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시선

by 영어 참견러

1. 고전의 시선 (2018/7/29) -우리 산문 다시 읽고 새로 쓰다-

송혁기(2018), 와이즈베리(wiseberry) 미래앤의 성인 단행본 브랜드. 고대 한문학과 교수


P123-131. 이가 빠져 좋은 이유(落齒說 낙치설: 김창흠(1653-1722) 조선 후기, 5000여의 한시를 지음. 노년에 이가 빠진 경험을 토대로 얻은 깨달음을 설(說)의 문체에 담았다. 경험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여러 차례의 전환을 다채롭게 구사하면서 그 깨달음을 증폭했다. 이가 빠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작품화했다. 만약 이가 빠져 깊이 상심한 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뒤의 논술만 전개했다면 그 공감의 폭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체험의 진정성과 구체성,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교감으로 인해서 깨달음을 제시한 부분이 더 큰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P126. 그러고 보면 나의 이가 빠진 것 또한 너무 늦은 셈이다. 얼굴이 망가져서 만남을 꺼리게 되니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발음이 부정확하니 침묵을 지킬 수 있으며, 기름진 음식을 잘 씹지 못하니 식생활이 담백해지고, 글 읽는 소리가 유창하지 못하니 마음으로 깊이 볼 수 있다. 차분해지니 정신이 평안하고, 침묵을 지키니 잘못이 줄어들며, 식생활이 담백해지니 복이 온전해지고, 마음으로 깊이 보니 도가 응집된다. 손익을 따져보니 더 좋아진 것이 오히려 많지 않은가?

<성경> 늙음의 멋. 흰머리는

P136-139.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知己說, 지기설: 변종운(1790-1866) 중인 신분의 역관.

P136. 내 이름을 안다고 해서 지기(知己), 즉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 얼굴을 안다고 해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내 마음을 알아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것이 마음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보다 나은 사람은 굳이 나를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은 나를 제대로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오직 나와 같은 사람이라야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것은 내가 나를 아는 것만 못하다...... 내가 스스로 나를 안다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한들 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맹자>에 인용된 공자의 말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데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다.”

P135. 지기지우를 가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약용이 지은 시에 “ 나를 알아줄 이가 드물어 서산의 나무와 돌을 하나하나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는 새처럼 고달프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변종운은 세상에 얼굴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마음이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없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줄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성경> 지킬만한 것보다 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

친구 추가. 500명. 지인. 그중에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단 한 명의 친구. 죽음과 자살. 외로움. 흔들리는 마음을 잡는 방법.

P152 아이를 위한 상복을 벗으며(亡兒初朞祭文, 망아초기제문: 김창협(1651-1708) 32세에 얻은 아들, 김숭겸을 잃고 지은 3번째 제문. 아들이 둘 도 없는 시 벗이라고 말하던 저자는 아들의 죽음 이후로는 시를 단 한편도 짓지 않았다. 숙종에게 자연재해와 여러 정치적 난국 해결에 대한 진정성의 부족과 관련한 상소문을 올림으로 영의정 부친인 김수항이 파직되기도 하였다.

P 152 아! 네가 아비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은 지가, 내가 너를 잃고 홀로 살아온 지가 어느덧 350 하고도 4일이나 되었다. 너는 어쩌면 이다지도 무심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어쩌면 이다지도 무딜 수가 있단 말이냐.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너를 얻게 되었는데, 너는 영리하고 조숙하여...... 우두커니 혼자 왔다 갔다 하다가 멍하니 갈 곳 몰라하는 내 모습이 마치 가지 없는 썩은 나무 같고 불기 없는 식은 재와 같다. 이런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 그런데도 배고프면 밥을 찾고 추우면 옷을 찾고 병이 들면 약을 찾으면서 구질구질하게 한 해 동안이나 수명을 연장해 왔다. 아! 나의 무딤이 어찌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사람들은 나의 병이 오래도록 낫지 않는 것이 지나치게 슬퍼하느라 몸을 손상시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제 그만 놓아버려 생각하지 말라고 경계하곤 한다. 지나치게 슬퍼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생각이야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느냐......

나는 이제 상복을 벗어 보통 사람과 다름없게 된다. 너는 어쩌면 이 다지고 무심할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어쩌면 이다지도 무딜 수가 있단 말이냐. 천명과 인사는 본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나와 네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아! 원통하다. 아! 혹독하다. 내 말은 여기서 그치건만, 너는 듣는야, 못 듣느냐. 너에게도 슬픔은 있느냐, 없느냐. 아! 애달프도다. 상향(尙饗). ‘적지만 흠향하옵소서’ 축문의 맨 끝에 쓰이는 말


시대를 넘어선 자식을 잃은 아비의 절절한 아픔이 느껴지는 글이다. 자식을 잃고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니... 그 슬픔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윗의 모습: 아들을 잃은 후>

주영이 친구사진.

아버지와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 음식. 그릇, 방. 여행. 명절.


P73 풍속을 교화하려면( 風俗論, 풍속론:삼대윤(1806-1872) 소론의 명문가였지만 증조부인 심악이 을해옥사로 처형되면서 몰락, 수공업에 종사하며, <복리전서><풍속론>를 씀. 풍속 교화에 대한 희망을 위해 읽고 쓰기를 함. 강제와 선도가 아닌 대중과 발맞추어 가는 데 있음을 아이 종이 말을 쫓아가는 일화를 통해서 지식인의 역할과 자세를 제시.

P73 풍속론: 심대윤

풍속을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엄과 형벌로 금지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은혜를 베풀고 상으로 치켜세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천지와 성인의 도를 밝혀 느끼고 움직이도록 하되 마치 바람이 사물을 흔들어도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 듯한 뒤라야 흡족한 교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푯대를 높이 세우고 불러들여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깃발 휘두르며 앞장서서 직접 풍속을 유도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군자가 풍속을 따르되 정상의 도로 되돌리고, 그들과 함께 이루되 그렇게 의도한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만 가능하다.


P72 “평생 글 읽은 덕택으로 막걸리 한잔 얻어먹어본 적 없지만, 나무 반상 만드는 일을 하고부터는 굶주리지 않게 되었으니, 하찮은 기술이 글공부보다 훨씬 낫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읽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좋은 처방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염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할 뿐 치료하려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죄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간의 풍속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책무이니 그 어지러움이 심할수록 일을 해볼 한한 기회를 만난 것이라고도 했다.


지식인의 책무

빛과 소금의 역할

썩어가는 세상을 향한 외침... 시끄럽다. 짜증 난다. 어찌할까?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내가 어찌 바람을 일으키겠는가? 성령의 바람이 필요하다.

빛이 강하면 자외선으로 인한 피해가 있고, 소금 맛이 너무 강하면 음식을 버리게 되고 건강을 잃게 된다. 적당한 빛과 적절한 양의 소금이 필요하다. 적절한 바람의 역할처럼 말이다. 너무 강해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는 바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책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이 뜻을 내 마음에 주신 듯하다.

빌 2:13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들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in order to fulfill his good purpose).

하나님의 기쁘신 뜻 (good purpose)

빌 2:14-15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Do everything without grumbling and arguing, so that you may become blameless and pure, “Children of God without fault in a warped and crooked generation.” Then you will shine among them like stars in the sky as you hold firmly to the word of life.


이 책은 작년 무더운 여름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독서목록 1호 기록으로 남아있는 책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리게 된 이 고전의 시선은 작가의 말대로 내가 선조들의 멋들어진 옛글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다양한 24개의 우리나라 고전글들은 마치 흰 쌀에 섞어 꼭꼭 씹어 먹어야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잡곡밥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에 가끔씩 등장하는 사자성어나 논어의 이야기와 교훈에 다소 목메어 있었던 나에게 이 책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같았다.

나는 바쁜 일상 속에서 늘 인스턴트 음식을 먹듯이, 장을 보다가 잠시 들린 서점에서 필요하거나 관심 있는 책 두서너 권을 급히 읽곤 했었다. 그러니 내 마음과 정신은 체력이 좋지 않은 채, 체격만 커져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목록이었다. 일 년 만에 읽어보게 되었고, 아래와 같이 마음에 와닿은 내용을 그대로 기록해 둔 것을 보니, 그때의 나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갑작스럽게 작은 어금니가 부러져 임플란트를 했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음에 속상했고, 아들이 5년 전 친구의 죽음을 잊지 않으려고, 납골당 사진을 바탕화면에 놓은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나는 인생 후반전에 무엇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었던 때였다. 우리나라 옛 조상님들과 나의 밥상에는 그릇은 다르지만 같은 맛의 인생음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식 사진을 오래 남겨두려는 듯 나는 글들을 꼼꼼히 적어 놓았었다. 공간이 비좁아 다 담을 수 없어 생략하였다.

좀 더 구체적인 나눔은 내일 정자역 스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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