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두 끼를 폐 낄 수는 없어요"

12살 손자가 엄마 가 출근한 날 할아버지에게 점심 후 저녁에 한 말

by 이숙자


딸이 넷인 우리 집, 지금 쓰는 이 글은 세쨋딸네 작은 아들이야기다. 세쨋딸은 결혼하고 바로 중국에 가서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까지 20년을 살아왔다. 사위는 젊어서부터 중국에서 생활을 해 왔기에 중국의 모든 분야에 밝은 사람이었다. 결혼 후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직장 얻고 회사의 좋은 자리에서 근무를 하고 평탄한 생활을 해왔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오면서 생활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딸은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일 년에 두 번씩 한국을 방문하면서 살아왔었다. 2019년 겨울에도 마찬가지로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의 출현에 발이 묶여 다시 중국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살던 집과 모든 살림을 두고 몸만 나온 가족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고 멈추지 않는 코로나로 다시는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행여나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댜렸지만 기다림은 허사였다.


딸네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에서 일 년을 같이 살아야 했었다. 몸만 나온 딸네 가족은 어떻게든 살아 내야만 하는 막막함, 곁에서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딸은 집에서 영어 과외를 하고 학원 강사로 나가고 바쁘고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위도 본가와 우리 집을 오고 가며 아이들 건사를 하고 나름 사업을 구상을 하면서 바쁜 생활을 이어 왔다. 사위는 매우 성실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코로나 상황만 기다릴 수는 없었다. 한국에 나온 지 일 년이 가까워지면서 어렵게 사위는 중국에 들어가 살림을 정리해서 한국에 부치고 직장도 정리하고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셋째 딸네 가족은 시 부모가 살고 계시는 분당 아파트 앞동에 새로이 아파트를 마련하고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삶은 2~3 년은 힘들었다. 입시생이었던 큰 손자는 혼자서 공부하면서 그 어려운 생활을 잘 버텨 내고 학원은 물론 과외 한번 받아 본 적도 없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고 멀리 떠났다. 사람 사는 일은 어려운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또 다른 일에서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인 것 같다. 큰 손자 대학 합격은 감동 그 자체였다. 본인도 울고 가족도 울었다.


집에 남은 건 12살짜리 둘째 손자였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을 때 딸은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일을 주로 했기에 아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빠와도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빠도 엄마도 일이 많아 거의 둘이서 투잡을 하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둘째 아들인 손자는 스스로 일을 챙겨야 한다.


가끔이면 앞동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려 가는 일은 드물게 있었다. 요즈음은 학생들도 바쁘다. 학교 다녀오면 학원을 2개 정도 다니는 것은 기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그래야만 한다고 한다. 아이들 교육비가 많이 드는 이유도 사교육에 있다. 자녀들이 많은 부모는 자연히 허리가 휜다는 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어제 일이다. 딸들 카톡방에 카톡 소리에 열어보니 셋째 딸이 보낸 톡이었다.


"오늘 준하 개학날, 급식도 없고, 학원도 없어서

12시부터 밤까지 혼자였을 상황, 아버님이 일정취소 하시고,

점심 사 주신 후, 할아버지 집에 있다 3시경부터 나 홀로 집에 ㅋ


아버님이 연락해도 전화 안 받아서 저녁 먹자 데리러 오니

하루 두 번 폐 끼칠 수 없다며 혼자 먹겠다 했데 ㅎㅎ

혼자 소시지 부치고, 계란프라이 해서 저녁 먹었데."


"저녁은 해 주려고

일찍 출근했는데, 어려웠고ㅋ"


딸이 보낸 카톡이다. 세상에 이제 나이 12살인 손자의 말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해하면서도 마음이 울컥해 온다. 예전 중국에 살 때는 방학이면 할아버지 댁에 와서 방학이 끝날 때까지 머물다 갔었는데 이제 본인 집이 있고 조금 자랐다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어린 손자의 속 깊은 마음이 놀랍다. 아빠 엄마 바쁜 걸 알고 집에 온 택배상자도 들여놓고 어질러진 집도 정리해 놓았다고 한다.


그래 무엇이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가족에게도 항상 고마워하고 자기 책임을 다 하는 자세를 갖는 것도 아이가 바르게 자라는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날 손자와 말을 해 보면 아주 의젓하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럴까? 요즈음 아이들은 아는 것이 참 많다.


남편하고 딸이 보내 준 카톡을 보고 우리는 손자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운다. 그래 지금은 조금 힘들더라도 혼자서 자기 일을 해 내는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너무 보호만 받으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약 할 수 있으니까. 결국 세상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직은 어린 손자지만 세상을 살면서 주변에 감사하고 바르게 자기 일을 잘 해내는 사회의 일원으로 잘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손자의 말을 듣고 나도 내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 폐가 되는 사람은 아닌지. 그 말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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