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릴리스 꽃

무엇이든 버리기 좋아하는 남편

by 이숙자


얼마 전 대야 농원에 갔을 때 마음씨 좋으신 사장님은 조그마한 구근 뿌리화초와 몇 가지 꽃나무를 주셨다.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거 구근은 아주 조그마했다.


"그거 화분에 심으시면 곧 꽃이 필 거에요." 난 속으로 저렇게 작은 것이 정말 꽃이 필까? 하는 생각에 의아해했다. 잎은 겨우 싹이 나오려 뾰족이 고개를 내 밀고 있었다. 우리 집 식물 키우는 담당인 남편에게 건네주면서


"이것 심으면 곧 꽃이 핀데요." 너무 작아 혹여 버릴까 봐 미리 당부를 했다. 남편은 버리기 선수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무엇이든 마음에 안 들면 버린다. 말을 하려면 수없이 그 사례가 많다. 예전 주택 살 때였다. 외출을 하려고 구두를 찾으니 없었다. 그 신발은 망사 구두로 신축성도 있고 편해서 여름에는 자주 신는 신발이었다. 찾다가 못 찾아 물어보니 쓰레기통 가보라 했다.


세상에 고무통인 쓰레기 통에 신발이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소리를 한번 질렀다. "아니 자기 물건도 아닌 내 신발을 왜 버리냐고요? 더욱이 아직 멀쩡한 신발을, " 그런 뒤에는 버리는 일은 한 동안 잠잠했다. 다시 그 병이 도진건 아파트로 이사 와서다. 다도를 할 때라서 동네에 야생화랑 옛 골동품을 파는 집이 있었는데 너무 예쁜 것이 많아 난 무리를 해서 사고 싶은 걸 샀다. 말굽 받침을 동으로 된 작은 화분을 에 덩굴 식물을 심어 낚싯줄로 창문에 매달아 놓으면 분위기 있고 예뻤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그것도 버리고 아주 조그마한 돌확 같은 것도 버렸다. 돌로 된 조그마한 돌확도 예뻤다. 가격이 상당히 나가는 걸 무리를 해서 샀는데 그것까지 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고 정말 얼마나 화나 나던지 한 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어느 날 공원 산책을 다녀오면서 나는 남편에게 한 소리를 했다.

"앞으로 내것은 종이 한 장이라도 버리기만 해 보세요. 나는 그때는 참지 않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만의 취향은 있다.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마구 버리는 남편,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고 정말 어쩌란 말인지, 글을 쓰면서 지난 일이라서 지금은 웃을 수 있다.


하다 못해 물건을 사면 예쁜 쇼핑백도 그냥 버린다. 그것도 잘 접어 놓으면 다 쓸 소용이 있는 것들이다. 나는 무엇을 보면 어디에 사용할까 그 생각부터 한다. 사람 사는 일은 오만가지가 다 필요하다. 그런데 보기만 하면 버리는 남편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어느 날은 내가

"당신 그렇게 버리다가 마누라까지 버리겠네요?"

하고 물으니 "다 버려도 마누라는 못 버리지" 말인즉은 맞는 말이다.


나와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버릴 수도 없는 사람. 그냥저냥 살다가 삶을 마감해야 하는 수뿐이 없다. 다른 것은 다 잘하고 있으니 이해하고 산다. 남남인 사람이 만나 자식 낳아 기르고 결혼도 다 했으니 할 일은 다 했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살아왔으니 어찌 사연이 없으랴.


남편은 호랑이 나는 원숭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이다. 이제는 지고 이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오래도록 건강하게 곁에 계셔주는 걸로 감사한 관계니까.


아마 릴리스 스파티 필름


꽃 구근하나를 설명하려다 이건 무슨 남편 성토를 하는 것 같아 나도 살짝 민망하다. 예전 같으면 아마 버렸을지도 모르는 꽃 구근이 작은 화분에 심어 놓으니 며칠 사이 놀랍도록 꽃대가 올라오더니 꽃을 피웠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세상에 그 조그마한 뿌리에서 꽃대가 올라와 빨강 꽃을 피우다니 너무 예쁘다.


빨강꽃 이름은 아마릴리스 하얀 꽃은 스파티 필름꽃이다. 꽃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편의 수고로움에 나는 그냥 덤으로 꽃구경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은 기운이 아니라 기분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기운이 나지 않을 억지로 기운을 내기보다 스스로 기분을 챙기면서 마음과 몸을 추스르는 게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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