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 속에 머무는 아름다운 선물 같은 것, 연어가 태어났던 곳을 찾아와 알을 낳고 죽음을 맞이하듯 추억이란 인간에게도 회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뉴욕에 살고 있는 손자 손녀는 일본에도 잠깐 3년 동안 살았고 한국에서도 2년 동안 살다가 뉴욕으로 건너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 연유에서 이번 여행은 추억 따라 일본과 한국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큰딸과 손자 소녀가 서울에 도착한 다음 날이다. 아이들이 롯데몰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을 가고 싶다는 말에 10시 30분, 아쿠아리움 앞에서 우리 부부와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용산 둘째 딸네 집에서 어떻게 갈까. 서울에서 움직이려면 동선도 길고 더듬거려진다. 딸들은 택시 타고 가라 말하지만 언제나 검소하게 살아온 남편에게는 어림없는 소리다. 사위와 딸이 출근한 뒤 우리 둘은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텐데. 집에 있으면 뭐 할 건가 싶어 일찍 큰딸과 약속한 잠실에 가서 놀며 기다리는 게 방법일 듯했다. 마침 출근하려는 둘째 딸을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탔다. 잠실을 가려면 사당에서 내려 갈아타야 했다. 출근 시간이라 말 그대로 지옥철이다. 뉴스에서만 보았던 일을 오늘 나는 경험했다. 사람과 사람사이 꽉 끼인 지하철 안, 이 사람들은 날마다 삶의 현장으로 오고 갈 것이다. 강남 쪽에 오니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잠실 가까이 오니 좌석이 비어 앉을 수 있다. 저 많은 사람 중에 브런치 작가님도 있을까, 하고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잠실에서 내렸다. 잠실은 딸들이 예전 살던 곳이라 익숙하다. 약속시간이 남아 있어 석촌호수 산책을 해 볼까 했으나 빗방울이 떨어진다. 우리는 비를 피해 롯데 몰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물건들이 몰 안에 전시되어 있지만 이제는 쇼핑도 흥미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마음 한편이 쓸쓸해 온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 삶의 과정일 것이다.
아쿠아룸 앞에서 서성이며 우리 부부는 딸과 손자 손녀를 기다리고 있다. 무료한 시간에 폰만 뒤적이고 있을 즈음 셋째 딸 에게 톡이 왔다. "엄마, 지금 석촌쯤 지나고 있어 금방 도착할 거예요. 어디 커피숍 가서 기다리세요. 셋째 딸은 약속한 일도 없는데 롯데 몰 아쿠아룸 앞으로 짠하고 나타났다. 혹여 우리가 방황하고 있으려나 걱정을 한 것이다. 셋째 딸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울컥해 온다. 나이 들면 애들 마음이 되나 보다.
무려 1 사간이 걸리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아빠 엄마 걱정 되어 나왔다 한다. 손자까지 데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딸의 순발력과 가족에 대한 배려에 또 한 번 놀랐다. 자유로운 일을 하는 셋째 딸은 가족 행사 중 많은 역할을 해 주었다. 누군들 자기 힘든 것 밀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말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해 준 딸들 모두가 고맙다.
희생과 배려는 곧 사랑이다. 아이들은 아쿠리움에 들어가 물고기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예전에 한국에 잠깐 잠실에서 살면서 아쿠아리움 구경했던 아이들은 그때 기억이 떠 올라 즐거워하는 것 같다.
큰딸과 손자 아이들이 물고기 밥을 주고 있는 장면
시간은 금방 흐른다. 구경을 하고 롯데 몰 식당가에 가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딸은 저녁 밤 비행기고 하와이로 떠난다고 하고 우리 부부도 군산 기차표를 끊어 놓았다. 아쉽고 섭섭하지만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 만날 지 기약도 없이 또 혜여진다. 남편은 손자를 안아주며 마음이 이상하신 가 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일, 바라보는 나도 마음이 찐하다.
손자와 헤어짐이 아쉬운 남편 손자의 미소가 예뻐 한컷
큰 딸과 손자 손녀와 헤어지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셋째 딸이 택시를 잡아 주어 우리는 용산 역으로 편하게 왔다. 셋째 딸은 분당으로, 가족이지만 모두 각자 자리로 돌아가 살아야 한다. 3일 동안 마음 졸여야 했던 시간이 끝났다. 기차를 타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군산에 도착을 했지만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고 온다.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군산 서해 바다로 들어가는 노을을 본다. 비가 오는 어두운 하늘에 이처럼 햇살이 눈부신 노을은 처음 본다. 지는 노을도 아름다울 수 있다. 노년의 황혼이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비는 오는데 지는 해가 밝다 눈이 부실 정도로 노을은 밝다
만나고 헤어지고 그게 우리들의 삶이다. 헤어짐이 아쉽고 섭섭하지만 각기 가야 하는 할 다른 삶이 있다. 이박 삼일 짧은 시간이지만 손자 손녀는 가족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살아갈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내 마음 같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만나는 그리움을 마음 안에 담고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