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로 소리 없이 쌓이는 것들에 대하여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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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무채색으로 잠겨 있고, 그 위로 차가운 적막만이 소리 없이 내려앉습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모호해진 저 광활한 설원 위에서,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 한 그루와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한 노인의 뒷모습이 있습니다. 저 사진(ai) 속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인생의 쓸쓸함이 켜켜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비단 슬픔만이 아닌, 긴 세월을 버텨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숭고한 침묵 같기도 합니다. 눈송이가 귓가에 스치듯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마다, 노인의 등 뒤로는 지나온 삶의 무게가 하얗게 덮여가고 있을 테지요.


지팡이 끝에 체중을 싣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저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生)이라는 긴 터널을 관통하는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굽은 등과 배낭 위로 내려앉는 눈발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가장의 무게이자, 이제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고독의 형상일 것입니다. 저 멀리 홀로 선 나무는 그런 노인을 말없이 지켜보는 유일한 관객이자 동반자입니다. 잎을 모두 떨구고 뼈대만 남은 나무나, 젊음의 활기를 뒤로하고 황혼을 걷는 노인이나, 결국 생의 본질은 홀로 견디는 것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눈보라가 칠 때마다 그들은 흔들릴지언정 결코 부러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버텨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저 단단한 풍경을 만들어냈을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결국엔 저 눈길 위의 노인이 됩니다. 화려했던 계절이 지나고 소란스러웠던 관계들이 정리되면, 마침내 마주하는 것은 광활한 설원 같은 자신의 내면과 타박타박 걸어가는 발소리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이 마냥 처량하지 않은 이유는, 그 길 위에 찍히는 발자국이 곧 그 사람이 살아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뒤돌아보면 금세 눈에 덮여 사라질 흔적이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오롯이 자신의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은 충분히 경이롭습니다. 차가운 눈바람 속을 헤치고 나가는 저 뒷모습이 그토록 아리면서도 아름다운 건, 아마도 우리 모두의 미래이자 거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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