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관한 고찰
행복은 나비와 같다.
따가가려 하면 자꾸 당신 손아귀를 벗어난다.
하지만 당신이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마 당신 위에 살포시 앉을 것이다.
-나타니엘 호손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감정은 특별하다. 산타가 없음을 아는 어른들도, 모두 선물을 받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처럼 설렘을 안고 기대하며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익숙한 제목의 영화들을 보며 추억을 맛보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거리의 풍경들을 만끽하며 분위기에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 기대가 너무 커, 어느 날보다도 우울한 날이 되기도 한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많은 이들에겐 아쉬운 하루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분위기가 침체되고 많은 것들이 금지된 이 상황에선 무언가를 만끽하며 즐기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제한된 것은 우리의 자유의 일부이니까.
나의 경우엔 사실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날에 가지는 특별한 기대감 같은 것은 많지 않다. 워낙 홀로 지내온 날들이 많다 보니 부럽고 아쉬운 날들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길거리에 함께하는 손자와 할아버지의 모습 같은 풍경들도 나에겐 왠지 모를 그리움과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휴일이었지만, 특별한 더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족과 함께이기에 외로운 감정에 대해 조금은 잊고 지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보기만 해도 우울하고 어두운, 어딘가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누구보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며 설렜다. 하지만 이 커다란 기대가 나를 행복과 멀게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에겐 크리스마스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연인과 함께 로맨틱한 분위기의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거나, 나중에 추억이 될 친구들과의 하루를 보내거나,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하루를 보내며 일상에 감사하는 것 정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지금 나에겐 불가능했고, 세 번째에 포함되었는데, 사실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진 못했다. 그리곤 그 원인은 내가 기대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Happiness라는 행복에 대한 어원은 happen, 즉 일어나다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즉 우리가 기다리는 행복이라는 일들은 우연히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길에서 돈을 줍거나, 누군가 나에게 선물을 주거나, 반가운 사람과의 약속이 잡히는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런 특별한 기쁨이 찾아오는 것. 하지만 이런 일들을 우리의 인생의 목표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고 느껴지는 게, 우리가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우연히 일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이내 실망하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내가 모르게 준비된 깜짝 선물을, 내가 정한 날에 택배처럼 받길 바라는 일이라니.
조지 오웰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무언가를 항상 기다린다면 그것이 오는 어느 날의 기쁨보다, 오지 않는 수많은 날에 실망해버릴 것이다. 즉 우리는, 일상에 충실하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찾고 지킬 수 있는 것을 마음에 품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흔히들 말하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하루에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는 꼭 한다든지, 내가 오늘 볼 수 있는 영화를 본다든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 또한 비슷한 일일 것이다. 듣기만 해도 지루한,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 사실은 영원하지 않은, 지켜야 곁에 둘 수 있는 기쁨. 기쁨이란 건, 매년 찾아와 익숙하지만 사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밖에 마주할 기회가 없는, 그러나 확실히 내게 찾아오는 ‘나 홀로 집에’와 같은 영화가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 이 영화를 추억으로만 떠올려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사실 잘 알고 있었다. 걱정 없는 하루를 보낸다는 것. 몸이 아파 견디기 힘들지 않다는 것.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평안하고 좋은 일인지. 그저 익숙해짐에 잠시 잊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익숙한 지루함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기억해야 한다. 지루하다는 건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하다는 사실을. 그런 평안 속에서 지내다 보면, 나는 어느 날 행복이 왔다 갔음을 알 수 있겠지. 행복은 첫눈처럼 찾아오는 것. 기다리기엔 너무 오래지만, 일어나 보면 어느새 쌓여있는 눈 같은 것.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온다면 너무나 기쁜 선물 같은 것.
크리스마스, 사실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지 못한 날이라고 한다. 그 어느 날보다도 기대하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는 알아야 한다. 행복은 일어날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있다는 것을. 행복을 받기를 기대하며 보내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행복을 전하는 오늘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내가 살아온 그 어느 날보다도 가치 있을지 모른다. 그 사람은 택배가 아닌 깜짝 선물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니! 산타를 기다리기엔 우린 너무 커버렸지만, 언제든 될 수는 있다는 것.