얼마나 맛있는지, 모두 맛있게 먹는다. 그 재미에 요리를 한다. 음식은 금방 만들어 여러 사람이 먹어야 맛있다.


시골은 눈만 크게 뜨고 밭으로 돌아다니면 음식재료가 되는 호박도 있고 호박잎도 있다. 가을 호박은 두툼하게 썰어 호박 짜글이를 하면 맛있다. 호박잎은 연한 걸 골라 시래기와 함께 들깨 가루를 넣고 된장국을 끓이면 고기반찬 못지않게 별미다. 여기저기 사방을 둘러보면 나물이며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여기 모인 분 가운데 이야기 잘하는 분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재주가 있어 밤새 들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말을 잘한다. 밤에는 지난 추억을 소환하고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젊어서 만났던 사람들이라서 숨겨둔 첫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친구가 고구마 캘 때 따 놓은 고구마 순이 제법 많다. 고구마 순 따는 것도 보통일은 아니다. 그 정성을 생각해서 우리는 혼자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명이 해 낸다. 고구마 순 껍질을 벗기는 일은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나이 든 언니들은 오랜 추억을 나누고 싶어 만나려 하나 보다. 어디에서도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들. 추억을 공유하는 데 재미 있다. 고구마 순은 여러 사람이 벗기니 양이 꽤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먹고 텃밭에서 부추와 쪽파를 뽑아다가 다듬어 금방 김치를 담는다. 옆에서 파도 다듬어 주고 도와주니까 일의 속도가 빠르다. 올 때는 짐이 가볍지만 집으로 돌아갈 때는 무거워 들지 못할 정도로 이것저것을 챙겨 준다. 김치 담을 걸 조금씩 다 나누고 고구마 농사지은 것도 들지 못할 정도로 친구는 다 나누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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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김치도 맛있게 많이 담갔는데 사진을 못 찍었다. 거기에 계시는 나이 드신 언니들은 나보고 글 쓰지 말고 음식 만드는 티브이 프로에 나오라고 야단이다. "그냥 칭찬하고 싶어 하는 말이지?" 음식 만드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거든, 나는 그 일은 힘들어 못한다고 손사례를 친다. 저녁에 먹을 시래기국까지 다 끓여 놓는다.


매년 모일 때마다 고추장 된장 젖 깔 까지 챙겨 오는 분이 있고 남원에서 오는 분은 그 고장의 유명한 묵과 부각까지 사 가지고 와서 먹고 나누어 집으로도 가져간다. 요즘과 달리 따뜻한 정이 오고 가는 사람들이다. 친구는 어느 결에 밤을 주워 봉지 봉지 담아 김치냉장고에 저장을 해 놓았다. 집으로 갈 때 우리에게 한 봉지 건네준다. 아니 자기 먹을 것도 남기지 않고 다 주고 만다. 그러니 짐은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점심을 먹은 후 오랫 만에 만났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나는 군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친구 가 주어 놓은 알밥과 고구마, 부각, 묵, 한 짐을 가지고 집으로 온다. 다른 분들은 하루 더 묵고 나만 하룻밤만 자고 온다. 친구는 그곳에 온 모든 분들에게 적지 않은 여비까지 챙긴다. 주는 걸 뿌리 칠 수 없어 받아 오지만 마음은 감사하면서 무겁다. 사람은 주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친구는 기사님에게 부탁해 나를 군산까지 데려다준다. 차를 타고 오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친구네 집 김치 담글 때 큰 그릇이 없어 내가 불편했던 생각에 집에 도착해서 창고에 넣어둔 커다란 스탠 김치 담글 그릇을 세 개를 챙겨서 보냈다. 사실은 딸 주려고 사놓은 것인데 딸들은 큰 그릇을 안 쓴다.


다행이다. 나도 친구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친구는 살림은 안 산다. 다음에라도 내가 가면 김치 담글 그릇이 있어 내가 더 좋다. 다시 김치 담그려 가고 싶어 진다. 나이 든 우리는 서로가 부족한 건 나누며 살아야 한다. 세상에 남겨질 날이 멀지 않은 나이라서 그렇게 하고 싶다. 가을을 보내면서 가을의 끝 자락,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추억을 남긴다. 마음이 부자인 듯 흐뭇하다. 이 모든 일이 친구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고맙다 친구야, 오래도록 건강하고 축복한다.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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