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닌 지 33년 만에 기차 타고 용산 갑니다

by 이숙자

서울 다닌 지 33년 만에 기차를 타고 용산을 갔다.


기차를 타는 것은 언제나 설렘과 낭만이 있다. 둘째 딸이 승차권을 예매해 폰으로 보내 주고 참 편리한 세상이다. 폭우로 기차가 멈 추었는데 다행히 지난 금요일부터 다시 운행을 했다. 한편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다. 금요일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트 홈에서 기차를 타려는데 어느 쪽인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중년의 남자분이 "용산 가려면 이쪽에서 탑니다." 그분은 남편과 내가 주고받는 말을 곁에서 듣고 알려준다.


"그래요?" "저도 용산 갑니다." 이런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나이 든 사람처럼 버벅거린다. 살면서 사람은 가끔 의도치 않은 일과 마주한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정말 작은 일이 사람을 기쁘게 해 준다. 작은 일을 마주하며 우리는 배운다. 살면서 삶의 스승은 곳곳에서 만난다.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기차를 탄 후에도 그분은 우리 뒷자리였다. 남편과 킹킹거리며 가방을 올리려는데 어느 사이 그분은 가방을 번쩍 들어 올리셨다. 가방이 꽤 무거운데도, 내릴 때도 말없이 짐을 내려 주시고 인사할 사이도 없이 어느 결에 사라져 보이질 않았다. 바람 같은 사나이, 말없이 사라진 그분이 더 멋있어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타 본 기차는 편안했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햇살은 쨍하고 평온하다. 며칠 폭우에 나무들도 논 벼들도 상처 없이 잘 자라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보이는 기차는 마치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고 있다. 천천히 가는 기차 덕분에 나는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며 가는 게 오히려 좋았다.


기차 타고 서울을 가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큰 딸이 90년도에 서울로 대학을 오고 막내까지 딸 넷이 서울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서울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언제나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거나 짐이 많으면 택시를 탔다. 그렇게 무려 33년을 다녔다. 그때는 택배도 없었다.


서울 올라 다닌 거리를 비행기처럼 미일리지가 쌓였다면 꽤 많은 숫자가 쌓였을 것이란 말을 사위들은 가끔 말을 한다. 내 두 팔로 무거운 짐을 많이도 날랐다. 다행인 것은 딸들이 모두 결혼하고 자기 자리에서 자리 잡고 열심히 살고 자매끼리 잘 지내고 부모 귀한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있어 더 바랄 것 없이 고맙다.


기차는 정말로 천천히 가고 있다. 장마로 지반이 약해 안전 운행을 위해서라는 안내 방송에 마음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브런치 글들을 읽고 있다. 남편은 천천히 가고 있는 기차가 답답한 듯 잠만 자고 있다. 기차는 4시간 10분 만에 용산에 도착을 했다. 기차 타고 서울을 와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 커다란 역사 역 앞에 보이는 빌딩 숲들, 눈 돌아갈 정도다. 그렇게 많은 날 서울을 다녔지만 용산에 올 일은 없었다.


결혼한 지 23년 차인 둘째 딸은 드디어 용산이란 곳에 둥지를 틀었다. 부모의 도움 없이도, 대견하고 감사하다. 딸이 이사 한지 3개월, 집들이 겸 내 팔순 생일을 가족들이 모여 밥 한 끼 먹기 위해 우리 부부는 서울로 올라온 것이다. 서울의 딸네 가족이 내려오는 것보다는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덜 번거로워 내린 결정이다.


기차에서 내리니 처음 와 보는 곳이라 낯설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사람들 가는 곳을 따라 나오니 딸이 광장 입구에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반가운 얼굴. 이제부터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타고 서울을 다닌다고 생각하니 사뭇 설렌다. 내 노년의 삶은 둘째 딸 이 있어 또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 신축 아파트는 손님이 와도 집에서 밥 하는 일이 없이 아파트 내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접심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 살기 너무 편리한 아파트 시스템을 보고 놀란다. 점심도 입주자들은 그 안에서 사 먹을 수 있고 북카페, 운동시절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 정말 사람살기 편하도록 되어있다. 비록 우리는 못 살아 보았지만 자녀들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오랫동안 수고하고 살아온 보상일 것이다.


행복은 언제나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을 바라보는 것 은 자칫 힘이 드는 일이다. 지금 가진 내 것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파트 안에서 바라보는 여러 풍경을 보면서 생각에 젖는다. 그 많은 빌딩 속에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날마다. 살아갈까?


건물 사이로 보이는 마포교위의 석양


아파트 사이 한강 마포교위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마치 남편과 나의 삶을 반영하는 것 같다. 모든 생물을 때가 되면 소멸하고 다시 탄생을 하는 것이 우주의 진리다. 앞으로 더 많이 살아갈 자녀들 행복을 염원한다. 사람 사는 현상은 그저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수 없이 많은 날 보이지는 않지만 노력의 기운이 모아져 지금의 삶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는 버스보다는 기차를 타고 서울을 다닌다고 생각하니 사뭇 설렌다. 용산 주변의 박물관이며 역사에 대해 내가 보고 공부 할 것이 많아 내 노년의 삶은 용산에 입주한 딸 덕분에 또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해 본다. 사는 일은 내가 디자인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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