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다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산다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표류하는 삶이 아니라 항해하는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에게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말한다. 성장. 일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성취해야만 하는 숙명. 그렇다면 어떻게 성장에 이를 수 있을까? 우선 표류하는 자신을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데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오래된 지혜다. 일상에서 표류하는 자신을 멈춰 세우고 깨달음으로 밀어 올리는 불편한 지식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한 지식은 지혜가 되어 우리를 성장하게 할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성장과 지혜다. 열한 개의 고전을 개인의 성장기와 연결시킨 인문학적인 수필의 형식을 갖추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에 <열한 계단>은 필연적이다. 이 책은 자아에 대한 탐구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어지러운 세계에서 표류하지 않고 하나의 길로 가로지를 수 잇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질문과 답변들이고 바로 이 책은 개인의 방향을 잡고 나아간 기록이며 항해일지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항해를 시작하는 도전자나 모험자에게 나침반이 되길 바라며, 인생의 계단 어딘가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16년 겨울의 길목에서, 채사장
이 저자의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살펴보니 몇 년 전인가 읽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의 저자였던 것이다.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 책을 뒤적거려보니,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NDE), 체험 후에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도 발견되는데,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증가했고, 지식에 대한 욕구가 늘어났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복되었다고 한다(p330). 이 부분이었다. 나는 원래 형광펜을 잘 사용하지도 않고, 책에 밑줄 긋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이 책에 대한 느낌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어있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이번의 책 <열한 계단>은 한번 잡은 순간부터 내 손에서 내려놓아지지가 않았다. 다소 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소년이 우연히 만나게 된 책 <죄와 벌>이 계기가 되어 지적인 탐구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해 자아를 찾기 위해 용감하게 나아갔지만, 예상치 않은 풍랑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리기도,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죽음의 계단에서 자신의 목을 조르는 모습에서는 눈물이 나오기도 했고, 저자가 피자를 한 판 시켜 먹었듯이, 나도 괜히 해물라면에 생선전까지 폭식을 하게 되었다.
소년과 문학-기독교와 불교-철학과 과학-이상과 현실-삶과 죽음-나와 초월까지 열 두 계단이지만, 저자는 열한 계단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나’라는 구의 면 밖으로 어떻게 나가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이 의식의 지평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마지막 말로 저자는 이 책을 마친다.
나도 이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4-5학년 때 쯤에 운동장에서 뛰어 놀다 우연히 보게 된 하늘의 뭉게구름 위에 펼쳐진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보면서, 저 곳이 천국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한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전능자인 신을 찾아다녔고, 결국은 21세에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고전을 통해 사유하면서 자아를 찾고 진리를 찾아다닌 저자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통해 만남이 이뤄졌다. ‘나’라는 ‘구’안에 갇힌 듯, 나는 내 영혼의 문을 직접 열 수가 없어 답답했던 어느 날 여름, 나를 찾아오셨다.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인간관,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에 대한 모든 해답을 찾은 듯 기뻤고, 자유와 평안을 맛보게 되었다. 그것은 꿈도 아니고, 임사체험도 아니었다. 지금도 40년 전 구름의 모습이 사진처럼 남아 있듯이, 신을 만난 경험은 생생하게 내 마음에 고스란히 찍혀있다. 바로, 저자의 말처럼 그것은 바로 출구(EXIT)였고, 나는 ‘나’라는 ‘구’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