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속에 묻어둔, 묵직한 하루

by 참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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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친 얼굴. 잿빛이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정수리까지 울린다. 이어폰에선 노래가 나오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저 소음을 막기 위한 방패일 뿐. 빽빽한 타인의 체온이 불쾌하기보단 서글프다. 다들 어디서 저렇게 에너지를 쏟아붓고 돌아가는 건지. 창밖은 이미 까맣다. 하루가 증발했다. 아니, 갈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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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릭. 도어록 해제음이 유난히 날카롭다. 불 꺼진 현관. 적막이 훅 끼쳐온다. 신발을 벗는 일조차 노동이다. 가방을 바닥에 던진다. 툭. 둔탁한 소리가 오늘 하루의 마침표 같다. 씻어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그냥 현관 문턱에 주저앉아 신발장 거울을 본다. 넥타이는 삐뚤어졌고 눈 밑은 퀭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패잔병의 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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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연다. 쏟아지는 창백한 빛. 캔맥주 하나를 딴다. 치익, 탄산 터지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액체. 식도가 얼어붙는 느낌에야 비로소 정신이 든다. TV는 켜지 않는다. 오늘은 소음이 싫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다. 잘한 건지, 못한 건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도망치지 않았다. 그거면 됐다. 오늘이라는 전쟁터에서,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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