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방송 현장, 밥보다 뜨거웠던 나의 동료들

by 참새수다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삼켰던 것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_배려,믿음,신뢰,사랑이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던 날들이 있었다. 분명 내 집인데, 도어록 뚜껑을 여는 그 짧은 순간조차 낯설게 느껴질 만큼 나는 집에 없었다. 방송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는 나의 일상을 앗아갔고, 때로는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집인지 세트장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지은 쌀밥의 단맛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늘 무언가에 쫓기듯 허기를 채워야 했다. 불어 터진 자장면이나 컵라면으로 급하게 위장을 달래던 그 수많은 밤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면발인지, 아니면 촬영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인지 모를 그 퍽퍽한 식사가 나의 30년을 지탱해 온 주식(主食)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진 세월을 견디게 한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차가운 현장 속에 있었다. 하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첫 방송이 나가기까지, 그리고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는 가족보다 더 진한 농도로 서로의 삶에 엉겨 붙어 있었다. 밤을 새우는 건 예사였고, 끼니를 거르는 일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퀭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면서도 우리는 웃었고, 큐사인이 떨어지기 직전의 그 팽팽한 긴장감을 함께 호흡했다. 흙먼지 날리는 야외 촬영장에서, 혹은 창문 하나 없는 편집실 구석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 쪽잠을 자던 그들은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었다. 밥을 굶어도 함께 굶고, 욕을 먹어도 함께 먹으며, 오직 '좋은 방송'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던 전우이자 또 다른 가족이었다.


이제 정년을 맞아 그 치열했던 전쟁터를 떠나왔다. 더 이상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경기하듯 깰 필요도 없고, 불어버린 면발을 삼키며 시계를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세끼 모두 따뜻한 쌀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가끔은 그 시절 현장에서 먹던 식은 도시락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음식의 맛 때문이 아니라, 그 밥을 함께 나누어 먹던 사람들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젊음을 통째로 갈아 넣었던 그곳에서,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것은 결국 대단한 사명감 이전에 내 옆을 지켜주던 든든한 등, 나의 동료들이었다. 현장은 떠났지만, 그들과 함께 흘린 땀 냄새와 뜨거웠던 동지애는 내 생의 가장 진한 훈장으로 남을 것이다. 어디서 지내건 2026년 늘 건강하고 편안하길 바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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