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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계산인 홍석경 Oct 30. 2023

[천불천탑 퀴즈 #7] 신비한 발형다층석탑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아래 <사진 1> 운주사 천불천탑 배치도이다. 남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일주문을 통과하여 조금 걷다 보면 구층석탑이 나타난다.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은 높이가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다. 펑퍼짐 한 골짜기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운주사 경내를 스치 듯 지나면서 북쪽의 암벽 지대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어떤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의 원구형 석탑과 원반형 석탑이 세워져 있다.


원반형 석탑의 상징성 및 용도에 대해서는 바로 이전 글(천불천탑 퀴즈 #6)에서 다루었지만, 이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장엄하는 보배나무를 운주골 대자연에 세우기 위해서 7층석탑 양식으로 만든 것이다. 즉 천불천탑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 묘사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Pure Land of Paradise)이며, 원반형 석탑의 상징성은 보배나무이고, 용도는 극락 장엄물이다. 

<사진 1> 운주사 천불천탑 안내도: 고려 초에 건립된 운주사는 현재 주차장 부근 서쪽 골짜기에 있었다. 14c 초에 건립된 천불천탑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지상에 구현한 것이다.

천불천탑 공간의 북쪽 암벽 지대에 남아 있는 조형물은 아래 <사진 2>와 같다. 북쪽 암벽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고, 석불과 석인상이 암벽 아래 나란히 있으며, 그 앞쪽 공간에는 관람자 시선으로 보았을 때 마애여래좌상의 왼쪽(향좌)에 원반형 석탑과 방형 석탑이, 오른쪽(향우)에 원구형 석탑이 놓여 있다. 지난 글에서, 원반형 석탑(=원형다층석탑)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장엄하기 위한 보배나무를 운주골 3차원 공간에 재현하기 위해 석탑 양식으로 만든 것임을 밝혀내었다. 즉, 원형다층석탑은 천불천탑(=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을 장엄하는 보배나무7층석탑으로 불러야 한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정말 희한하게 생긴 원구형 석탑이다. 마치 은행알이나 계란, 또는 스님의 발우(밥그릇)를 층층이 쌓아 올린 것처럼 보이는 이 석탑의 상징성과 용도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어떤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이 희한한 석탑으로 인해 천불천탑은 우리에게 더욱 신비스럽게 비쳤다. 

<사진 2> 천불천탑 북쪽 암벽 공간에 남아 있는 조형물(시계 방향으로): 마애여래좌상, 석불군(마), 발형다층석탑, 그리고 명당탑(원형다층석탑)과 방형석탑


1917년에 찍은 옛 사진을 보면, 발형다층석탑은 4층이 아닌 7층이었다. 1919년에 찍힌 사진에서는 4층이 되었으니, 아마도 그 사이에 3층이 사라진 것이다. 천불천탑을 신비롭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원구형다층석탑의 상징성과 용도는 무엇일까?

<사진 3> 발형다층석탑: (왼쪽) 현재 4층만 남았지만, (오른쪽) 원래는 7층석탑이었다. (조선고적도보, 6권, 1917)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천불천탑은 서복사장 <관경16관변상도>라는 2차원 불화를 운주골 대자연(=3차원 공간)에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관경16관변상도>란 무엇인가? 이 불화는 <관무량수경>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보살, 제자, 천왕, 비구에게 설파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Pure Land of Paradise)에 왕생할 수 있는 16가지 관상수행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림의 주제는 '참회와 극락왕생'이다. 현대 한국의 기독교인은 요단강을 건너게 되면 천국으로 난짝 들려져 하나님을 뵙길 소원하는 것처럼, 고려 후기(14세기)에 불심이 깊은 고려인들은 임종 후에 서방정토라는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 아미타불을 뵙기를 소망하였다. 사바세계에 있었을 때 극락왕생자의 수행 수준에 따라 상품수행자는 상배관(제14관)에 왕생하고, 중품수행자는 중배관(제15관)에, 하품수행자는 하배관(제16관)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 경전의 제1관부터 제13관까지 관상수행(=정선13관) 및 제14관부터 제16관까지 염불수행(=산선3관)을 통한 극락왕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관경16관변상도>이다.


몽골의 침공과 원나라의 지배 하에 있었던 13세기말-14세기 초에 고려는 50여 년에 걸친 전쟁(여몽전쟁, 삼별초 항쟁, 일본 원정)으로 인해 나라가 몹시 피폐해졌다. 이 무렵 고려사회를 지배했던 불교사상은 천태종의 극락왕생 신앙이었는데, 아마도 고려인들은 극락왕생 신앙으로 피폐한 삶을 위로받고 현실의 고통을 고 극락으로 윤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진 4> 천불천탑은 14세기의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 대자연에 조성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였다. 즉, 천불천탑 =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위의 <사진 4>에서 볼 수 있듯이, 천불천탑의 북쪽 암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일대는 상품수행자가 임종 후에 왕생하는 상배관 극락을 운주골에 재현한 것이다. 서복사장 고려 <광경16관변상도>에 표현된 상배관을 자세히 살피면, 아래 <사진 5>와 같다. 상배관에는 전각 3채가 품(品) 자형으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아미타불을 찬미한 정토3부경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늦게 등장한 <관무량수경>에서 상품극락을 다시 3종(상품상생, 상품중생, 상품하생)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국가 신용등급이 A등급이라 할지라도 다시 AAA, AA, A 등급으로 나뉘듯이 상품극락을 다시 상. 중. 하로 세분한 것이다.


상배관(제14관)에서 정면의 전각이 상품상생 극락(AAA 등급의 극락)이다. 관람자 시선으로 우측(향우)의 전각이 상품중생 극락(AA 등급의 극락)이고, 향좌의 극락이 상품하생 극락(A 등급의 극락)이다. 각 전각마다 아미타 삼존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고, 아미타삼존 등 뒤에는 수많은 비구가 서서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고, 전각과 전각을 잇는 회랑에는 천인들이 춤을 추고 찬불가를 연주하며 극락왕생자를 환영하고 있다.

<사진 5> 발형다층석탑이 있는 북쪽 암벽일대는 <관경16관변상도>의 제14관(상배관)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아미타정토를 장엄하는 보배나무와 보주당이 좌우에 각 1기씩 세워져 있다

아미타삼존이 좌정한 극락 궁전의 좌우에는 극락을 장엄하는 장식물(보주당, 보배나무)이 각 1기씩 세워져 있다. 이를 보다 잘 표현한 (일본) 인송사 소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아래 <사진 6>에 보였다.

<사진 6> <관경16관변상도> (고려, 1323년): 제14관~제16관을 하나의 화면에 그려 넣었다. 극락 장엄물인 보주당과 보배나무가 극락궁전의 좌우에 각 1기씩 있다.


인송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는 아미타불이 좌정한 극락 전각의 좌우에 보배나무와 함께 ‘보주당’ 또는 줄여서 ‘보당’으로 불리는 막대처럼 기다란 장엄물이 배치되어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불교의식 용구의 일종인 당(幢)이나 번(幡)은 높다란 당간 끝에 매달거나 빨랫줄 같은 기다란 줄에 연등처럼 매달아 불교행사를 장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데 둘의 생김새는 크게 다르다. 당은 마치 청사초롱이나 연등에 기다란 천을 여러 개 매단 것과 같은 3차원 입체이고, 번은 기다란 직사각형 천 끝에 제비꼬리가 여러 개 달린 2차원 깃발 모양이다.

<사진 7> 불교의식 용구인 당(幢)과 번(幡)의 생김새

당(幢)과 번(幡)의 차이점은 아래 <사진 7>에 보인 양산 통도사 감로탱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 감로탱화는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건련이 아귀도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겪는 어머니를 그 수난으로부터 구제하여 극락에 왕생케 했다는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의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진 8> 양산 통도사 감로탱화 (광무 4년, 1900년): 기다란 줄에 당과 번이 교대로 연등 및 현수막처럼 매달려 있다.


중국 당(唐) 대에 제작된 둔황석굴의 아미타경 및 관무량수경 변상도를 살펴보면, 연화대좌에 좌정한 아미타불의 주변을 장엄하기 위해 당(다층보당)을 설치했음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보당은 크기와 모양이 다른 당을 여러 층 쌓아 올려 마치 거대한 석탑처럼 보인다. 또 다층보당은 보배 연못 위에 줄을 치고 연등처럼 매달아 두기도 하였다. 반면에, 앞의 <사진 6>에서 보았듯이 인송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서는 다층보당이 마치 현대사회의 스탠드 옷걸이처럼 길쭉하게 묘사되었다.

<사진 9> 둔황석굴(제225굴)의 아미타경변상도: 석탑처럼 생긴 보주당이 좌우에 각 1기씩 있고, 연못 위 가로 줄에도 연등처럼 매달려 있다.


이처럼 중국과 고려의 변상도에 표현된 다층보당의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것은 변상도의 화면 구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변상도는 화면을 분할하지 않고 하나의 커다란 화면에 아미타 극락정토를 표현했다. 이와 달리, 고려의 서복사장 관경16관변상도의 경우에는 화면을 5단으로 분할한 다음 각 공간에 일상관, 불회, 제14관, 제15관, 제16관을 그렸고, 인송사본의 경우에는 화면을 3단으로 분할하고 각 공간에 제1관∼제8관, 제9관∼제13관, 제14관∼제16관을 그려 넣었다. 이처럼 화면을 3 분할 또는 5 분할하다 보니, 각 단의 공간이 협소하여 중국의 변상도처럼 다층보당을 석탑처럼 크게 그리면 화면이 번잡해질 뿐만 아니라 생김새와 크기가 비슷한 보배나무와 시각적으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고려 화공은 다층보당을 고려변상도의 화면 구성에 잘 어울리도록 스탠드 옷걸이처럼 길쭉한 형태로 변형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아래의 <사진 10>에 (1) 아미타경변상도(둔황 제225굴) 및 (2) 관경변상도(둔황 제172굴)에서 중국의 다층보당의 생김새를 볼 수 있고, (3) 관경16관변상도(고려 14c 초, 서복사본) 및 (4) 관경16관변상도(고려 1323년, 인송사본)에서 고려의 다층보당의 생김새를 볼 수 있다.

<사진 10> 중국과 고려 <변상도>에 표현된 보주당의 생김새: 중국의 보당은 청사초롱을 몇 개 쌓아 올려 석탑처럼 보이고, 고려의 보당은 마치 기다란 스탠드 옷걸이처럼 생겼다

아래 <사진 1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는 꽃송이를 닮은 화려한 보석을 쌓아 올린 듯 그렸는데 층수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략 7층으로 보인다. 천불천탑의 발형다층석탑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보주당’을 3차원 공간에 세우기 위해 석탑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 11. (1) 아미타경변상도(둔황 제225굴), (2)&(3)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보주당, (4) 천불천탑의 원형다층석탑은  보주당을 석탑양식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 발형다층석탑의 정체를 밝힌 이번 글을 요약해 보자. 천불천탑 공간은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운주골 대자연에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다. <관경16관변상도>는 <관무량수경>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설명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며, 4개의 정토(불회, 상배관, 중배관, 하배관)로 구획된다.


천불천탑 공간의 북쪽 암벽에 새긴 마애아미타불의 주변에 조성된 조형물은 <관경16관변상도>의 상배관 극락을 나타낸 것이다. 상배관 극락에서 아미타불은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서 극락 궁전에 나투며, 극락 궁전의 좌우에는 극락 장엄물(= 보주당, 보배나무)이 각 1기씩 배치되어 휘황찬란한 빛을 발산한다. 2차원 <관경16관변상도>에서 스탠드 옷걸이처럼 생긴 길쭉한 보주당을 운주골 3차원 공간에 세우기 위해 석탑 양식으로 만든 것이 형다층석탑이다. 


<관경16관변상도>는 아미타불의 극락(상배관, 중배관, 하배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아미타불 + 극락 궁전을 중심에 두고 완벽한 좌우대칭 구도를 갖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종교화이다. 2차원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 대자연에 구현한 것이 천불천탑이므로, 상배관 극락에 배치된 극락조형물(보주당, 보배나무)은 짝수개여야 한다. 즉, 7층보주당 및 7층보배나무는 마애아미타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각 1기씩 놓여있어야 한다.


현재 천불천탑 상배관 영역에는 마애아미타불을 중심에 두고, 오른쪽에는 보주당이 1기, 왼쪽에는 보배나무가 1기씩 홀수개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운주사가 폐사된 이후에 반대편에 세워져 있던 또 다른 1기가 사라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사진 12> 마애아미타불좌상 일대는 <관경16관변상도>의 상배관 극락이다. 천불천탑을 조성했을 당시엔 극락 장엄물인 보주당과 보배나무가 마애아미타불 좌우에 각 1기씩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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