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제사, 형제들은 모여 여행을 합니다

by 이숙자

유월이 오면 친정아버지 제사가 돌아온다. 날이 더워진 만큼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형제들이 다 모이면 먹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40년 가까이 제사를 지내왔던 큰 동생댁도 나이만큼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둘째 남동생 짝은 세상을 먼저 떠났고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나는 친정에서 7형제의 맏딸이다. 맏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일이 있으면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어머니도 몇 년 요양원에 계시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는 2019년 12월에 돌아가셨다. 다행히 코로나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라서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성당에서 신부님의 장례미사에 따라 신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외롭지 않게 세상을 떠나 신 어머니, 복을 많이 받으신 분이다.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 세월이 거의 3년이 되었었다. 사실 제사란 돌아가신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형제들과 모여 정을 나누는 자리라 생각한다. 형제들도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 아픈 사람들이 늘어난다. 형제들과 의논 끝에 아버지 어머니제사는 산소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 준비해 제사를 지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몇 번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산소에 갔으나 더운 여름이라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았다. 음식은 안 되겠다 싶어 지금은 마른안주와 과일 술만 준비해서 지내고 있다. 밥은 산소에서 내려오면 맛집이 있어 식당에서 사 먹는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고 간편해서 좋다.


코로나가 오면서부터 아버지 제사 방법을 바꾸어 지내온 지 4년째다. 지금은 부모님 제사 날은 형제들 여행 가는 날처럼 설레면서 만난다. 서로의 안부는 묻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뀐 만큼 사람 사는 방법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예전 제삿날에는 음식 준비에 바쁜데 늦게 오는 사람에게는 불만이었다. 서로가 불편했다. 바빠서 늦게 오는 사람.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경우 제사란 요래 저래 며느리들의 갈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불편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돈도 형제들 기금에서 모든 걸 지출하니 돈 가지고 신경 쓸 일도 없어서 좋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니 만나면 편안하고 즐겁다. 형제도 나이 들어가면서 더 애틋하다. 언제 이별할지도 모르는 우리들, 이제 나이들이 육십 대부터 팔십 대 까지 작은 나이들이 아니다.


형제들이 모이면 삼가야 할 일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취향과 개성을 가지고 살기에 누가 잘못한다고 지적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맞다. 형제들 짝은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가족으로 모여 수십 년을 살아왔고 노년이 된 형제들, 사위 올케들에게 만나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가 응원하는 가까운 사람으로 마음이 편해졌다. 싫은 소리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는 부모님 제사에 특별한 기획을 했다.

이번 부모님 제사와 여행은 셋째 동생 기획이었다. 군산 신시도 민박 패션을 예약해 놓아 그곳으로 집결하기로 하고 전주에 살고 있는 동생들은 군산으로 모였다. 전주 사는 동생들이 신시도로 도착을 했고 나와 곁에 사는 동생은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동네 마트에 갔다. 장 보는 것은 여자들 몫이다.


여행이란 나이 듦에도 불구하고 언제난 설렌다.


군산에 모인 형제들은 차를 나누어 타고 새만금길을 신나게 달린다. 음악까지 틀어 놓고, 멀리 가는 여행은 아니지만 기분을 낸다. 그러다가 새 만금 바닷길이 끝나는 지점쯤 왔을 때, 문득 생각나는 것은, 여행 준비로 쌓놓은 내 가방은? 남편이 챙겼나 궁금해 온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문 앞에 우리 가방 차에 실었어요?"

"아니, 언제 나보고 가방 실으라 했나.?" 아이고 이걸 어쩌냐. 여자의 생각과 남자의 생각은 다르다. 여자는 말 안 해도 챙겨 왔을 것이다. 어쩜 그리 답답할까, 남편은 한 가지만 생각하는 지극히 단순한 사람이다.


나는 난감했다. 동생과 올케에게 미안해서 어떡하나 하고 있는데 올케가 "형님 바다 한번 더 보라고 그런가 봐요." 그 말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덜고 차를 돌린다. 거기서 불평하면 내가 더 마음이 편치 않았을 텐데 그렇게 말해 주는 올케가 고마웠다. 차를 돌려 다시 다녀오려면 40분 거리쯤 된다. 다시 남편생각에 답답해 온다. 이해가 안 되어서다.


남자들이라고 다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이건 사건이다. 물파스 챙겨 오라고 하니까 그건 챙겨 오고 현관문 앞에 있는 가방은 들고 오란 말을 안 해서 들고 오지 않았다니 이건 무슨 일일까? 내가 급한 건 물파스였다. 언제 모기가 물었는지 팔목 부분이 빨갛게 부어올라 가려웠다.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워 버린 듯, 나도 웃어야 할지 어이가 없다. "동생 미안해" 동생은 싫은 기색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고속도로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거의 30분을 달려왔는데 이건 무슨 일인지. 여름이라서 사람이 더 늘어지고 멍해 온다. 이건 괜스레 나를 변명하는 듯 하지만 정말이다. 날씨가 약간 서늘해야 사람이 긴장이 되는데 말이다.


여름은 낮은 길다. 장장하일이란 말이 맞다. 신시도는 우리 집에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5시가 조금 넘어 신시도 펜션에 모두 도착을 해서 만났다. 펜션은 바닷가 바로 앞에 있어 바다 특유에 비릿한 냄새가 풍겨 온다. 숙소는 약간 마음에 안 들지만 음식이 좋아 항상 만원이라 한다. 그래서 그럴까 웬 차가 그리 많은지 인터넷을 보고 예약을 하고 찾아온다고 한다.


인천에서 내려온 여동생과 제낭 둘, 모두 11명이 모여 입실을 해서 짐을 풀어놓고 숙소는 이층이고 식당은 일층이다. 식당으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밥도 이른 시간에 먹는다. 넓은 식당 안은 사람이 어디에서 다 오셨는지 꽉 찼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친구끼리 가족끼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여하튼 음식 상은 푸짐하다. 배불러 다 먹지 못할 정도로 각가지 음식이 많았다.


바닷가에서 먹을 수 있는 회, 게도 쪄 좋고 생선을 몇 가지를 구워 놓았는지 아주 푸짐하다. 아귀찜에서 낙지볶음까지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분은 좋다. 여기저기 소주잔을 기울이며 건배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몇 년 동안 숨죽여 왔던 한 풀이라도 하는 건지, 건배사가 요란스럽다. 우리나라 술 문화는 특이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활기 넘치는 그 속에 앉아 있으니 나는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숙소 앞에서 바라보는 풍경 해가 질 때 바닷가 풍경

우리가 예약한 숙소 뒤편 새로 지어진 숙소

낮 달맞이꽃 철도 아닌 코스 모스 꽃이 피어있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나서 포만감에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돈다. 바다는 일몰 하기 직전이고 동네 마을은 아담하고 담장을 그림을 그려 잘 꾸며 놓았다. 그러나 어선에서 쓰는 도구랄지 정돈이 되지를 않아 바닷가 주변은 깨끗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불평을 하면 안 된다. 여행을 주선한 사람이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다른 쪽에 마음을 달랜다. 나는 가까이 살면서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곳이다.


바닷가에서 서서 바라보니 멀리 다리가 보이고 선유도 까지 보인다. 해는 지려고 바닷물 위에 일렁이는 윤슬이 아름답다. 지는 노을을 한 참이나 서서 바라보았다. 뜨는 해도 아름 답지만 지는 해가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지는 해를 보면서 수 없이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나이 든 우리 모습과 닮아서다.


얼마나 지금 , 내가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기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 인가 <조병화 시인의 늘 혹은 때때로의 시>에서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명확한 확인이다. 사람은 살아온 세월만큼 사연도 많고 추억 또한 많다. 그래왔던 모든 세월이 그 사람의 인생인 것이다. "구름은 바람 없이 움직일 수 없고 사람은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다.


여행 이틀째는 다음 글에서 계속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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