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태풍이 피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by 이숙자

지금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한 동안 덥고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며칠 전부터 태풍 카눈이 온다고 뉴스 언론에서 야단 법석이다. 우리 주변 밖에서 하는 행사는 모두 취소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난번 폭우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로 가슴앓이를 하고서야 이번에는 당국에서도 단단한 준비를 하려는 듯 재난 문자가 수도 없이 날아오고 있다


초등학교 방학은 했지만 아이들은 방과 후 수업이 있어 도서관은 문을 닫지 않고 사서들은 근무를 한다. 아침 출근을 하면 아이들은 벌써 도서관 앞에서 서성이면서 문 열기를 기다린다. 사서일은 9시에 시작하지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제는 8시 40분쯤 출근을 했다.


도서관 문을 열면 아이들이 뛰어 들어와 "아이 시원해" 소리를 들으며 반갑다. 학생들은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조용히 책을 읽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나도 덩달아 책 읽기를 한다. 이 보다 더 좋은 피서법은 없다. 도서관에 처음 출근할 때는 책 번호와 책 작가 이름 자음을 골라 책장에 정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할 때는 모르지만 밤에 잠잘 때는 팔이 아프고 힘들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흔들리는 마음으로 갈등을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정리한 지금 도서관 사서일이 힘들진 않다. 무슨 일이던 견디다 보면 또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사서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나이 많은 내가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나를 활기 있게 해 주고 집에만 머무르면 자칫 무료할 수 있는 마음을 덜어내고 사람과의 정 나눔도 기쁜 일이다. 작은 돈이지만 용돈을 번다는 자부심도 있다.


책 좋아하는 나는 책과 함께하는 자체로 기분이 좋다. 어제는 책을 읽으며 곁에 놓았던 폰에서 카톡소리가 울린다. 열어보니 시니어 사무실 담당 선생님이었다. 내일은 태풍으로 모든 일을 쉬여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담당선생님에게 톡을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학교 방과 후 수업도 쉬고 도서관 문도 열지 말라는 전언이다.


요즈음은 날이 덥다고 출근 때도 퇴근 때도 남편이 차를 태워 준다. 모든 일은 남편이 곁에 있어 나는 안전하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시장 좀 다녀가자고 부탁했다. 부부만 사는 집은 음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매번 먹는 반찬만 먹을 수는 없다. 덥고 입맛 없는 여름에는 여름에 맞는 절기 반찬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열무를 사려 시장엘 갔다.


여름에는 열무김치가 입맛을 나게 한다. 시장에서 열무 한 단, 얼갈이배추 한 단, 총각무 한 단을 사고 여러 가지 야채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야채가 금값이다. 지난번 폭우의 영향도 있으리라. 또 이번 태풍과 폭우로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을까, 시골 농부들이 염려가 된다. 사람이 먹고사는 것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모처럼 싱싱한 야채를 보니 기분이 좋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바로 김치 담을 준비를 한다. 다듬고 씻고 소금에 절이고 손으로 만드는 음식은 정성과 품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시간이 모자라는 주부들은 반찬을 사 먹는 것 같다. 여태껏 가정 주부로만 살아왔던 나는 음식을 사 먹지는 않지만 사 먹는 일이 습관이 되지 않았서 그럴 것이다. 김치를 담가 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비바람이 불어도.


열무김치 총 각부 알타리 김치


조금 힘들지만 긍정 에너지로 생각한다. 힘든다고 생각하면 살아가는 모든 일이 힘들 수 있다. 내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만들어 밥 해 먹는다는 자체가 축복이다. 더욱이 곁에 남편이 계셔 함께 할 수 있음도 사람 사는 맛이다. 나는 가끔 힘들 때면 요양원에 계시는 형님을 생각하다. 목숨은 연명하지만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곁 가까운 가족의 슬픔은 가족 모두가 느껴야 하는 아픔이다.


다행히 나는 나이에 비해 일하는 순발력이 있다. 준비해 놓은 김치 담는 것을 금방 휘리릭 담고 저녁에는 된장과 호박잎을 쪄서 밥상을 차린다. 싱싱한 열무김치를 먹으며 오래전 친정 작은 엄마 생각에 마음이 울컥해 온다. 새 김치를 담으면 아삭아삭 맛있게 드셨던 분, 나는 작은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동근상에 호박 잎쪄서 된장과 먹었던 형제자매들 생각을 한다.


나이 듦은 가끔씩 예전 살아왔던 삶을 회상하며 마음이 쓸쓸해 온다. 삶이란 모두가 지나가는 시간이다.


음식을 먹으면 음식을 좋아했던 사람이 떠 올라 추억을 불러온다. 그때는 몰랐던 무료했던 일상도 이처럼 마음 아련한 추억되고 마음 한편이 시리다. 어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기억이란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 사는 것과 비교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음식과 얽힌 가족들과의 지나온 시간들 그때는 힘들었던 일도 지금은 참 사람 사는 즐거움이 소소한 일상 속에 있었구나 하고 옛 생각에 젖는다.


시간이 가고 다음 계절이 돌아오고 우리의 삶은 지나가리라. 어려움도 기쁨도 다 지나가는 세월들이다. 그 중심에 내가 있고 우리들이 있다. 사람은 각기 자기가 건너야 할 강이 있다는 걸 안다. 자기 만이 버텨내야 할 몫이 있다는 것도, 나 자신이 세상 속에 잘 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당당한 자세로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을 저장해 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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