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영어와 사귀기

Dating with English

by 영어 참견러

나: 예은이가 외대 아랍어학과 1차 합격해서 면접을 봤다며? 축하해!

지인: 고마워요. 아직 면접 결과가 나와 봐야 알아요.

나: 수시 면접에 어떤 문제가 나왔는데?

지인: 빅 데이터(Big Data)에 관한 질문이 나왔데요.

나: 그게 뭔데?

지인: 모르겠어요.


5년 전 지인과 나눈 대화다. 아파트 뒷산으로 강아지와 함께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지난밤 내렸던 비 때문인지 머리 위로 도토리가 하나 톡 떨어진다. 강아지가 놀라 짖는다. 이게 뭐지?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체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으니, 강아지가 놀랄 만도 하다. 나도 빅 데이터라는 도토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학원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고, 그 후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AI 시대, 영어와의 연애를 계속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마음에 품은 채, 코엑스에서 개최한 교육 박람회에 참여하였다. 참가비가 무료에다 리시버(receiver)까지 제공된 자리였다. 영어는 한국어로, 한국어는 영어로 동시 통역관이 통역 부스에서 통역을 돕고 있었다. 자리가 꽉 차서 리시버 없이 앞자리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오신 과학자가 AI와 영어교육에 관한 강연을 하는 도중에, 부인이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순간 웃음이 터졌는데, 막상 리시버를 끼고 있던 다른 분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순간 그분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그분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나만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말을 바로 이해하고 반응(reaction)했기 때문이다.


다음 해에 다시 참석하였다. 이번에는 일찍 도착하여 리시버를 사용할 기회를 얻었다. 리시버의 사용법과 통역관이 어떻게 통역을 하는지 궁금했다. 사용한 지 몇 분 만에 바로 꺼 두었다. 이유는 강연자가 말하는 영어의 뉘앙스와 감정이 하나도 전달되지 않았고, 통역관의 통역을 듣느라, 강사의 말에 집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꺼번에 두 언어를 들으니 뇌가 상당히 피로해졌다. 바벨 피시가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피로감에 대한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해진다.


2016년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통해 AI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팡파르가 전 세계에 울렸다. 그 후, 1년이 지난 2017년에 국제 통역 번역 협회(IITA) 주관으로 인간과 AI가 번역으로 2차 대결을 벌였다. ‘인간 번역사와 인공지능의 번역 대결 행사’라는 이 대결에서 인간 전문 번역사 4명과 네이버 파파고, 구글 번역기, 시스트란 번역기 3개가 즉석에서 번역 대결을 펼쳤다. 번역 정확도 등에 따라 승패를 가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영 번역(한글을 영어로 번역)과 영한 번역(영어를 한글로 번역)의 대결 결과, 한영 번역에서 인간 번역사 팀은 30점 만점에 평균 24점을 받았고, 번역기는 평균 11점이었다. 영한 번역에서도 번역사들은 평균 25점을 받았고, 번역기는 13점에 그쳐 번역 대결에서는 인간이 이겼다고 자축했다. 정확성 면에서는 인간의 승리였지만, 속도면에서는 인간 대 기계번역이 50분 대 10분 미만으로 큰 차이가 나는 대결이었다. 한국 번역학회 회장의 말처럼, 기계 번역을 활용할 줄 아는 번역가를 기르는 교육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내가 다니는 분당 지구촌 교회에는 글로벌 예배부가, 그 안에는 영어, 몽골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이주자 예배부가 있다. 약 15개국에서 온 이주자들과 유학생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교회에서 한글도 배우고, 의료, 법률 서비스도 받고, 예배도 드리는 곳이다. 그중 이주자 예배부에는 한국어나 영어를 둘 다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언어를 통역할 수 있는 봉사자가 오시거나, 통역 앱을 쓰긴 하지만, 다양한 언어 장벽을 넘어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예배를 위해서는 한글 설교를 영어로 번역한 후에 다시 그들의 언어인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네팔, 스리랑카어로 번역해야 한다. 번역기가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아직 모든 언어를 번역하지는 못하고, 영어를 거쳐야만 한다. 한영 번역을 위해 구글 번역기나 파파고를 이용한 후에 잘못된 부분만 수정하는데, 30분 정도면 된다. A4용지 4장을 번역하는데, 2시간 30분이나 3시간이 걸렸다면, 이제는 30분 정도면 가능해졌으니, 시간과 노동력이 4/5 정도 단축되었다. 하지만, 번역기의 문법이나 단어 선택이 올바른지 알기 위해서는 번역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영어 실력이 번역기보다 높은 수준이어야만 한다.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인 마이클 슈스터(Mike Schuster)에 의하면 ‘기계의 번역 기술이 좋아지더라도 인간의 통번역 활동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고, 인류는 여전히 외국어를 학습해야 한다.’고 한다. 외국어 습득은 소통의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역사, 문화, 가치관을 통해 넓은 사고력과 함께 감정까지 공감하게 되는 유익이 있으니, 영어와 사귀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빠르고 신속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전엔 학생들이 번역기를 사용해 영작 숙제를 해오면 너무 엉터리 수준이었기에 번역기 사용을 금지하곤 했다. 요즘은 번역기를 사용하여 단어의 여러 의미와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을 찾아보면서, 번역기의 장, 단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내가 알려준 말이 맞는지 번역기를 통해 확인 검색을 하기도 한다. 인간 교사보다 기계 번역기를 더 신뢰하는 모습이다. 번역기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도록 영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이웃이 된 AI와도 친해지고 협업하고 상생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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