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이 주는 위로
남편과 대화에서 들은 말
어제 갑자기 남편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여보 당신 왜 나하고 결혼했어요?
다음 세상에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지금 까지 살아온 당신 삶은 어땠어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질문들을 한꺼번에 해버렸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은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내 삶이 실패한 삶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아, 그리고 결혼은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가진 사람이 당신이었기에 선택을 했고, 다음 생에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 그리고 내 삶은 여한이 없어"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쿵하고 울린다.
남편말에 난 괜히 울컥하고 마음이 이상하다. 정말 남편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나 보다. 언제나 말이 없이 자기 생각에 머물러 상념이 많은 사람이다.
살면서 나는 가끔 궁금했다. 워낙 용이 주도하고 빈틈이 없는 남편을 바라보며 저 사람은 왜 결혼을 까? 으아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결혼 55주년 차 부부.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사이지만 때로는 그 사람 속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여태껏 무리 없이 살아 내고서 묻고 싶은 말이라니, 나도 참 생뚱맞다. 나이 80이 되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삶과 죽음이란 경계를 넘나 드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거다.
남편과 나는 연예도 아닌 중매로 만나지 4개월 만에 결혼한 사람들이다. 평소에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남편, 그래서 더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칭찬 또한 인색한 분이다. 내가 아무리 예쁜 말 좀 하라고 강조를 해도 성격이라서 고쳐지지 않고 맨날 지적질만 했다. 때때로 그 말을 들으면 내 마음 안에 화가 욱 하고 올라오는 날도 많았다.
다시 만나다니, 젊어서 들었으면 어림없는 소리다.라고 했을 것이다. 세월은 살아온 만큼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살아온 날들의 정이 켜켜이 쌓이고 애달픈 사람, 고마운 사람으로 마음이 바뀐다. 저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 아니었나 하면서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하는 것도 나이 들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르다. 다른 만큼 부부가 한집에 살면서 아무 갈등 없이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젊어서는 더욱 그랬다. 나와 다름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고 갈등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 흘러 나이 들고 많은 것을 내려놓으며 상대의 장점이 더 부각되었다. 남편은 원만하고 성실하고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후는 바빴다. 점심 먹고 바로 도서관 사서 가는 날이다. 요즘은 덥다고 학교 갈 때도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걷지 말라고 나에게 차로 서비스를 해 준다. 4시에 끝나 집으로 돌아 온후 또 나갈 준비를 한다. 요즈음 시 낭송 모임에서 시극 경연대회가 있어 연습장에 가야 한다. 행여 늦을세라 저녁 준비해서 밥상을 차려놓고 바쁘게 움직인다.
"당신 미안하니까 그냥 걸어갈게요" 밖으로 나가려고 가방을 드는데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차키를 가지고 나와 "태워다 줄게"라고 말한다. 도대체 젊어서 그만큼 밖에서 놀았으면 그만이지, 나이 80이 되어서도 이리 밖에서 놀고 있나? 다른 사람 같으면 그 말을 하고도 남았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가 하는 일을 묵묵히 지지해 준다.
젊어서 다도 할 때, 내가 행사하는 곳마다 짐을 다 싣고 다녔던 이력이 있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자리가 주어지면 어쩔 수 없다. 시극도 신청하지 않았지만 논개 어머니 역할을 시키니 추천하는 사람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무대에 올라 극을 하는 건 영 쑥스러워 체질에 맞지 않는데도...
삶은 선택이다. 자기가 선택한 마누라가 좋아서 하는 일 어쩌랴! 예전에는 까다로운 남편성격 때문에 다음 생애는 저런 남자 절대 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나이 들면서 차차 달라진다. 세상에 이런 사람 찾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한다. 오늘 나에게 다시 만나 살고 싶다는 남편 말 한마디가 온종일 마음이 포근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어느 것 하나도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선택을 하고 노력을 하므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아팠던 시간을 버티고 나면 당당히 설 수 있는 아름다운 삶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작은 일에도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