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다면 추천하는 영화

스틸라이프_누군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정중한 손길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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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생이 머물다 간 자리를 정리하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면서도 가장 숭고한 응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스틸 라이프>의 주인공 존 메이는 구청의 고독사 담당 공무원으로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죽음들의 뒤편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는 먼지 쌓인 방 안에서 고인의 낡은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좋아했을 법한 음악을 고르며, 단 한 명이라도 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줄 인연을 찾아 헤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효율적이지 못한 고지식한 행정가라 부르지만, 그에게 죽음은 단지 처리해야 할 서류 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죽음이란 한 사람이 온 생애를 바쳐 써 내려온 서사의 마침표였으며, 그는 타인의 잊힌 삶을 복원하기 위해 자신의 단조로운 일상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단어 위에 존엄이라는 따뜻한 외투를 입혀주는 그의 손길은 보는 이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듭니다.


그의 일상은 늘 정해진 궤도를 돌았고, 그의 식탁은 언제나 한 사람분만큼의 정적만이 감돌았습니다. 타인의 죽음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에는 꽃을 피울 겨를이 없던 그가, 집 맞은편에서 고독사한 빌리 스토크의 흔적을 추적하며 비로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옵니다.


단절되었던 관계의 실타래를 하나둘 풀어가며 타인과 온기를 나누기 시작한 순간, 역설적이게도 삶의 가장 찬란한 빛이 그를 비추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운명은 비정하게도 그에게 긴 머무름을 허락하지 않았고, 평생을 바쳐 타인의 마지막을 예우해 온 그는 정작 자신의 장례를 준비할 새도 없이 떠납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그의 텅 빈 장례식장을 마주할 때, 화면을 가득 채운 정적은 관객의 심장을 아프게 찌릅니다. 그가 찾아주었던 수많은 연고자는 각자의 삶이 바빠 그를 보러 오지 못했고, 그는 자신이 돌보던 이들처럼 고독한 마지막을 맞이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영화는 잊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하며 텅 빈 묘역 위로 그가 배웅했던 영혼들을 불러 모읍니다. 한 명, 두 명, 그리고 마침내 셀 수 없이 많은 영혼이 모여 존 메이의 마지막 길을 지키는 장면은 진심을 다한 다정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비록 산 자들의 세상에서는 무명(無名)의 죽음이었을지 몰라도, 영혼의 세계에서 그는 가장 거대한 사랑을 베푼 성자였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광경이 단순히 초자연적인 현상이라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진심이 도달한 가장 아름다운 종착역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인지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존 메이의 삶은 인생의 가치가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의 마음속에 어떤 온기로 남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고요하게 웅변합니다.

그가 정리했던 유품들처럼 우리 모두는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진 사진 한 장, 혹은 기억 한 조각으로 남게 될 존재들입니다. 영화를 덮으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삶에 어떤 풍경이 되어주었는지, 누군가의 외로운 페이지를 정성껏 넘겨줄 준비가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가슴 한편이 묵직해지는 여운 속에서, 비로소 살아있다는 것의 무거운 책임감과 아름다운 연결을 다시금 배웁니다. 홀로 떠난 이들의 마지막을 지키던 그 정중한 손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린 마음 위에도 가만히 내려앉기를 소망해 봅니다. 오늘 또 봤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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