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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어 참견러 Feb 24. 2023

 알파벳 26자의 비밀

제임스 류, 영어연구소, 2018

알파벳은 2600년 전 고대부터 지금까지 전 유럽에 걸쳐 사용되어 왔고, 그 이유는 쉬워서였다. 언어학자들은 알파벳을 표음문자로 못 박았고, 그것으로도 우수했다. 하지만, 표음문자(phonogram)이고 표의, 상형문자(ideogram)이다. 표음문자이자 동시에 표의문자로 매우 합리적이며 편리하다. 중국의 한자가 수 만자이지만, 영어 글자는 26자이다. 전치사나 짧고 중요한 동사를 보면 뜻과 어법을 알게 된다. 상징성으로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그중 추상적인 것은 연습으로 극복가능하다.  어근, 접미사, 접두사의 의미를 쉽게 알게 된다.

페니키아의 자음이 그리스로 전파되었고, 모음인 a, e, i, o, u가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희곡, 철학, 사상, 민주주의 등으로 혁명적인 성장. 그 후 로마문자(라틴문자)로, 바로 알파벳으로 사용. 지역은 출발지인 남유럽 서부와, 서, 중 유럽, 동유럽 일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에 걸쳐 사용.

특수 목적으로 중국 한아의 병음처럼 음만 빌려 쓰거나 다른 문자와 함께 사용할 경우 알파벳의 비밀이 맞지 않는다. chest voice= glottal stop(성문 폐쇄음),으로 모든 모음의 첫소리는 이 소리가 난다. I’m, oh, uh, um, always, awful      


I am: I는 나, a는 어떤 하나, m은 만드는 것으로 am은 어떤 하나가 만든 상태로 있다.

a는 어떤 1의 존재, b 기반 c 감싸는 것 d 마무리 e 활성화 f 분리 g 선별통과 h 빠져나오는 것 I 확실 j 흔들리는 것 k 향하는 것 l 실체(기둥) m 만드는 것 n 선긋기 o 연결 p 표시(깃발) q 시작에서 끝, r 들어 올리기 s 여러 번 움직이는 것 t 지점(접점) u 담는 것 v는 펴져나가는 것 w 나누어 담는 것 x 잘라내는 것 y 가리키는 것(손짓), z는 멋대로 움직이는 것     

Aa는 부정관사 ‘a, an’과 같다. 어떤 하나를 의미하여 특별히 정하지 않은 어떤 하나의 존재를 의미한다. 생김새는 존재를 의미하며 ‘하나’는 첫 번째 나오는 글자여서이다.  대문자는 존재의 형상화, 소문자는 유기체의 형상화이다. 어떤 하나와 어떤 존재는 하나이다.(10)

am 어떤 하나로 만드는 것,= 어떤 하나인(하나를 만드는 상태로) 있다. a는 어떤 하나, m은 만드는 것이다. 주어 I에만 사용하는 be의 현재형이다. 어떤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 나 안에서만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한다. 타인의 머릿속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살아있으므로 세상이 내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모든 상황은 내가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와 관련된 인칭대명사는 I(확실한 것) 빼고 모두 m이 들어간다. 바로 my, me, mine, myself이다. 의미는 ‘나는 어떤 하나를 만드는 상태로 있다’이다.

are 어떤 하나로 들어 올려서 활성화한 것= 어떤 하나인 상태로 있다. a는 어떤 하나, r은 들어 올리기, e는 활성화이다. 어떤 하나로 들어 올려 활성화한 것이다. 하나는 세포가 하나이거나 여러 개 모여서 이루어진 사람도 하나이다. are의 어떤 하나는 여러 개를 묶은 어떤 하나이다. 즉 공통점이 있는 여러 개‘인 것. r은 평명인 세상 위에 올려져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 e는 활성화된 상태를 의미. 여럿이 모이면 힘이 더 강해진 다는 의미. 주어가 복수일 때 사용하는 be의 현재형이다. 그들(복수)을 하나로 묶어야 그들의 한 가지 상태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는 복수가 ’ 어떤 하나인 상태로 있다 ‘이다     

love l은 실체, o는 연결 v는 퍼져나가는 것 e는 활성화이다.

you 가리키는 것으로 연결하여 담는 것= 앞에 있는 대상인 사람, 결국 앞에 있는 대상인 사람(들)     

who 궁금한 것을 연결하는 것=누구

w는 나누어 담는 것, h는 빠져나오는 것 0은 연결이다. 궁금한 것을 연결하는 것. 사물은 연결해도 궁금한 것이 해결 안 된다. 그래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만 연결한다. 의미는 ‘누구’이다.

why는 궁금한 것을 가리키는 것=왜,

when 은 궁금한 것을 활성화하여 선을 그은 것=언제, n는 선긋기, 어근 wh는 궁금한 것. 궁금한 것을 활성화하여 선을 그은 것으로 여기서 선은 시간이다. 의미는 선을 그은 ‘언제’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단어의 의미를 따지는 것이 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알파벳 자체의 의미가 있음을 인지할 때, 이미지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음성도 함께 연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페니키아 조사>

페니키아(그리스어: Φοινίκη, 라틴어: Phœnicia)는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근거지를 둔 고대 문명이다. 중심 지역은 오늘날의 레바논과 시리아, 이스라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에 있었다. [1] 페니키아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에서 900년경까지 지중해를 가로질러 퍼져나간 진취적인 해상 무역 문화를 가졌다고 과거의 고대사엔 수록되어 있지만. 최근의 고고학 발굴로 페니키아 문명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기원전 40세기에 '기시 문명'이 지중해 문명과 메소포타미아를 연계하는 문명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이 '기시 문명(Gish)'이 아프리카의 '쿠마 문화(Kuma), 나일 강 유역의 쿠시 문화(Kush)와 연결고리가 있으며 그 관계를 연구 중이라 한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고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알제리,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권역의 국가와 무역으로 이탈리아의 중, 남부 도시에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리베리아(현 스페인)의 항구도시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다는 것은 이집트 기록에 의한 것이다. 고대의 경계가 변동하긴 했지만, 도시의 문화 중심은 최남단으로 도시 티레로 여겨진다. 페니키아 본토의 도시 가운데 시돈과 티레 사이에 있는 사렙타는 가장 완벽하게 발굴된 도시이다. 페니키아는 최초로 갤리선을 사용한 문명으로 이들은 갤리선을 이용한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페니키아 문명이 단일한 민족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같이 도시 국가를 이루었으며, 각각의 도시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었다. 페니키아의 도시 국가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하기도 하였으나 도시 간에 갈등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레반트 지역의 티레와 시돈은 페니키아의 가장 강력한 도시였다.     

페니키아는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한 문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들이 사용한 카나니테-페니키안 알파벳으로부터 후대의 여러 알파벳이 나왔다. 페니키아인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셈어파에 속하는 페니키아어를 사용하였다. 페니키아는 해양 무역을 통해 자신들의 알파벳을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전파하였고 이로부터 그리스어의 알파벳이 만들어졌다. 이는 후일 다시 에트루리아 문자와 로마자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2]          

목차

1 어원

2 역사

3 경제와 문화의 도시국가

4 종교

5 알파벳

6 페니키아의 영향

7 같이 보기

8 각주

어원

페니키아라는 말은 라틴어 푸뉘쿠스(punicus)에서 온 것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Fnkhw에서 유래한 미케네 선형문자 B의 포니 기요(ponikijo)를 호메로스가 그리스어 포이닉스(phoînix)로 옮긴 것이 고대 로마에 전해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Fnkhw는 "시리아인"을 뜻한다. [3] 한편, 그리스어 포이닉스(phoînix)는 심홍색 또는 티리언 퍼플, 뿔고동을 뜻하는 단어[4]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뿔고동의 껍질을 원료로 한 심홍색 옷을 페니키아인이 즐겨 입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5]     

역사

페니키아인들이 동지중해 지역에서부터 여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고 하나 명확한 기록은 없다. 헤로도토스는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페르시아만지역에서 지중해 지역인 레반트로 이주하였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6] 언어나 신화 면에서 볼 때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의 다른 문화와는 유사하다. 페니키아인들은 스스로를 가나안인이라 불렀다. 기원전 14세기경에 제작된 아마르나 문서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가나안인이란 뜻의 케나 아니(Kenaani) 또는 키나 아니(Kinaani)로 부르고 있다. 이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이른바 해양인이라 부르던 민족들이 침략한 것보다 1세기 이전에 제작된 것이다. 기원전 6세기 밀레토스의 헤카타이오스는 페니키아를 키나(χνα)로 표기하였는데, 비블로스의 필로는 그의 신화학에서 "키나란 페니키아를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 기원전 3천 년경부터 비블로스에서 레바논 삼나무를 배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고고학에서는 페니키아를 지금의 레바논 해안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문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주변의 고대 이집트, 미노아, 필리스티네, 고대 이스라엘과 같은 제 민족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하였다.     

기원전 2300년경에서 기원전 2100년 사이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민족 이동으로 인해 비블로스는 주변의 침략을 받았다. 그 결과 페니키아어와 아람어가 섞이게 되었다. 이후 수메르와 아카드의 군대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은 헤브루의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1500년 고대 이집트의 토트메스 3세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역사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기원전 1411년에서 기원전 1358년경에 작성된 아마르나 서신에서는 아모리와 히타이트가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들을 굴복시켰으며, 당시 비블로스의 왕이었던 리브-하다와 티르의 왕 아비-밀쿠는 이집트의 봉신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1350년경에서 기원전 1300년 사이에 이집트는 페니키아를 탈환한다. 다음 세기에 이르러 우가리트가 발흥하였으나 기원전 1200년경 멸망하였다. 사학자 게르하르드 헬름은 기원전 1200년경에 갑자기 출현한 이른바 해양인은 여러 가지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아 페니키아의 발달된 항해술과 그 역시 우수한 항해술을 지닌 미케네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단언한다.     


학자들은 여전히 페니키아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당시 유적에 대한 발굴과 함께 언어학적인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페니키아의 기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유전자 지도 계획을 이끌고 있는 스펜서 웰스는 과거 페니키아의 터전이었던 레바논과 몰타에 거주하고 있는 남성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페니키아의 기원을 밝히려고 하였으며 그는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이 Y 염색체 상에 m89 염기 갖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7] 그리고 연구 결과 그들은 미케네인과 해양인은 페니키아인과 유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8]     

경제와 문화의 도시국가     

페니키아의 강역     

페니키아 알파벳

페르낭 브로델은 그의 저서 《세계의 투시도》에서 페니키아는 주변의 세계와 교류하여 "세계 경제"를 건설한 고대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하였다. 페니키아의 문화와 해양 세력은 기원전 1200년경에서 기원전 800년경에 융성하였다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은 비블로스, 티레, 시돈, 시미라, 아라 두 스, 베리타스와 같은 도시국가였다. 아마르나 서신에는 이 도시들이 모두 거론된다. 페니키아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물은 기원전 3천 년경의 것까지 거슬로 올라간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던 페니키아 도시국가들은 해양을 통해 레반트 지역과 교류하였으며 많은 자원들을 실어 날랐다. 기원전 1200년경 철기시대에 접어들자 산토리니쯤으로 추정되는 북쪽에서 흉년을 만난 해양인들이 남하하였다. 이들은 이집트, 히타이트와 같은 잘 알려진 고대 국가들을 약화시켰으며 이러한 지배력 공백으로 인해 페니키아의 많은 도시 국가들은 독립적인 권력을 수립하게 되었고 이후 해양세력을 바탕으로 독립을 유지하였다.     

페니키아의 권력은 왕, 성직자, 원로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블로스는 도시 국가들 중에 가장 강성하였으며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이었다. 페니키아 알파벳 역시 비블로스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티레와 시돈이 발흥하였으며 이들은 머지않아 페니키아의 헤게모니를 분점 하였다. 티레의 왕 히람 1세(Hiram I, 기원전 969년 - 기원전 936년)는 당대의 가장 강성한 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인이란 이름과 함께 티레인, 시돈인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종교

페니키아인들은 당시 가나안 지역의 신들을 믿었다. 기원전 2000년경 대부분 주신은 바알로 간주되었으며, 페니키아신들은 후일 그리스 신화에 혼합되었다.     

알파벳

페니키아인들은 최초로 알파벳을 사용하였다. 페니키아의 알파벳은 지중해 여러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후일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알파벳에 영향을 주었다.     

기원전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 키프로스, 시리아, 이스라엘 및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 많은 묘비를 남겼다. 페니키아어는 카르타고어의 모태가 되었으며 카르타고-페니키아어는 기원후 5세기까지 사용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비블로스에서 제작된 아 히람의 석관에 쓰인 페니키아 문자[9]

아 히람의 아들이자 비블로스의 왕인 이토바알의 관, 그가 "영원의 집"에 거하도록 그의 아버지 아 히람을 위해 만들다. 언젠가 왕들의 왕이요 통치자들의 통치자이며 군대의 사령관인 그가 관을 열고 비블로스에 돌아온다면, 그는 지배의 홀을 뺏기고 그의 왕좌는 전복되며 비블로스는 평화를 잃으리라! 그가 이 비문을 깬다면, 그것은...!

페니키아의 영향     

암포라에 그려진 용과 싸우는 카드모스, 기원전 560년 ~ 기원전 550년경, 에우보이아 출토, 루브르 박물관

페니키아는 초기 철기 시대의 지중해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알파벳, 선박 기술, 상업술, 과학 기술, 항해술 등이 그리스에 전해졌다.

I am who I am. 하나님의 이름. 존재, 실체는 바로 그 자신이다.  I am 나는 결국 하나의 유기체적인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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