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시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입니다. 10년 넘게 고양이 이응이의 집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를 썼습니다.” 로 자신을 소개한다.
고양이의 캐릭터와 함께 너무나 예쁘고 위트 넘치는 글과 그림, 그리고 관련 시의 원문을 함께 읽는 재미가 솔솔 한 웹툰 에세이로서,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에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 듯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미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어렸을 때의 나, 젊은 날의 나, 그리고 오늘의 나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해 주었다. 특히, 혼자 살면서 겪게 되는 외로움과 아픔, 가족애와 사랑과 인생 등등의 어려움을, 한 집에 사는 고양이와의 대화를 통해 재미있게 표현하는 모습이 신세대적이고 싱고(싱그러운 사고)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17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도착한 날은 심장에 불이 꺼진 기분. 타인의 기분을 억지로 맞추다 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고르게 되고 팽팽하게 다잡았던 마음에 올이 풀려서 가장 중요한 게 빠져나가는 느낌. 그럴 때는 달콤한 게 필요합니다. 이제 괜찮다고 한결 가벼워졌다고 설탕을 입에 털어놓지만, 입속에 남은 단맛을 혀로 느끼면서 가만, 물어보게 됩니다.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
23 환상의 빛
미술 시간에 배운 스크래치 기법. 스케치북에 여러 색을 칠하고 검은색을 덧칠한 뒤 뾰족한 것으로 긁어내면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빛깔의 신비. 금색이나 은색 크...처럼 특별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존재가 있는가 하면 어느 자리에서나 인기쟁이, 명랑한 에너지를 주는 노란색 같은 이도 있다. 보색 대비처럼 세계관이 뚜렷하게 달라서 같이 어울리기 힘든 타입도 있고, 좀 얄미워 보여도 빈말은 하지 않는 선명한 원색을 가진 이도 있다. 서로 죽이 잘 맞아서 유사색을 띠는 친구도 있고, 너무 자주 써서 금방 뭉툭해져 버린 흰색 크...를 떠오르게 하는 이도 있다(엄마-아이구, 삭신이야). 엄마는 점점 희미해질 것만 같은 무채색이다(딸, 감치 받았냐?). 마음이란 게 하나의 색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다른 색은 보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우리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색을 볼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색을 먼저 꺼내어 보여줬다가 상처받는 건 두려워 상대방과 거리를 재보고 보호색을 띠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어릴 적에 품었던 환상의 빛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직 꺼내지 못한 빛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는데
128 진짜와 가짜
이 꽃 진짠가? 가짜 같은데? 만져보다가 꽃잎에 생채기를 내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인상은 과일 바구니처럼 다양합니다. 첫인상이 까칠(밤송이)해서 친해지기 어려워도 의외로 다부지고 성실해서 신뢰가 가는 사람, 호기롭고 시원시원하지만 알고 보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수박), 겉모습은 수수해도 만날수록 그윽하고 향기로운 사람(모과, 궁금해요?), 진심인지 거짓인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토마토-과일이야 야채야?), 겉으론 완벽해 보여도 무르고 약해서 몰래 눈물을 흘리는 사람(복숭아? 자두?) 지기 싫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우리는 ‘가면’을 쓸 때가 있지요(무던하면서 까다로운 척, 약하면서 센 척, 교만하면서 겸손한 척, 영악하면서 순진한 척), 가면을 쓴 나는 안정적이고 사려 깊고 온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신경질적이고 불안하며 변덕스러운 아이가 되곤 합니다. 이런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부정하고 싶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내 마음의 경계를 긋는 일인데, 언제부터였을까요 타인의 진정성에 추를 달아 얼마나 묵직한지 재보고 남들은 어떤 가면을 썼는지 의심하는 일로 감정을 낭비했던 날이.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세련되게 감추는 거라고 믿게 된 것이.
그 외, 너무나 재미있는 글과 그림에 폭 빠지게 된다.
내 몸의 지방자치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운동, 영어공부, 다이어트, 마감일-영감님은 안 오고, 문자나 벨(천국의 말을 전하려고요... 네네 벌써 갔다 왔습니다. 영감니임~ 첫 줄은 주고 가셔야죠- 이거야 원 시끄러워서 나 갈라네), 안 되겠다 5분만 누웠다가 다시 써야겠어, -쯧, 집중력이 3분 카레냥)
195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
착용후기가 좋길래 쓰-윽 사버린 스틸레토 힐, 별점 5개, 인생 힐 만났어요. 발이 너무 아파서 길들일 수 없었습니다. 장식품으로 용도 변경, 가끔 친구가 바라지 않는 충고를 서슴없이 합니다. 돌아보면 악담인지 조언인지... (나무늘보에게, 원숭이 가- 정신력 문제 아닐까, 나처럼 몸을 움직여봐; 내 경험을 잣대로 타인의 방식이 틀린 거라고 지적하기도 하죠, 캥거루에게. 토끼가-거루 엄마, 너무 애 감싸고도는 거 아냐? 내가 애들을 많이 키워봐서 아는데 블라블라... 외, 오골계에게-진짜 오글거려, 내 마음 편하자고 부담 주는 걸 ‘배려’라고 착각하기도-판다에게, 펭귄이-다크서클 때문에 고민 많지? 미백 크림 쓰던 거 줄까? 등,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고 결국에 하는 말은... 나쁜 뜻은 아니었어.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사이, 누군가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기도 합니다. 쉽지 않네요. 다른 이의 선의를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 뜨거워서 데거나 차가워서 시리지 않도록, 마음의 온도를 알맞게 조절해서 서로에게 길을 내는 일은.(위이잉~ 어여 따셔져라냥~~드라이어로 ㅎㅎ)
또다시 읽어보고 싶은 내용들을 적다 보니, 대부분이 인간관계에 관한 글임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회성지수가 높은 나지만, 사실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긴 마음의 상흔들이 많고, 그래서 요즘 사람들보다는 주로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