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풍습이 달라진다
힘든 제사 함께 묶어 지내기로 했다
어제는 시아버님 기일이었다. 큰집 형님은 요양원에 계시지만 제사는 여전히 해야 하는 일이다. 다만 코로나 시대는 가족이 다 모이지 못했지만 지금은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그 후 달라진 상황은 간편하게 제사를 다 묶었다. 할아버지는 아버님과 묶고 할머니는 어머니와 묶어 제사를 일 년에 두 번만 지내면 된다. 예전에는 양 명절까지 8번을 지내왔다.
지난해부터 달라진 시댁 제사 풍경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와 맞닿는다. 큰집 형님이 아파 요양원에 계셔서 그렇기도 하고, 제사를 앞으로 지내야 하는 조카는 이제는 나이 든 우리 세대와 다르다. 우리는 서서히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 지는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생각을 존중해 주어야 갈등이 없다. 참아내는 일이 관계를 잘 이어가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옛날 어른 들은 왜 그렇게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의아하다. 제사가 마치 종교의식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댁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본 아버님은 몸이 좋지 않으셨다. 누워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보행이 불편해 방 안에 앉아 계시는 날이 많았다. 그때는 의료 보험이 없는 시절이다. 아마도 의료비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이 안타깝다. 아버님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시고 본인의사대로 사신 분이다.
오로지 자녀들을 위해 본인을 위한 돈을 아끼셨다는 말을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병원에 가셔 다 검사받고 병원생활을 하셨으면 더 사셨을 거라는 생각에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울컥해 온다. 오로지 자녀들. 특히 큰 아들에게 제사 지낼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말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준 듯해서 숙연 해진다.
시동생은 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할아버님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 것을 몹시 마음 아파한다. 할아버지 제사 날이면 혼자서 산소에 다녀 올 정도로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애정한다. 그렇다고 제사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하면 그동안 우애 있게 잘 지내온 사이가 멀어질 수 있다. 형제가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를 보면 거의 제사 문제와 부모님 유산 문제다. 그러나 이 집 3형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숙님은 동생들을 잘 만났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형님의견에 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혹여 불편 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침묵을 하며 살아가는 시댁 형제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놀라곤 한다. 그렇지만 어쩌랴 이제는 우리는 구경만 해야 하고 막상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큰집의 아들 조카가 주관을 한다.
시숙과 남편 시동생은 이제는 나이 들어 뒤로 밀려나야 하는 세대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모든 것이 변하여 간다. 우리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는 제사 음식도 많이 하지 않는다. 형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형님은 제수를 많이 준비해 왔다. 시숙과는 다른 성품을 가지신 형님이셨다.
형님은 큰 며느리의 덕목을 지닌 분이었다. 이제는 형님과 일상을 같이 할 수 없어 마음이 아프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아프고 어느 날은 홀연히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제사란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의 화목과 가족을 하나로 묶어 서로의 힘이 되게도 해 주는 일이다.
남편과 시 동생은 마음속으로는 불편 함이 있어도 절대로 형 앞에서는 불편한 이야기를 한 마디로 안 하는 걸 보면 참 인내심이 대단하다. 아니 우애하는 사랑이 깊어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데 얼마 남지 않는 삶을 서로 불편하고 미워하며 살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의 관계는 마무리가 중요하다.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 하나 자기 생각대로 말하고 참아내지 않으면 가족의 화목이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하고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가족, 마음 가득 은혜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마감하는 일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참아내야 하는 일이 많다.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