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 파트너 이석재 Oct 14. 2020

삶과 죽음의 경계

떠도는 마음에 귀 기울이다

가을 햇살이 서정적이다


오늘은 병원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부터 산책하듯이 걸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 쉬었다. 하나 둘셋넷,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하나 하며 멈추고 이어서 넷까지 쉬며 천천히 내 쉬었다. 그다음에는 중간에 쉼을 둘까지 멈추었다. 그다음에는 셋으로 늘리고, 최대 다섯까지 멈추었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10분이 휙 지나갔다. 나머지 시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걸었다. 길거리 담장에 있는 장미꽃을 유심히 관찰했다. 가장 시선을 끄는 장미꽃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환자 옷을 입고 대기실로 갔다. 사람이 별로 없다. 어느 날은 환자와 가족들로 붐벼서 빈자리가 없다. 지난번에는 몇 분을 서서 기다렸다. 내가 치료를 받는 치료실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 환자는 고령이다. 70대 중반으로 보인다. 늘 보면 무표정이다. 세상 풍파를 모두 경험하고 희비에 초월한 듯했다. 잠시 후 내 차례이다. 치료실에서 상의를 벗고 치료대 위에 누었다. 정확하게 자리를 잡도록 안내하는 붉은색 빔이 천정에서 치료대 위를 비추고 있다. 머리를 대는 고정 판이 있고, 다리를 약간 들어 올린 후 걸칠 수 있는 발 받침대가 있다. 처음에는 정확하게 위치를 잡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대중으로 어디에 엉덩이를 대고 누우면 정확한 위치를 잡을 수 있는지를 안다. 의사가 고정 마스크를 씌웠다. 오늘이 총 17차 중에 15차이다.


  드디어 몸이 방사선이 조사되는 기기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방사선 조사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확인을 마치면, 환자를 밖으로 꺼낸다. 잠시  다시 장치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기 장비(방사선원)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방사선을 조사하는 장치가 반원을 그리며 회전한다.  9회를 반복한다. 오늘도 눈을 감고 호흡 명상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날보다 방사선이 조사되는 기운이 전해지며 머리가 몽롱했다. 호흡을  틈도 없이 몽롱한 상태가 되었다. 이내 어떤 꿈을 꾸었다. 가수면 상태에서 꿈을 좇아 헤매던 중에 치료대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머리가 몽롱하다.


  의사가 다가와 잠시 누워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받침대를 꺼내고 고정 마스크를 벗겼다. 상체를 들어 올리려고 하는  힘이 없다.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상체를 일으킨  치료대에서 내려왔다. 간신히 환자복 상의를 입었다. 치료실을 나오는  여전히 몽롱한 느낌이다. 무슨 꿈을 꿨는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 내가 꿈을 꾸듯이 뭔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몽롱한 상태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정신을 잃은 것이다. 생과 사는 의식의 유무에 있다. 맥박과 심장이 뛴다고 하더라도 의식이 없다면, 살아 있다고   없다. 회생의 가능성이 없다면, 식물인간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방사기 안으로 들어   오른 손에 들려있던 ‘비상 누름장치 생각났다. 남은 이틀 동안 비상 버튼을 누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깊은 낮잠에서 깨어났다


  귀가한 후 미지근 한 물로 샤워를 했다. 몸이 나른해진다. 침대 위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전체 치료 기간 중에 오늘처럼 비몽사몽인 날은 없었다. 한 시간 이상 깊은 수면을 취한 후 깨어났다. 여전히 몸의 활력은 떨어졌지만, 의식을 많이 회복했다. 앞으로 남은 두 번의 방사선 치료를 마치면 중차대한 단계를 지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의 몸상태를 보니, 지금부터 몸의 면역력을 높이고 에너지를 높여야 한다. 실로 두경부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것은 치료에 도움되지만, 심리를 위축시킨다. 두경부에 방사선 치료를 받은 선 경험자들이 치료 후반과 회복기 관리가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이제 이해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통을 다르게 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