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날씨는 종 잡을 수 없다. 밤에는 폭우처럼 쏟아지던 빗줄기도 아침이 되면 하늘은 어젯밤 일인데도 모르는 척하고 시침 땐다. 어제도 그랬다. 지난밤 비가 많이 쏟아졌는데 날이 밝아 아침이 되니 언제 비가 왔나 할 정도로 말짱하다. 다만 하늘만 흐릴 뿐이다. 날씨가 흐린 날은 밖에 나가기 싫고 집안에서 책이나 뒤적이며 뒹굴 거리고 싶은데 남편생각은 다르다.
흐린 날인데도
"운동가지?" 하고서 서두른다. 나는 필히 운동을 해야 하는 당뇨환자다.
"그럼 오늘은 은파로 가게요"
은파는 나무 그늘이 없어 여름에는 산책하기 힘들어 피하는 곳이다. 지난봄 벚꽃이 필 때 가본 후 여태껏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차를 타고 은파를 향해 가고 있다. 이삼 개월이 지났는데 어느 사이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 예전 논 밭이었던 곳이 아파트가 새로 올라가고 얼마후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고 은파호수 공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오랜 시간도 아닌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은파풍경이 변하고 있다. 계절마다 변하는 세상, 그 세상 속에 나는 어느 곳으로 휩쓸려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봄을 맞이하고 다가오는 여름을 보내고 가을 오면 다시 겨울을 준비한다. 우리는 그렇게 세월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반복의 연속이다. 시작과 끝도 없는 세월은 헤매면서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우리의 끝은 언제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체 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은파에서 월명 공원에서 매일 보내는 시간이 우리의 일과다. 건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돈도 명예도 다 부질없는 것이 된다. 오로지 건강한 몸으로 일상을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게 가장 큰 소망이다. 매년 사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남편과 나는 산책을 한다. 세월과 함께 익어가는 일이 아닐까? 보면서 눈에 보이지 은파 호수에도 어느 사이 연꽃이 피어 보기 좋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은 말하지 않아도 소리 없이 자기의 생을 살아낸다. 부지런을 내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도 못 보고 지나갈 듯하다.
날씨가 흐려서 인지 사람들도 거의 없다. 한두 사람 어쩌다 마주친다. 사람 사는 일은 사람이 많으면 복잡해서 싫다가도 사람이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은 상상이 안된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남편과 걷는 길이 쓸쓸하다. 어젯밤 비가 다 마르지 않아 테크 길도 빗물이 고여 있어 요리 저리 피해 걷지만 신발 안으로 빗물이 들어와 양말까지 척척하다. 오늘 은파 호수만 오면 보이던 물 오리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별게 다 궁금하다.
한시 간 정도 산책하는 코스는 우리는 쉬는 곳이 정해져 있다. 사람이 없으니 공원도 적막하다. 사는 일이 사람으로부터 문제가 오고 사람은 피하는 듯 하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야 사는 맛이 난다. 호수에는 연꽃이 피었다. 지난해 마주했던 연꽃을 보니 반갑다. 나도 몰래 사진 찍기 바쁘다. 세상에 나오는 모든 존재들을 의미가 있어 태어난다. 연꽃을 보면서 연꽃이 세상에 나온 의미는 무엇일까?
남편과 나는 우리들의 쉼터에 앉아 호수의 물을 보며 말없이 생각에 잠긴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할 날이 언제까지일까? 팔십이 넘은 노 부부는 또 하루를 살아낸다. 날마다 산책을 하며 우주의 신비를 느끼고 자연의 변화 속에서 녹슬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 부부는 걷고 또 걷는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의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바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