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서 이상하리 만치 입안이 까끌거리고 입맛이 없다. 뭘 먹어야 할까? 남편과 두 사람만 사는 밥상은 간단하다. 남편은 반찬을 많이 먹지 않는다. 편식을 하고 나물 반찬은 잘 입에 대지도 않으니 군소리도 못하고 그냥 포기하고 만다. 밥상에서 각자 입맛대로 먹어야지 별 묘안이 없다.
가끔은 반찬을 많이 만들어도 남편이 먹지 않아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나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나물 반찬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봄만 되면 밥상 차리는 일이 불편하다. 누군가는 먹고 싶으면 해서 먹으면 되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말하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나도 남이 해 주는 밥을 먹고 싶은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는 헛웃음이 난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요즈음은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아프면 며느리도 딸도 소용없다. 요양원으로 직행해야 하는 일이다. 내 손으로 밥 해서 남편과 먹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인지 살아갈수록 절실히 느낀다. 나이 들면 그래도 곁에서 챙겨
주는 건 남편뿐이다.
오랜만에 재래시장을 나간 재래시장은 봄빛이 가득하고 봄에만 나오는 나물들을 만날 수가 있다. 그래도 봄나물을 먹어야 봄맞이를 하는 것 같다. 모든 만물은 다 때가 있다. 음식도 그렇고 사람 사는 일도 그렇다. 때를 맞춰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사람이 가진 오감의 촉수를 켜 놓으면 알게 되는 일이다.
계절에 만나는 음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기 때문에 부지런을 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 많다. 도다리쑥국은 몇 년 전부터 먹게 되면서 봄이 가기 전에 꼭 끓여 먹는다. 쑥 향도 좋지만 살이 통통히 오른 도다리를 넣고 끓인 도다리 쑥국은 봄에만 먹는 특별한 메뉴다. 처음엔 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맛을 즐긴다.
시장에는 봄나물이 잔뜩 나와있다. 먼저 쑥을 사고 무슨 나물을 살까 생각하는데 어린 머위잎이 눈에 띈다. 머위는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워 준다. 머위 나물은 내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시댁은 시골이었다. 시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봄이면 꼭 어린 머위를 따서 보내 주셔 먹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하면 어머님이 그리워지는 그리움의 맛이기도 하다.
머위 나물 된장 고추장을 넣고 무친 머위 나물
가계 주인에게 "머위 좀 주세요" 물었더니 "아직은 어린잎이라 비싸요"라고 말한다. 나물이 비싸면 얼마나 비쌀까 싶어 "주세요" 그랬더니 5000원어치가 너무 적었다. 삶으면 딱 한 접시쯤 될 것 같은 양이다. 그래도 사야 한다. 어린잎의 머위 나물은 맛도좋고 추억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새로 나온 쑥 해쑥을 샀다
시장에 가면 각종 봄나물이 나왔다
나물을 삶아 무치고 쑥국을 끓인다. 오늘은 밥상에 봄이 찾아온 느낌이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먹을 때 느끼는 싱그러운 맛이 봄맛이다. 내손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남편과 같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행복의 의미를 큰 것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작은 것, 내 마음 안에서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쑥국 봄나물 쑥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나물을 다듬어 삶고 쑥도 씻어 쑥국 끓일 준비를 한다. 쌀 뜬 물로 쑥국을 끓여야 맛있다. 그날은 도다리가 시장에 나오지를 않아 별수 없이 그냥 돌아와 멸치와 마른 새우를 넣고 끓였다. 봄맞이를 하기 위해 봄나물로 밥상을 차린다. 산다는 건 생각하기 나름이다. 눈높이를 낮추면 사는 것이 살만하다.
지난해 먹어보고 올해 처음 먹어보는 머위 나물과 쑥국은 맛있었다. 정말 입맛을 살려 주는 것만 같다. '그래 이맛이지' 하면서 혼자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만 내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 사람은 살면서 먹는 것이 으뜸인 것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먹은 음식이 내일의 내가 될 것이다. 음식은 생명이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부지런히 재래시장을 다니며 봄나물 밥상을 차려야겠다. 내 마음 안에 머물고 있는 열정이 있어 나는 늘 새롭고 감사하다. 별스럽지 않은 작은 일상이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