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이다

남편 모교인 초등학교 보름 행사에 참여했다

by 이숙자

어제는 정월 대보름이었다. 예전에는 보름도 설 다음 큰 명절이라서 오곡밥을 해 먹고 부럼도 깨고 각종 나물도 밥상에 올라오는 날이다. 보름 제사까지 지내며 각종 민속놀이는 우리 삶의 즐거움이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지금까지 잊지 않고 내려오는 우리의 세시 풍습이다. 보름을 보내고서야 명절이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딸들과 함께 살 때는 오곡밥과 각종 나물도 빼놓지 않고 해 먹었는데 지금은 세월 흘러 사람 사는 일이 복잡해지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보름 명절도 예전 같지는 않다 모두가 사는 것이 바쁘고 복잡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보름이 되면 이제는 옛날 있었던 일들을 추억한다. 정겹고 즐거웠던 날들을.


남편과 둘이만 사는 지금은 음식을 많이 하지 않는다. 보름 전날 아침을 먹은 후 찹쌀을 담가 놓고 나물이라도 사려 시장 나갈까 하는데 남편이 만류한다. 먹지도 않은 나물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려 하느냐는 말이다. 그도 그렇다. 남편은 치아가 부실해서 나물을 먹지 않으니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나는 찰밥을 좋아해 수시로 찰밥을 해 먹고 나눔을 한다.


냉장고에 있는 고사리나물과 버섯이 있어 두 가지나물만 했다. 음식 하는 것도 먹을 사람이 없으니 시들해진다. 노 부부는 찰밥으로 보름 밥을 먹고 편안히 쉬고 있다. 나는 모처럼 독서를 하고 남편은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티브이 하고 논다. 말없이 두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적막하기만 하다.


카톡으로 지인이 회현 초등학교에서 보름 행사를 한다는 정보를 보내 주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 모교회현 초등학교에서 '정월 대보름 망월야' 행사를 한다네요." 하면서 팸플릿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미세먼지가 최악아리고 망설인다. 미세 먼지에 엄청 예민한 사람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남편은 서두른다. "미세먼지가 좀 괜찮으니 학교 행사 다녀오게" 오분도 여유 시간을 주지 않고 나가자고 재촉을 한다. 나는 그 말이 반가워 설거지도 하지 않고 차에 오른다. 그곳에 가면 기다려 주는 사람도 없으련만 오랜 추억이 묻어 있는 모교 초등학교를 찾아가는 남편은 약간은 설레는 것 같다.


남편이 아직도 운전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시골길 눈에 보이는 논들은 아직은 빈 들녘이다. 곧 있으면 모를 심고 자라고 일 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남편은 언제나 고향을 갈 때는 예전으로 돌아가는지 마음이 들뜬다. 나는 잘 모르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친구 누가 살던 곳이고 지금은 가고 없는 친구 이름을 부르며 지나간다.

행사 팸플릿은 트럭을 두대 맞대어 놓았다

연을 만들고 잇는 아빠들 운동장에서 연 놀이 하는 아이들

남편이 쓴 소원글 달집에 소원지를 끼워 놓고 있는 남편


오랜만에 찾아온 남편의 추억이 어린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직 사람들도 많지 않고 썰렁하다. 2시부터 시작이라고 했는데 이상하다.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분에게 물어보니 맨 처음 아이들 연 날리기를 하고 다음에 풍물을 치고 밤 어두워져서야 달집 태우기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밤까지 기다릴 수는 없고 남편과 함께 학교 교정을 돌아본다. 마른 잔디가 폭삭폭삭해서 걷기가 편하다. 70년이나 다 되어 방문한 초등학교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이 학교를 졸업한 지 70년이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학교도 새로 지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운동장 가에 묵묵히 서있는 오래된 나무들이다.


남편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다.


햇살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동네를 천천히 돌고 있는데 연세 드신 어른이 유모차를 끌고 운동을 하신다. 남편은 오래전 이 동네에 살았던 친구들 지인들 안부를 물어본다. 거의 다 돌아가시고 남은 분은 요양병원에 계신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남편은 짧은 한마디를 한다. 누군들 나이를 거스를 손가. 남편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닌지라 그럴 만도 하다.


집도 오래된 집은 허물고 새로 지어진 집들이 눈에 띈다. 이제는 옛사람들은 가고 젊은이들이 새로이 둥지를 틀고 사는 곳이 되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쓸쓸하신가 보다. 그게 삶의 순리 인걸 어쩌랴. 나는 갑자기 초등학교 때 배웠던 야은 길재 선생님의 시조가 머리에 떠오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았더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을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세상이 변해도 공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전 어릴 적 같이 뛰어놀던 친구들은 간데없고 그곳 산천과 집들은 남아있어 삶의 회한을 느끼는 듯 남편의 말없는 표정을 보고 알 수 있다. 남편은 소원지에 가족의 건강과 무탈을 기원하는 쪽지를 달집 더미에 붙여 놓고 교정을 돌아서 나온다.


올해 정월 대 보름 남편과 함께 보내며 추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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