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어던지는 순간, 비로소 참았던 숨이 터져 나온다. 온종일 입가에 걸어두었던 미소가 마치 딱딱하게 굳은 석고 가면처럼 느껴져 얼굴 근육이 뻐근하다. 우리는 타인에게 무해한 사람, 언제나 예의 바른 사람, 거절하지 않는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감정을 삼키고 다듬었는지 모른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는 문장은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도, SNS의 짧은 글귀에서도 수없이 마주쳤던 말이다. 머리로는 수백 번 끄덕였던 그 명제가 막상 현실의 관계 속에 던져지면 힘없이 부서진다. 누군가의 미묘하게 굳은 표정 하나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혹여나 나의 거절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밤새 이불속에서 곱씹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어쩌면 생존 본능에 가까운, 아주 오래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무리에 속하지 못하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우리를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나 자신에게는 소홀하거나 잔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의 시간을 저당 잡히고, 그들의 기분을 살피느라 정작 내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는 외면하게 되니까. 마치 남의 집 정원을 가꾸느라 내 집 마당이 잡초로 뒤덮이는 줄도 모르는 정원사처럼 말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취향과 기준이 존재하는데, 그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우리는 물과 같아서,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지만,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다 보면 결국 내가 본래 어떤 색깔과 온도를 지닌 존재였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모두에게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깎아내다 보면, 결국 나라는 존재는 닳고 닳아 그저 작고 동그란 조약돌 하나로 남게 될 뿐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별로인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보다 내 인생을 크게 흔들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 노력하는 에너지를 거두어, 오롯이 나를 아껴주는 소수의 사람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쏟아야 할 때다. 타인의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적당한 거리를 둘 줄 아는 지혜, 그리고 "아니요"라고 말한 뒤에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단단함. 이것들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쯤은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헝클어진 모습 그대로, 조금은 까칠한 표정 그대로 있어도 당신은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