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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계산인 홍석경 Oct 25. 2023

[천불천탑 퀴즈 #6] 석조불감/쌍배불상의 정체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전남 화순에는 천불천탑으로 불리는 수많은 석탑과 석불이 산허리와 계곡에 흩어진 듯 모여 있다. 이것을 언제, 누가, 어떤 사상적 배경 아래 무슨 목적으로 세웠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주류 학설은 불교, 밀교, 도교와 별자리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여기서 교류를 했고 천불천탑 조형물은 종교 간 교류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설은 지금까지 제시되었던 여러 주장들 가운데 일부 조형물에 관해 그럭저럭 설명이 가능했던 몇몇 주장들을 양푼에 담아 비빔밥 비비듯이 버무린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천불천탑 공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칠층석탑-석조불감(쌍배불상)-원형다층석탑의 상징성과 용도는 무엇일까?

사진 1. (왼쪽) 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에서 붉은색 동그라미 친 곳이 (오른쪽) 석조불감 및 원형다층석탑 공간이다. 이것의 상징성과 용도는 무엇일까?

의 연구에 의하면, 천불천탑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다탑봉 계곡과 산허리에 조성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 즉 아미타불의 극락정토(Pure Land of Paradise)였다. 불심이 깊은 고려인은 14세기 초(고려 후기)에 남북 길이: 500 m×동서 폭: 200m로 이루어진 10만㎡(3만 평) 면적에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조성하였다. 조성된 천불천탑은 아래 <사진 2>의 오른쪽 그림처럼, 일본 서복사에 있는 고려 <관경16관변상도>와 똑같이 네 개의 정토(불회, 상배관, 중배관, 하배관)로 구획할 수 있다. 이것은 천불천탑이 서복사장 고려<관경16관변상도>를 일종의 설계도 삼아서 조성됐기 때문이다.


천불천탑은 우리나라 역사학계, 고고미술사학계  불교미술사학계의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교, 밀교, 도교의 사찰이라거나 별자리 신앙의 기도처, 또는 고대 천문 유적이 아니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자연에 조성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Pure Land of Paradise)이다. 실제로, 자는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구성과 도상학으로 천불천탑의 공간 구조 및 여기에 배치된 모든 조형물의 상징성과 용도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

사진 2. 천불천탑 공간은 14세기초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에 세운 3차원 관경16관변상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천불천탑은 4개의 공간으로 구획된다.

위 <사진 2>의 오른쪽에 보인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제15관(중배관)을 살펴보면, 궁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전각 안에 아미타삼존이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고 그 주위에 여러 보살 및 수많은 비구와 천인(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춤)이 서 있는 자세로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전각은 임종 후에 극락정토로 건너온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아미타삼존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접견실(Audience Hall)로, 생김새는 고려의 궁전을 닮았다. 즉 지붕을 떠받는 공포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에 팔작지붕을 얹고 지붕 꼭대기에 용마루가 설치되었다.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중배관을 고스란히 운주골에 재현한 것이 바로 위 <사진 1>에 보인 칠층석탑-석조불감(쌍배불상)-원형다층석탑 공간이며, 여기를  손으로 싸는 형태로 조성된 석불군 (다)-(라), 그리고 동쪽 산허리에 세운 수직문칠층석탑도 제15관(중배관)에 속하는 조형물이다. 중배관은 사바세계에서 수행 수준이 중간에 해당하는 수행자가 임종 후에 갈 수 있는 서방정토(=극락)를 표현한 것이다.


즉, 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석조불감(쌍배불상)은, 임종 후에 극락에 온 중품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아미타불이 나투는 중배전(일종의 접견실)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 아래 <사진 3>에 보인 고려 <관경16관변상도>는 일본 인송사에 보관 중인 변상도이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서복사가 아닌 인송사에 보관 중인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보였다. 제작시기는 1323년이다.)

사진 3. 천불천탑 공간의 칠층석탑-석조불감-원형다층석탑 공간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중배관 영역이다. 원형다층석탑은 아미타극락을 장엄하는 보배나무를 석탑양식으로 만든 것이다.

위 <사진 3>에 보인 것처럼, 인송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아미타불은 붉은 가사를 입고 연화대좌에 좌정해 있다. 향좌에는 지혜의 상징인 대세지보살이, 향우에는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이 서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천인이 찬불가를 연주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만 가부좌로 앉아 있고 보살, 비구, 천인은 서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꽃 위에서 무릎 꿇고 합장하는 이는 극락왕생자이다.) 또 아미타 삼존이 현현한 궁전 주위에는 극락장엄물인 보배나무, 극락조, 화좌대 등이 좌우에 각 하나씩 배치되어 화려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아미타삼존이 좌정해 있는 전각은 고려의 궁전 형태로, 주심포 기둥에 팔작지붕과 용마루가 있어 위엄과 화려함을 뽐낸다. 이 아미타불의 극락 궁전을 천불천탑의 중배관 공간에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 석조불감과 쌍배불상이다. 석조불감이 우리나라의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크기에 팔작지붕과 용마루를 설치한 것은 바로 <관경16관변상도>에 묘사된 아미타불의 극락 궁전을 운주골에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극락 장엄물인 보배나무는 극락 궁전의 좌우에 각 1기씩 세워 극락을 장엄하면서도 아미타불의 전신을 가리지 않도록 한다. <관경16관변상도>의 보배나무를 천불천탑의 중배관 영역에 석탑 양식으로 세운 것이 바로 원형다층석탑이다. 원래 원형다층석탑(= 보배나무)은 전각의 좌우에 각 1기씩, 총 2기가 세워져 있었다. 원형다층석탑 주변의 흙바닥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원반형 석재가 여기에 또 하나의 원형다층석탑 (=보배나무)이 있었음을 말없이 증언하고있다.


고려 <관경16관변상도> 불화의 주제는 '참회와 극락왕생'이며, 완벽한 좌우 대칭구도를 특징으로 하는 종교화이다. 이를 바탕으로 필자가 천불천탑 공간의 중배관 영역을 재현해 본 것이 아래 <사진 4>이다. 극락장엄물인 7층보배나무 (=원형다층석탑)을 중배전 정면에 세우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장엄물인 보배나무가 극락의 주인공인 아미타불의 전신을 가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천불천탑이 세워진 14세기 초, 고려 후기의 중배관은 아마도 <사진 4>처럼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진 4. 아미타불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나투는 곳이 중배전이다. 따라서 석조불감은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거대한 크기로 지었고, 지붕에는 용마루를 얹어 위엄을 보였다.

운주골의 서쪽 능선에 세워진 거대 와불과 거대 입상 및 시위불은 <관경16관변상도>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관무량수경>을 설파하는 석가모니 부처와 그의 10대 제자 가운데 마하가섭과 아난다를 묘사한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관경16관변상도>의 석가모니 불회 장면이다. 만약 석가모니 불회 장면만 따로 떼어내서 그리면 <영산회상도>가 된다.


중배관 영역의 석불군 (다)와 (라)는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고 아미타불을 찬미하는 화신불과 비구 (=성문대중)를 묘사한 것이다. 금강대좌에 앉을 수 있는 분은 부처뿐이며, 보살, 비구, 천인은 서 있어야 한다. 관련 학계에서 불상 혹은 협시보살로 판단하고 있는 입상(서 있는 자세의 석인상)은 결코 부처나 보살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부처는 항상 대좌 위에 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입상은 서 있는 자세이고, 입상이 걸치고 있는 의복은 보살의 옷이 아니라 전형적인 비구의 옷(가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입상은 누구일까? 입상의 정체는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장면에 등장하는 16성중의 도상으로 깔끔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의하면, 가사를 입고 두 손을 마주하고 있는 (합장 자세의) 석인상은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고 아미타불을 찬미하는 비구(=성문대중)를 묘사한 것이다.

사진 5. 천불천탑의 부부와불-시위불 공간은 관경16관변상도에서 석가모니 불회공간이며, 7층석탑-석조불감-원형다층석탑-석불군 (다),(라) 영역은 아미타불의 극락(중배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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