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에서 깨어나기 전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잠결이지만 남편이 거실에서 걷는 소리는 무엇을 하시는지 퉁탕 거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아침잠이 없는 남편은 언제나 일찍 일어나 화초들을 돌보며 수선을 떤다. 나는 남편보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 많다. 내 나이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소화해야 할 일이 많지만 잘 견디는 것은 잠을 잘 자기 때문 일거다.
"여보, 날씨 좋아 빨리 밥 먹고 산책 갔다 오자."
나는 아직 침대 위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는데 남편 말소리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 눈을 뜨고도 어젯밤 잠들기 전 외웠던 시를 한번 마음으로 낭송해 본다. 나이 탓인지 빨리 시가 외워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꾸준히 노력한다. 내 삶의 근원은 노력과 인내라 생각한다.
몇 날 며칠을 장마빗 속에 재난을 당한 수해 현장 뉴스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사연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울컥 해 온다. 군산도 비가 엄청 많이 왔지만 다행히 아직은 아무런 사고는 없다. 군산이란 지형은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라 비가 오면 바다로 빠져나간다.
우리 부부는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월명공원으로 갔다. 주차장은 텅 비어 있고 펜슬이 쳐 있었다. 한쪽에는 토사가 쌓여 두꺼운 비닐로 덮어 놓았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책을 하고 있다. 이건 뭐지? 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우리도 펜슬을 넘어 공원길에 들어섰다. 비 많이 온날 호수 물이 넘쳤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오늘은 호수물은 예전과 다름없이 찰랑 대고 있다.
월명산 나무들도 온통 물을 많이 먹어 무거워 보인다. 산책길 옆 도랑도 물이 흐르고 무심한 산 비둘기 소리만 처량하다. 모든 것은 찰나 한 순간, 수마로 할퀴고 간 대지위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뜨거운 햇살만 비추고 있다. 그 많던 흙탕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매번 다니던 길은 아직도 물이 차 있을 것 같아 오늘은 다른 코스로 산책을 했다. 가을이면 내가 즐겨 보는 노란 은행나무들, 이게 웬일일까? 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져 마치 겨울나무처럼 옷을 벗고 있어 내 눈을 의심했다. 다른 나무는 괜찮은데 왜 은행나무 잎만 다 떨어졌을까. 바람이 많이 분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 빈 가지로 서 있는 은행나무가 외로워 보인다. 지금은 초록 나뭇잎이 무성해야 할 때인데 웬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항상 당연했던 것들의 질서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지구의 온난화, 변화하는 기후가 심상치 않다.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뉴스를 보면서 염려가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종이컵하나라도 쓰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에 새긴다. 생활 속 가까이에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느 곳을 가든 가방에 스텐 물컵을 가지고 다닌다.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서다.
한 시간쯤 산책을 하고 내려오니 입구에 쳐 놓은 팬슬도 제거하고 주창장에 차도 주차도 해놓았다. 단지 토사가 있는 쪽은 제외하고. 우리가 공원에 왔을 때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그랬나 보다. 천제 지변 자연 앞에 우리는 항상 무력하다. 지구의 생태도 변화고 사람도 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인가. 거듭거듭 생각하고 반성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며칠 만에 찾아온 햇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은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수재로 피해를 보신 본들도 빠른 시일 내에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해 본다. 이젠 비도 그만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비로 많은 분들이 희생되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