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기다려지는 이유
사위에게 영천 녹차 선물을 받고
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내겐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중에 하나가 햇 녹차를 만나는 일이다. 녹차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절기 중 곡우를 전후해서 딴 잎으로 만든 우전이라는 차다. 그렇지만 값이 너무 비싼 우전 차는 사서 먹기는 쉽지 않다. 차 생활을 할 때 나는 매년 야생차가 많이 나오는 지리산 자락 화개 마을에 가서 야생녹차를 만들어 오곤 했었다. 내가 만든 차는 그 수고로움이 더 해져 소중하고 다른 녹차와 비교할 수 없이 맛이 있었다.
봄비가 내리는 곡우는,
<한 해 농사를 책임질 비가 내리는 중요한 시기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에서 깬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곡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을 이때에, 수확을 하는 것도 있는데
그게 바로 찻잎이다.
곡우쯤에 나오는 찻잎은 그 해에 처음으로 수확하는 찻잎이다.
청명에는 너무 덜 자랐기 때문에 잎을 따기에 이르고,
입하가 되면 너무 많이 자라서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
곡우 전후에 딴 어린 새순으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은은하면서도 풍부해서 상품으로써의 등급이 높고
따라서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되는 차다.> 블로그에서
대지의 새 기운을 잔뜩 먹고 자란 어린 찻잎은 그야말로 신기로운 맛을 지닌 차다. 신기를 머금은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가 으뜸이기는 하지만 약간 싱거운 면도 있다. 내가 마시는 녹차는 거의 세작을 주로 구입해서 마셨다. 새의 혓바닥 같다는 이름의 세작은 우전차가 나오고 난 뒤 보름 정도 지나고 딴 찻잎으로 만든 차다.
차를 마시는 순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고요한 시간이다. 차의 쌉싸름한 맛에 길들여진 나는 오랫동안 차는 나의 친구처럼 세월을 같이 해 왔다. 차는 내 삶의 동반자와 같다. 그만큼 차는 내 인생에서 세월을 덧입히고 나와 함께 해 오며 나를 좀 더 깊이 있는 정신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다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을 접하는 시선이 달라졌다. 모든 자연 풀 한 포기도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럴까 책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법정스님 책을 즐겨 읽었다.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에서 스님은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 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잔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소박한 행복론이다.
차를 마시며
나는 마음이 혼란할 때면 차 한잔 마시며 스님의 책을 읽고서 마음을 다 잡곤 했다. 언제 읽어도 마음이 편안하다. 삶에서 비워 내는 일. 욕심을 버리고 사는 일, 소박한 삶을 살아가시는 스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차를 마셔왔다. 차는 나의 또 하나의 행복이었다.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누구와도 아닌 나를 만나는 고독한 시간은 차가 나를 살게 해 주었다.
어제 서울 사는 셋째 사위에게서 택배가 왔다.
커다란 봉지의 차를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는 차는 100g씩 소포장을 한다. 아마도 전문가가 아닌 분에게 부탁을 해서 그렇게 포장을 해 온 듯하다. 기쁜 마음에 곧바로 차를 한잔 우려 마시고 또 놀랐다. 그 차는 아주 어린잎으로 만든 차다. 수없이 많은 어린잎을 어떻게 손으로 땄는지 도무지 놀라지 않은 수 없었다. 찻잎이 아주 작은 새싹 찻잎으로 만들었다.
처음에 마실 때는 싱그러운 맛은 있으나 약간은 싱거운 맛이 느껴졌다. 어제 시 낭송 모임에 가지고 가서 마신 그 햇차 맛은 너무 맛있고 혀 안에서 맴도는 차 향이 나를 행복하도록 해 주었다. 차 마시고 아직 사위에게 인사도 못했는데 이제야 답을 해 줄 것 같아 기뻤다. 사위는 20년 동안 중국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온갖 좋은 차와 필요한 중국 차 도구를 사서 보내 주었다. 사위 덕에 맛있는 중국 차를 마셔왔고 차 생활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어제 보내왔던 차 포장에 "영천 수아"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아마 영천이란 곳에서 맨 먼저 딴 어린잎으로 차를 만들었다는 뜻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 온다. 그 많은 어린잎을 손으로 따느라 얼마나 수고를 했을까. 차를 마시며. 찻잎을 따는 수고로움도 헤아려 본다. 좋은 차를 나에게 마시도록 배려 해준 셋째 사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다 뜻해지며 고맙다.
봄이 오기를 기다렸던 햇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행복이 무엇인지 나에게 기쁨을 더해 준다. 올 한 해 차 마시며 글쓰기를 하면서 올 한 해 잘 살아 보련다. 사위에게 차 선물을 받고 마치 곡간에 곡식이 채워진 듯 차 부자가 되었다. 너무 기쁘다. 차를 만드느라 수고를 하신 분도, 중국에 가서 차를 구입해서 가져다준 분도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살면서 얼마큼 행복한가 보다는 무엇으로 내가 행복한 사람인가 그 말이 더 중요하다." 어느 작가 강의 때 들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