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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자 Oct 28. 2022

나는 가을 햇살을 좋아한다

가을 햇살을 좋아한다. 봄은 봄이 지닌 햇살의 환한 느낌이 있고 여름과 겨울은 또 다른 느낌인 햇살의 기운이 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가을 만이 가진 햇살의 느낌이 있다. 왠지 쓸쓸한 것 같기도 하고. 가을은 바람마저 생기를 잃고 소슬바람 이 건듯  분다.


오늘은 매일 산책하는 월명 공원이 아닌  은파 호수로 가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은파의 가을 향기를 맡고 싶어졌다. 어느 공간이든 그곳에서 만 느끼는 향기와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차 운전하는 남편에게 말해야 한다. "오늘은 은파로 산책 가게요?" 남편은 "은파는 물이 있어 바람이 셀 텐데"  하면서 망설인다. "추우면 얼마나 추울까요?" 겨울도 아닌데,  그 말은 들은 남편은 차를 은파 호수 공원 쪽으로 돌린다.


은파 호수는  

여러 곳에 주차장이 여러 곳에 있어 한산하고 여유롭다. 봄에 와보고 난 후 한 계절을 지나 다시 찾은  은파 호수는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생생하던 연잎도 노랗게 퇴색되어 생명력을 잃어간다. 가을이 오면 이상하리 만치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빛도 쓸쓸하다. 더욱이 사람도 많지 않아 더 한산하고 고요하다.


은파는 여름 동안은 나무 그늘이 없어 산책을 할 때면 햇볕이 뜨거워 산책하기에 알맞지 않다. 누가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으련만 내 마음에 담긴 풍경은 그리움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들, 호수 안에 헤엄치고 있는 오리들, 여름 내내 싱싱했던 연잎들을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내 눈앞에 그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일 년을 살아가면서 매번 같이 했던 풍경들은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마주 한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의 모습이 다 다르다. 우리는 그 변화는 모습과 삶을 나누며 일 년을 살아낸다. 철마다 피는 꽃들도 그 계절에만 만나는 꽃들이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마치 같이 놀던 친구가 어디로 떠난 듯 섭섭하다.



웬일 일까?  오늘 산책길에 만난 홍매화 한 송이가 나를 놀라게 한다. 봄에만 피고 여름이 오기 전에 지고 마는 홍 매화꽃이 빈 가지에 한 두 송이 남아있다. 무슨 일로 가야 하는 길을 못 가고 누구를 기다리는가? 싶어 손으로 살짝 만져 보고 사진을 찍는다. 모든 생물은 태어날 때가 있고 소멸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계절을 잊고 지금 피어났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가을은 누구 부르지 않아도 내 안의 그리움을 찾아 떠나고 싶은 계절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호수 물가 언덕 위에 핀 하연 구절초는 바람에 꽃잎이 나풀거리며 향기를 날린다. 누구와 약속한 일이 없어도 꽃이 필 때가 되면 피고 질 때가 되면 지고 자기 몫을 다 한다. 식물을 그 자리에서 피고 지련만 사람은 한번 가면 다시는 오지 못하는 길로 가고 만다. 생각하면 한 없이 처연하지만 그게 사람이 사는 진리다.


산책길 만나는 벚나무는 나뭇잎을 떨구고 겨울을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의연하게 서 있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봄을 맞고 꽃을 피울 것이다. 은파 호수는 물 위에 데크 길을 만들어 산책 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놀라서 걸을 때마다. 신기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서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나이가 들면 남편은 친구와 같다. 두 사람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젊어서는 밖에서 일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나이 들고 밖으로 나 갈 일도 많지 않고 하루를 거의 같이 보낸다. 오늘은 여유를 부려본다. 데크 길에 놓인 그네를 타면서 호수 위에 윤슬을 바라보면서 말없이 앉아 그네를 탄다. 참 평화롭고 좋다.  이 얼마나 소중한 시긴인가?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짧기만 하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기억에 남을 이 시간을 위해 우리는 가을 햇살과 같이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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