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억압한 기억의 포로가 되다
임원 코칭을 하는 경우 감정관리와 의사소통은 대표적인 코칭 주제이다. 흔히 회사를 이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직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공통적으로 '회사 보고 들어왔다가 상사 보고 떠난다'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의 응답률은 70~80%에 육박한다. 도대체 상사와 무슨 문제가 있길래 상사를 지목하는 것일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주요 대기업의 임원, 그룹장, 팀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효과적 리더십 진단 Effective Leadership Assessment(ELA)'의 결과를 분석해 보면, 그 이유가 추론된다. ELA는 진단 대상자 본인과 그의 상사, 동료, 부원(후배 사원)이 복수로 참여하는 다면 진단이다. ELA는 그림과 같이 3개 역량군에 총 18가지 리더십 역량을 진단한다. 진단 시스템은 온라인으로 운영된다. 국문과 영문으로 진단하여, 내국인과 외국인이 진단 참가자에 포함된 경우에도 진단을 실시할 수 있다. 진단 결과 보고서도 국문과 영문으로 생성된다.
5년 간 수집한 자료를 활용하여 리더십 역량의 수준을 '높음', '보통', '낮음'으로 범주화했을 때, 임원과 그룹장, 팀장에게 공통적으로 '낮음'에 속하는 리더십 역량이 있다. 바로 정서관리이다. 정서관리는 직무를 수행하거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스트레스, 긴장, 불안감 등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정서관리는 대인 감수성과 동전의 영면 관계에 있다. 대인 감수성은 공감이나 관찰을 통해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 상태를 고려하고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다. 대인 감수성이 발달하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의 내용과 강도를 헤아려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정서관리를 할 수 있다. 반면에 미흡하면 인식이 불완전하여 소통의 내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갈등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신기술개발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김진애 상무는 관련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어 과제를 수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인재 관리의 어려움으로 과제 관리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리더십 다면 진단 ELA의 결과 보고서에 정량적으로 나타난 결과뿐만 아니라 주관식으로 작성된 피드백에는 그가 감정 관리를 조속히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분기별 점검 기간에는 욱하는 감정을 관리하지 못한다. 김 상무는 평소 자신이 신뢰하고 인정하는 연구책임자가 아닌 경우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 관련된 이슈들을 상세하게 기억해 둔다. 예를 들면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사항, 회의 참여도, 리더십 이슈, 기타 개선이 필요한 업무 태도 등에 대한 불만 사항이다. 과제관리를 위한 미팅을 갖는 날이면, 김 상무는 감정이 폭발할지 모른다는 염려로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순간 억눌러두었던 감정이 의식으로 올라오면, 프로젝트를 점검하면서 평소보다 지나치게 꼼꼼하게 살피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사사건건 부정적인 말을 상대방에게 쏟아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데’라는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미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기 일쑤다. 김 상무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참고 노력했다. 나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나는 당신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지금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이 자리에 내편인 사람은 없다. 있다면 바로 한 사람, 지금까지의 갈등과 속앓이를 지켜보며 함께 있어준 바로 내면의 자기이다. 내면의 자기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동의를 받는 것은 지금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이다.
김 상무가 부정적인 감정과 거친 말을 왈카닥 쏟아낸 심리를 웨그너 Wegner의 통제 이론으로 해석하면, 그가 처음에는 운영과정에 주의를 집중했으나 많은 프로젝트를 리뷰하면서 스트레스와 피로가 가중되고 의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기 시작했다. 이때 프로젝트를 리뷰하는 활동에 집중했던 주의력이 약화되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점검 과정이 의식으로 올라왔다. 점검 과정과 관련된 기억에는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겠다는 신호를 주는 생각과 감각 정보들이 담겨있다. 점검 과정에서 '불만 사항'으로 억눌려있던 기억 정보이다.
이번 프로젝트 점검회의에서도 불만 사항들이 의식 수준으로 올라오게 되었고, 김 상무가 특정 연구책임자를 질책하는 근거로 사용했다. 운영 과정과 점검 과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서로 연계되어 작동한다. 운영과정에 집중되었던 주의력이 분산되면, 동전의 뒷면에 해당하는 점검 과정이 작동하게 된다. 김 상무는 과중한 업무를 이성적으로 처리하려고 애썼다. 비록 연구책임자에 대한 신뢰는 적었지만, 이러한 생각이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리뷰하는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니다. 그러나 정서관리에 실패하고 나면, 이해관계자의 비난은 김 상무의 리더십 부족에 쏠린다.
독자가 임원 또는 연구책임자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