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이다. 둘째 딸이 살고 있는 곳은 서울 동쪽 끝쯤 된다. 바로 옆에 산이 있어 공기가 맑고 산책하기 매우 좋은 곳이다. 아파트 5천 세대를 새로 지어 만든 신도시라서 단지네 조경 또한 예쁘다. 주변이 한적하고 나이 든 사람들이 살기에는 좋은 곳이 지만 딸이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한다. 섭섭하지만 다 그만한 사정이 있으니 도리가 없다. 사람 사는 일은 마음대로만 살 수 없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산속 데크 길을 산책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우리는 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으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 세대수가 많은 만큼 수영장도 있고 편의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요즈음 트렌드에 맞게 삶의 질을 높이고 살 수 있는 환경이다. 딸은 지금은 사정이 있어 이사를 가지만 나중에 나이 들면 다시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고 말을 한다.
수영장은 시설도 좋았다. 목욕탕과 사우나 실도 깨끗하고 사람도 많지 않아 마치 여행을 온 느낌이다. 딸은 이런 좋은 시설을 아빠 엄마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엄마 이런 좋은 시설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고 이사를 가면 아빠 엄마는 다시 못 오시잖아요."그 말에 나는 마음이 울컥해 온다. 어렸을 때는 유난히 까다로워 나를 힘들게 했던 둘째 딸이다. 크면서는 나를 가장 편하게 해 주었다. 딸은 우리를 좋은 것 보여 주고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 올라오라고 그렇게 재촉을 했나 보다.
오랜만에 수영장에 오니 물이 무섭다. 한참을 지나고서야 적응이 되고 물속에서 노는 시간이 또 다른 재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딸에게 "여행 온 것 같다." 그러게 자주 오시라고 해도 안 오시고 이제는 이사 가네요." 우리는 점심 약속이 있어 수영장에서 서둘러 나왔다.
주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니 사람들은 다 각기 책을 보는 사람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일을 하는 사람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생활을 즐긴다. 책도 여기저기 꽂여 있다. 사람은 사는 환경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진다. 나이 든 우리는 이런 환경에서 살아보지 못했지만 자식들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 감사한 일이다. 딱 내가 좋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성동구 옥수역 달맞이 봉 공원
둘째 사위와 딸과 함께 막내네 집으로 가는 길, 서울 강변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벚꽃도 피어 있고 정말 찬란한 봄이다. 강변에서 바라보는 산이 온통 개나리 산이다.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아마도 주말이라서 꽃구경 나온 듯하다. 코로나도 거의 소강상태라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사람 사는 세상답다. 이번 봄은 자유롭게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날들이 반갑다.
막내 사위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 손님이 찾아오는 작은 음식점을 한다.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하기보다는 가족들이 다 모이게 하려고 장소를 막내네 집으로 정했다. 그래야 다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도 그래왔다. 그 방법이 막내 사위와 같이 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은 늘 막내 사위가 안쓰럽다. 항상 불 앞에 서서 음식을 만들고 있으니 그 고단함이 얼마나 될까. 아직은 젊으니까 하고 위로를 보낸다.
분당에 살고 있는 셋째네 가족은 벌써 도착했다는 문자가 온다.
남편과 나는 마치 봄 꽃놀이 여행을 온듯하다. 오랜만에 오게 된 서울의 거리는 활기가 넘치고 좋다. 한강을 바라보고 달리는 도로 옆에는 개나리가 정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사람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에게 응원의 덕답을 하고 그게 사는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남편 나이 80이 되었을 때 내가 제안을 했다. 일 년 중 연말이면 서울에 올라가 가족들 다 모이게 하고 한 해 동안 바쁘고 힘들게 살아온 자녀들에게 위로도 하고 밥도 사주고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일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말하자면 가족 망년회다. 자꾸 나이가 들면서 몇 번이나 만날까. 가는 세월이 야속할 정도로 시간은 빨리 가고 있다. 코로나가 오면서 3년을 만나지를 못하고 오늘에야 모두 함께 만남을 가진다.
벌써 남편의 나이 86세.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 중 85세가 넘는 사람수 퍼센트는 5% 정도 된다고 한다. 남편의 나이가 보통 나이는 아니다. 그러니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람 사는 일은 내일도 모르고 사는 삶인데 내일로 미루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언제나 오늘이 중요하고 오늘 함께하는 사람이 소중하다. 돈도 같이 쓰는 사람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
와인 한잔으로 서로를 응원한다 세째 딸 생일고 함께
정말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였다. 멀리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편은 와인 한잔을 마시고 덕담을 하시며 즐거우신가 보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막내 사위가 해 주는 음식은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다. 부지런히 뚝딱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 앞에 내놓는다. "오늘 밥은 아빠가 산다." 아직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밥을 사 줄 수 있어 남편은 뿌듯한가 보다.
한동안 대화를 하다가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서로 가슴에 잊지 추억 하나를 남긴다. 셋째는 몸이 안 좋아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둘째 딸과 함께 다시 딸네 집으로 가는 길 천호동 워커힐 앞 산자락 산책을 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사위는 사람 없는 곳을 피해 다닌다. 산길을 걸으며 한강을 바라보고 산에 피어있는 진달래도 보고 현빈이 결혼했다는 한강이 보이는 건물도 볼 수 있었다. 사람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사는구나 하면서 하염없이 한강을 바라본다. 서울의 젖줄 한강이 없으면 서울이라는 도시는 얼마나 삭막할까.
워커힐 호텔 뒤로는 한강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
우리 부부가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딸과 사위는 촘촘히 계획을 세우며 우리를 데리고 다닌다. 하루는 어찌 그리 빠른지 이런 날은 잠시 시간이 멈춤은 안되는지 저무는 해가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