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고 있는 큰 딸아이들이 방학이라서 한국에 왔다. 갑자기 멀리서 오는 딸네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딸들과 함께 나도 마음이 분주하다. 주말이 아닌 주중에 오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더 복잡하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만큼 행사를 하듯 프로그램을 짜야하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딸들도 모두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늘 바쁘게 종종거리며 살고 있다.
우리 부부도 월요일 용산행 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두 번째 가는 길이라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다. 익숙함은
편안하다. 짧게 방문하는 큰 딸네 가족이라서 케어하는 일을 나누어해야 하고 만나 밥 먹는 것도 미리 예약을 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딸은 곁에 사람들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 그런지 꼭 호텔에서 쉰다. 각자의 생활 방식이니 나무랄 일은 아니다. 각자의 삶의 방법이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우리의 삶이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연극배우와 같은 거라고, 세상이란 무대에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고 살다가 어느 날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배우 같은 인생. 그것이 인생인 거다. 사람들은 사는 동안 사연이 많기도 하다. 가족이지만 독립 후엔 제각각 삶의 방식도 성향도 환경 또한 다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모두 고군 분투한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서로 마음에 걸림이 없이 사랑을 나누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아무리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자매와 형제도 마찬가지다. 모든 면이 같을 수는 없다. 성격도 취향도 가치관도 제 각각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부모가 지만 자식의 삶을 관여할 수는 없다. 모두 하나의 인격체라서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큰 딸네 가족이지만 혹여 마음 불편한 일 없기를 바란다. 기억에 남는 추억과 따뜻한 사랑을 담고 떠나기를 소망해 본다. 사람은 관계가 가까울수록 기대심리가 있어 섭섭함도 따라올 수 있다. 나는 서울 올라가기 전 남편 손을 잡고 부탁했다. "여보, 큰 딸에게 혹여 섭섭한 일이 있어도 마음 비우고 좋은 추억만 남기게요. 이제 우리는 마무리할 시간이잖아요." 지적질 잘하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미리 당부를 해 놓았다.
말은 생명이다. 아픈 말은 오랜만에 만나는 딸에게 자칫 상처로 남아 그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 한편이 아프고 슬플 거다.
이 풍진 세상 속에서 어렵고 힘들 때 살짝 꺼내여 위로를 받고 싶은 가족의 따뜻한 언어들을 마음 안에 모아 놓아야 한다.
자식은 늘 그립고 애달프다. 멀리 있으면 더 그렇다. 뉴욕에 살고 있는 딸과는 가끔 영상 통화를 하면서 보고 싶다는 말을 해 왔지만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설렌다. 드디어 기다린 월요일 아직은 낯선 용산역, 다행히 대학을 다니는 손자가 방학 중이라 마중을 나왔다.
오후 늦은 시간 큰 딸네 가족이 도착해 호텔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셋째 딸이 전한다. 전화 통화도 안되니 우리는 답답하지만 셋째 딸의 연락으로 소식을 받는다. 남편과 나는 움직 일 수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만 조리고 아파트 안에 머물고 있다.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마음 놓고 내일 일정을 생각한다.
분당에 사는 셋째 딸은 아침 일찍부터 큰딸이 머무는 호텔에 가서 기다리다 큰 딸 병원에 데려다주고 쌍둥이 손자 손녀 픽업해서 놀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톡이 왔다. 롯데 월드는 가기 어렵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맘껏 놀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고 전한다. 남편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셋째 딸이 대신해 주고 있어 마음이 가볍고 고맙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곳은 새로 입주한 둘째 딸네 아파트 파티룸에서 만나기로 했다. 파티룸은 호텔처럼 깨끗하고 우리만 쓰는 공간이라서 부족함이 없는 시설로 모든 준비되어 있다. 음식만 주문해서 세팅하면 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많은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밤에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아 그러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하다.
손자 손녀들
오후 늦은 시간 셋째 딸이 뉴욕 사는 손자 손녀를 데리고 아파트로 데리고 들어왔다. 5년 만에 만나는 손자 손녀는 많이 자랐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니 손녀딸은 한국 가족들을 만나 매우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 낯선 곳에서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멀리서 온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쁘다.
세팅이 다 된 3층 파티룸에는 출근했던 사위들도 하나 둘 도착을 했고 막내딸은 퇴근길에 병원에서 작은 수술을 한 큰 딸을 데리고 도착을 했다. 세 딸은 각자 맡은 역할을 온 마음으로 하고 있다. 큰 딸은 보니 울컥하고 눈물이 나온다. 자식이 무언지, 5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 모두가 축하해 주고 반겨 주니 좋은 가 보다. 음식을 나누어 먹고 즐거운 시간이 흐른다.
저녁을 먹은 후.
둘째네 아파트로 21층으로 올라와 차도 마시고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애들에게 선물을 건넨다. 나와 남편은 용돈을 막내딸은 고급진 잠옷을 손자 손녀에게 선물해 주고 사위들의 용돈까지, 마음이 훈훈하다. 뉴욕에 살고 있지만 손녀는 요즘 유행하는 한국 걸 그럽 노래와 춤을 보여 주는 장기를 보여 주며 공연장으로 변했다. 여자인 손녀는 한국 연예인이 좋다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짧은 만남이 아쉽지만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말이 서울이지 각기 사는 곳으로 이동을 하려면 1시간도 넘는 거리다. 서로 인사를 하고 둘째는 분당으로 막내는 큰딸 가족호텔까지 데려다주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큰 딸과 손자 손녀는 내일 우리 부부와 만날 약속을 하고서.
큰 딸 얼굴이 많이 편해 보이고 유연해졌다. 사는 게 많이 편해진 듯 해 마음이 놓인다. 동생들이 아이들 살펴주고 온 마음으로 환대해 주는 정성에 고맙다는 표현도 한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내일 해야 할 일이 있어 이 밤은 혜어져야 한다. 마음 안에 훈훈한 사랑을 안고 오늘 밤은 모두 굿 나잍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